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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과 김가진 : 뒤틀린 역사
게시물ID : sisa_4194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百年戰爭
추천 : 5
조회수 : 25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7/28 19:05:34
출처 :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30728184009759

#지난 27일 미국 워싱턴디시(DC)에서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행사가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특사단장으로 참석했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 등 미국 쪽으로부터 환대받은 이는 백선엽(92) 전 육군참모총장이다. 우리 국방부는 때맞춘 듯 얼마 전 그의 이름을 딴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했다. 백선엽은 앞서 지난 3월에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따뜻한 대접도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그를 군인의 최고 영예인 명예원수에 추대하려고 시도했다.

#새달 8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동농·수당 일가전'이 열린다. 상해임시정부의 고문을 지낸 동농 김가진(1846~1922)과 그의 며느리인 수당 정정화(1900~1991)의 독립운동 자료를 전시하는 작은 행사다. 일제 때 이회영-이시영 가문처럼 일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집안이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국가보훈처 등 정부 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동농 가족의 항일 기상을 알리려는 후손들과 역사학자 등이 기획하고, 서울역사박물관이 협조해서 성사됐다.

백선엽은 6·25 당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칠곡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능력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봉천군관학교를 1942년에 졸업한 뒤 해방 때까지 만주군의 간도특설대에서 항일 독립투사들을 토벌하는 등 반민족 행위를 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백선엽은 이명박 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됐다. 그는 1993년 일본에서 출판한 <간도특설대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변명했을 뿐 자신의 잘못을 참회한 적이 없다.

반면에 구한말에 농상공부 대신을 지낸 동농은 1910년 한일합병 때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멸망한 나라의 지배층이었다. 하지만 그는 3·1운동 직후 비밀 항일결사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을 결성해 이끌다가 그해 10월 일흔네살의 나이에 셋째 아들 의한(1900~1964)과 함께 국경을 넘어 상해임시정부에 합류했다. 그의 망명은 조선 지배층은 모두 합병에 찬성한다고 선전했던 일제에게 큰 타격을 줬다. 동농은 망명 3년 만에 상해에서 숨졌지만, 그의 항일정신은 임시정부 외교연구위원 등으로 임정의 안살림을 챙긴 아들 의한과, 여섯 차례나 국내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던 며느리 수당(의한의 부인)이 이어받았다. 또 4남 용한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 김상옥 열사 사건에 연루돼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으며, 용한의 아들 석동(1923~1983)은 최연소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반민족행위자'는 명예원수 추대니 한미동맹상 주인공이니 영웅시되는 반면에 대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을 이끈 동농은 해방된 지 68년이 되도록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보훈처 공훈심사위원회는 종1품 이상의 고위인사에게 주어진 남작 작위를 보류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뒤틀린 역사 탓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에 진주한 미군은 통치 편의를 위해 백선엽 같은 친일파를 군과 경찰, 관리에 대거 임용했다.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이들은 미국의 후원 아래 이 땅의 이른바 주류가 됐다. 반면에 임시정부의 김구 등 독립투사들은 개인 자격으로 간신히 입국해야 했으며, 새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밀려났다. 역사에서나마 뒤바뀐 정의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동농·수당 일가전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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