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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친일파를 용서하지 말하야 하는 이유
게시물ID : humorbest_4194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깻잎.
추천 : 159
조회수 : 6210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2/21 18:50:37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2/21 18:27:50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서 최고의 벼슬을 한 집안 -조선에서만도 영의정을 9명 배출, 오성과 한음 주인공 이항복의 후손, 천년동안 양반인 집안 -일본이 조선 양반들에게 타협하는 대신 주는 귀족 지위와 수십억의 돈을 거절한 집안 -급하게 처분했음에도 현재가치로 600억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6형제 모두와 식솔 60여 명이 중국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 (급하게 그리고 몰래 파느라고 처분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고, 제대로 값을 받았다면 수천억대에서 조단위까지 가는 재산이었다고 함) -그 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먹이고 가르쳐서 수천명의 독립군을 배출하고 그 외 헤이그밀사 파견 지원, 고종황제 중국으로 망명 계획 등 수많은 독립활동을 한 집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어 손가락에 마디도 없을 거라던 집안 여인들이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고 육형제 모두 강냉이와 풀죽으로 연명한 집안 -그러나 6형제 중 첫째는 머나먼 중국 땅에서 병사, 가장 많은 돈을 보탠 둘째는 중국 빈민가를 80의 나이에 떠돌다가 굶어 죽고, 막내는 온 가족이 몰살, 모든 계획의 중심이 되었던 넷째는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 일제에 잡혀 모진 고문 끝에 숨진 집안 -유일하게 살아남아 해방을 본 다섯째는 독립 때 김구 선생님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대한민국 부통령이 된 집안 바로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초대부통령이 된 다섯째 이시영 선생님은 후에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부통령을 퇴임합니다. 일본 고등계 형사의 고문으로 경찰서에서 사망한 넷째 이회영 선생님의 아들은 아버지 없이 자라났고 그 아들이 낳은 아들, 즉 이회영 선생님의 손자가 바로 지금 민주당 이종걸 의원입니다. 육형제가 독립운동을 한 건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고, 이회영 선생님의 아들 이규창은 "1주일에 세끼를 먹으면 잘 먹을 정도였지만 궁핍이 아버지의 독립의지를 꺾지는 못했다"라고 회고합니다. --우리가 친일파를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영화를 다 버리고 독립운동의 길을 걸어가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보셨고 아시는 거라 생각하지만 좋은 건 두 번 세 번 봐도 좋은 거겠죠. 우리나라는 친일파가 아니라 바로 이런 분들이 지켜내고 이어온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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