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망 -> 하하! 이게 참... 신의 실수였네? 데헷? -> 굽신굽신 미안하니까 덤 많이 얹어 줄게. 신나게 살아.->갓세계의 쓰레기 탄생
이거 아니었나?
일단 나는 앞의 두 가지 요건은 만족 시켰는데... 앞에 있는 머리가 반쯤 까진 반팔 와이셔츠 차림에, 다 떨어진 바닥이 푹신할 것 같은 갈색 레자 슬리퍼를 신은 50대 아저씨의 고객응대는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사망 시각이?"
"아니! 전에 서류에 전부 적었잖아요!"
"이게 절차라는게 있기 때문에..."
"아니 댁들이 잘못한건데 왜 내가!"
"거 목소리가 너무 크고 그러면! 어! 그러니까! 에? 쫓아 냅니다!"
이 아저씨가 째려보니 뒤에서 주춤거리는 20대 초반의 집에서 게임이나 하다가 엄마한테 얻어맞고 기껏 찾은 알바자리가 청경인 것 같이 생긴 녀석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내 뒤에 다가선다.
"아니! 지금 벌써 3일째 잖아요. 망할 스리랑카에서 강도 당해서 대사관에 여권 찾으러 와도 이것 보다는 빨리 끝나겠네!"
"그럼 스리랑카 대사관으로 가던가."
"이 아저씨가!"
처음 사망했을 때에는 왜 죽었는지도 몰라서 어리둥절 했는데, 분명 고도비만으로 공익이나 처받았을게 분명한 뿔테 안경에 여드름 돼지새끼가 구부정한 자세로 "저기서 번호표 뽑고 기다리세요." 란다. 그래서 8시간 기다려서 일반 민원창구에 갔더니 "아... 사망자께서는 일반 사망이 아니고, 번개에 의한 재해사망이기 때문에 우선 재해과로 가시겠어요?" 란다.
재해과로 갔더니 다시 표를 뽑이라고 해서 또 뽑았는데, 이 줄이 처음 민원 줄 보다는 짧은데도 민원인들이 개 발광을 떠는 통에 줄이 줄어들지를 않아 또 12시간을 허비했다. 그렇게 기다리니 이번에는 "이게 일반 재해가 아니고요 징벌에 의한 특수재해네요. 아무래도 교정국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란다.
교정국은 그러니까 신이 나쁜놈을 징벌하는 뭐 그런 곳인데 징벌무기는 거의 잘 안쓴다고 한다. 워낙 명중률이 낮아서... 그렇다고 신식으로 레일건이나 이온캐논 같은 거로 바꾸자니 신벌로써의 위엄도 살지 않고 사후세계에 대한 정보가 누설 될 우려가 있어서 그냥 몇 천년 전에 갖다 놓은거 그대로 사용하는 중이라서 거의 쓰지도 않는데, 가끔 잔탄소모 훈련을 하면 나 같은 사망자가 몇 백년에 한 번 생겨나고는 한단다.
다행히 교정국이 여기에 분과를 하나 설치해서 멀리 이동할 필요는 없었고, 또 이런 일이 많지는 않아서 줄은 설 일은 없었는데... 내 신원 확인하고 또 뭐 하고, 사건 조사하고 어쩌고 하느라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근데 또 나보고 이름 물어본다. 내가 빡이 치냐 안치냐?
"뭐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밖에서 직업이?"
"직장구하는 중이었다고요."
"아. 무직?"
이 망할 대머리 새끼가 사람을 빡치게 만들어서 소송전이라도 하려고 그러는건가? 씨발 도대체 왜 이러는건데? 어? 왜 구체적으로 시비를 까시고 난리야?
"학력은?"
"ㅇㅇ대 공대 졸업이요."
"지거국이구만?"
"아 진짜 아저씨 저랑 싸울래요?"
"허허! 거 참!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참을성이 없으니! 그러니까 직장도 못 구하고..."
'이 씨발 싸우자 이새끼야!'
라는 말이 순간 튀어나올 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철저하게 불리했다. 인터넷이라도 되면 이거 전부 찍어서 업로드 하고 좆되보라고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아나! 진짜 이게 무슨 쓸모냐고요. 재해처리 하는데 내 학력이랑 직업이 왜 필요해요."
"이게 다 행정적 절차라는 겁니다. 법 보여드려? 어? 법? 자자 이거 보쇼. 주신 시행령 1987-11 이거 보여요 안보여요. 여기에 뭐라고 되어있어요?"
"1987? 설마 87년도에 만들어진 시행령? 이 아저씨야! 난 이 때 태어나지도 않았어!"
"이 사람이? 그럼 대한민국 헌법은 자네 아버지보다 더 오래전에 만들어졌으니 안지킬건가?! 응?!"
"그 말이 아니잖아요! 무슨 시행령을..."
"신의 말씀이잖아! 신의!"
대머리 아저씨가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자 줄 서있던 사람들이 이 쪽을 빤히 바라본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아저씨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청경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시켰다.
"커피 드시오?"
"안먹어요."
"그럼 말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청경이 타온 맥x 모카골D를 홀짝거리더니 질문을 계속했다.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연애사 까지 하나하나 물어오고 심지어 성겸험 횟수까지 묻는 거지같은 작업이었다.
"아! 없다고요!"
"뭐 절도나... 기타 등등 법적인 문제가 아예 없었다고?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없어요. 예? 없어!"
"어허! 지상의 법도와 하늘의 법도가 다르거늘!"
"이 아저씨는 방금 전 까지 노령연금 기다리는 7급 공무원 처럼 앉아있더니 왜 갑자기 신선타령이시지?"
내가 톡 쏘아붙이자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머리를 슥슥 닦는다.
"하여간 지상에서 그 뭐냐? 공소시효? 그런거 여기서는 없으니까..."
"없기는 왜 없어요. 저번에도 20년 간 탈주한 도주영혼 결국 공소시효 끝나서 이민국에 당당히 기어들어왔는데도 별 제지 못했잖아요."
뒤에서 눈치없이 청경이 중얼거리자 아저씨가 버럭 화를 내며 청경을 내 쫓는다. 그러자 청경은 "아저씨! 저거 공무원 정보법에 걸려요! 확 찔러버려!" 하면서 후다닥 도망쳤다. 이 아저씨 나이도 많고 파견나온데다가 혼자 앉아있는거 봐서는 교정국에서도 밀려나고 진급도 못하고 쓸쓸히 파견나온 분과에서 혼자 청경이랑 노가리나 까는 신세 같은데 그나마도 청경이랑 사이도 안좋은 모양이다.
"아! 나는 관심 없고! 그래서 질문은 다 끝난거에요?"
"몇 가지 더 남아있어요."
"아니 이런걸 왜 물어봐요?"
"이게, 신벌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키기는 하는데, 그래도 이게 신벌장치는 신벌장치라 그래도 신벌을 맞을 만한 사람이 맞는 경우가..."
"그러니까 내가 범죄자라서 맞았...? 아! 이거 안되겠네! 여기 책임자 나오라고해!"
내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치자 다시 사람들 시선이 모여든다. 하지만 청경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공익같은 돼지는 자기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이나 삑삑거린다.
마구 소리치자 방금 전 까지 고자세였던 아저씨가 내 팔을 붙잡으며 연신 미안하다고 굽실 거린다. 이건 필시 이 인간이 뭔가 잘못하고 있거나 내가 우위에 서있다는 것이리라. 그게 아니면 뭐 경찰이라도 불러서 연행했겠지.
"포션 마실래요? 포션? 여기 포션이 아주~"
"아 됐거든요? 딱 봐도 박Z스구만 뭔 포션이야!"
내게 박X스 모양의 갈색병을 디미는 아저씨를 밀어내며 다시 소리치려 하자 이내 그가 뭘 알았다는 것인지 알았다 알았다를 반복하며 내 팔을 끌어당긴다. 다시 소파에 앉자 아저씨가 육수라도 뽑아내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거린다. 저러다가 심장마비 같은걸로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여기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오는 세계잖아? 죽은 사람이 죽으면 뭐 어떻게 되는건데? 죽은 사람이 죽을 수 있으면 그거 개 꿀 아니냐? 지옥 판결 받을 것 같으면 자살 해버리면 되잖아?
"이봐요 청년. 이게 절차가 다 복잡하고."
"아니, 나는 지금 여기에 집도 없고요? 그리고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이 그냥 걸어가는데 벼락맞아 죽었다니까? 예? 근데 이게 댁들 잘못이라면서요. 잠깐? 여기 언론 없나? 생각해보니까 이거 수백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이면 큰 사건이네! 어?! 국방부 야포사격 훈련 도중에 민가에 포탄 맞아서 사람 죽는 수준의 얘기 아님? 와! 이걸 지금 댁들이 해놓고 나한테 지금? 어! 어! 그러니까 나한테! 어! 와... 진짜 어이가 없다. 그러니까 나한테 싹 발라버리려고 했던거네! 어? 야! 세상 무섭네! 어? 저승 무섭네! 어! 무서워서 책임자 없으면 심장마비 걸리겠네! 책임자 나오라고해!"
사실 별로 미래도 없는 삶이었고 대충대충 살고 있으니 안아프게 죽여줘서 좀 고맙기는 한데, 슬슬 눈치보며 내가 받아야 할 권리 같은 것들 속이고 들어가려는게 엄청 눈꼴시다. 이래뵈도 인터넷 폐인 3년에 주식 갤러리 고정닉이다 이거야! 주식 빼고는 넘사벽급의 지식이란 말이다. 그 넓이가 은하계 수준인데 날 가지고 놀려고해? 물론... 다 모아 놓으면 총 중량 50g정도 되는 수준의 지식이지만 아는 건 많다고!
"아이고! 학생! 아니 고객님. 제가 책임자인데 또 누굴 부릅니까. 자 침착하시고..."
이제 청년에서 학생 그 다음은 고객님이냐? 호칭 한 번 드라마틱하게 변화한다. 이정도 스팩타클이면 마이클 베이가 와서 눈알 파면서 울부짖겠네.
"딱 봐도! 어떻게 해서든 자기들 잘못 나한테 떠넘기려는게 보이는데 어떻게 침착해! 몰라! 모르겠으니까, 책임자 나오라고 해요!"
"잠깐! 잠깐만 기다려보시라니까? 어! 왔네! 왔어! 이야! 이거 우리쪽에서 큰 잘못 했네!"
내가 일어나서 진짜 깽판치려는 조짐이 보이자 아저씨가 팩스기기로 달려가더니 종이 몇장을 들고왔다. 분명 아 까 부터 기능 안하고 있던 물건이니까 분명 예전에 왔던 것이리라. 그나저나 팩스에 온 것도 안봤단 말야?
"이게! 우리쪽 기기 고장네요. 이야... 우리 고객님 아래쪽에서 참 정직하게 살아오셨는데, 도대체 왜 기계가 저 미친짓을 했을까요."
"아! 난 모르겠다니까? 모르겠으니!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나오라고 하세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건 제 선에서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웃기고 있네! 내가 헬조선 사람이에요. 네? 거기서 북한군이랑 전투중에 병사들 죽어나가도 3천만원 던져 주고 훈장하나 서훈 안해주려고 기를 쓰는 나라에서 온 사람인데. 무슨 아저씨 선에서 깔끔하게 끝나요? 예? 아저씨는 안되고, 거 청장선에서 끝날 일인거 같으니까! 일단 나는 오늘 여기서 나가고! 어디 법무법인이라도 찾아봐야겠네!"
"아이고! 이 친구가 참! 성질급하네! 어디보자... 아이고! 이민청 허가 바로 떨어졌네!"
"이민청?"
"예예! 여기서 바로 환생하시면 된다니까요? 기억 그대로~ 지식 빠방하게 넣어서 우리 고객님 사시는데 전혀 문제 없게끔 잘 처리하겠습니다. 캬~ 여기가 진짜 가기 힘든데거든요. 예? 요즘 여기에 일본애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나? 여기 원주민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다네요! 그래서 요즘은 여기 잘 안보내주는데~ 이야~ 고객님께 잘못한거 바로 알아서 예? 바로 보내드린다네요!"
흠... 갓세계 가는거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거 외모는..."
"아이고! 물론 외모도 저희가 알아서! 예? 까~~알끔하게! 그 미소년 있잖습니까? 미소년! 아니 미소녀 해드릴까?"
"아니요. 미소년..."
"카탈로그 갔다드릴까? 이게 또 이민청에 신청자가 워낙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우리 고객님은 금방 처리해드릴 겁니다! 우선순위 1순위라니까요? 이게 청약을 넣어도 500년은 넘게 걸리는데, 우리 고객님은 늦어도 1년 안에는 통과 될겁니다!"
일년? 이런 내가 어디서 살라고!
"에이~ 고객님 지금 그 동안 어떻게 하냐고 생각하셨죠? 우리가 그래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이민청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 애들은 그냥 후딱후딱 아무렇게나 던져버리잖아요? 우리는 그 쪽 동네 가기 전에 직업훈련부터 시작해서 문화 기타 등등 모든 교육을 전부 알선해드리고 편안~하게 생활하실 수 있게 해드린다니까요? 기숙사도 있습니다! 이게 또 요즘에 인기라서 기숙사도 신식으로 지어졌고, 1인 1실 아닙니까? 샤워실도 있고 와이파이도 공짜로 터지고... 컴퓨터도 최신형이라서 안 되는 게임이 없다네요."
이 아저씨 갑자기 공무원에서 외판원으로 변한 것 같은데? 하여간 혹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지장 딱! 찍으시면? 바로 일 처리 끝나고..."
"속는 기분인데."
"에이 속고 말게 어디있어요! 뭐 빚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딱! 가셔서 직업훈련 받으시고 외모 싹 고치신 다음 즐거운 판타지 라이프를 즐기면 되는건데요. 나도 노후는 그쪽으로 가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요."
몇 시간을 그렇게 그 아저씨의 달변에 녹아내린 후 이민청으로 갔다.
그리고 속았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분명 그 아저씨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다만...
내가 가야하는 세계가 신석기 시대라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뭐야? 문명 레벨에서 새로 건축하라는거야? 문자는 커녕 언어는 존재하는거냐?
그러니 갓세계 가게 되면 꼭 법적조언을 해줄 수 있는 변호사를 대동해서 가도록 하자. 더군다나, 나는 마법이나 성검 같은 무기도 받을 수 없었다. 젠장! 문명 레벨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