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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제의 폐해[수정]
게시물ID : sisa_350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黑星★
추천 : 0
조회수 : 455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07/10/19 13:18:03
우리나라 교육 입시제도의 가장 큰 논란거리는 아마도 내신제도일 것입니다. 내신 제도를 도입한 표면적 이유는 "평소에 지속적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게 더 기회를 주기 위해" 입니다.
"3년간 쎄빠지게 공부해 왔는데, 시험 한 방으로 대학이 결정되면 억울하잖아?"

그래서 학생들은 대학을 위해 고등학교 3년 내내 좋은 내신을 받으려고 공부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는 좋은 수능 점수 뿐 아니라 좋은 내신 점수 또한 필요합니다.

내신제도는 제가 생각하기에, 다음과 같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 학생들을 지나친 압박 속에 몰아넣는다.
올해 졸업하는 학생들은 우스갯소리로 수능을 열세번 본다고 하더이다. 내신시험 1년에 네번 있는 건데, 그거 한 번 볼 때마다 학생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죠. 학생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3년간 참는다" "대학만 가 봐라" "대학만....." 고등학교 내내 대학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학생들은 대학만 가면 한없이 풀어집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선 견딜 수 없습니다. 힘드니까요. "내 꿈을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엔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가 영 내 꿈과는 동떨어진 짓입니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아이도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도 어쨌거나 미술실기를 잘 봐야 하거든요. 그러니, 미술이든 음악이든 하는 겁니다.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위해서.

둘째,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내신이란건 일선 교사들이 매기는 점수가 다입니다. 선생님들이 거의 전권을 쥐고 있죠. 그러니 문제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선생님이 시험 문제를 잘못 내 놓고 끝끝내 점수를 고쳐주지 않는 일, 겪어 보셨을 겁니다. 이정도는 약과죠. 이해찬씨가 야심만만하게 도입한 실기(수행평가)는 더합니다. 저 중학교때도 체육선생한테 알랑거려서 좋은 점수 받으려던 얼굴 반반한 여자애 있었습니다. 반대로 점수를 빌미로 학생들한테 찝적거리던 선생들도 있었구요. 밉보였다는 이유로 점수를 깎는 선생도 있을 터입니다. 이 와중에 치맛바람 휘날리는 극성 부모님들은 당연히 봉투공세를 하겠죠?
게다가 학교별로 시험 난이도도 다르죠. 애들 평균 수준도 다릅니다. 중학교때 반에서 20~30등 하던 녀석이 고등학교를 시골로 가더니만 전교1등을 놓치질 않더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모 외고에서는 내신 부풀리기 때문에 시끄럽기도 했죠. 전교생 평균이 90점이래나요.

셋째, 방황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중고등학교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합니다. 누구나 한번쯤 방황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까? 아니, 오히려 그 시기에 한번쯤 방황해보지 않은 사람이 비정상일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개념없는 짓거리였지만, 그 때에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선생님 욕도 하고, 멋있어 보여서 담배도 입에 대 보고, 가출도 해 보고, 부모님이랑 대판 싸우기도 하고.......
그게 정상입니다. 그 시기를 벗어나는 걸 "철들었다"라고 하죠. 철들면 그런짓 안 합니다. 하지만 철들기 전엔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죠.(절대로 저런 짓거리를 권장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런데, 내신제도는 방황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방황하는 어린양은 대학입시 경쟁에서 내쳐 버립니다.
예전같으면, 고등학교 1~2학년때 잔뜩 방황하던 문제아가 3학년때 철들고 정신차려서 피터지게 공부하면 서울대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 "이적"의 에피소드를 들어 보자면, 고등학교때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부모님이 하루는 그 악기를 부셔 버렸답니다. 열받은 청년 적군은 그때부터 이 악물고 열공해서 당당히 서울대 입학, 대학 입학하자 마자 "패닉"으로 데뷔했죠.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내신이란 제도를 도입하기 전엔.
1~2학년때 닥공 안하고 방황하면 내신이 나빠서 서울대에는 원서 쓰지도 못합니다. 수능 만점 받아도 못 갑니다. 반대로 말하면, 서울대에는 고등학교때 방황이라곤 안 해본, 기형적인 청소년기를 보낸 학생들로만 가득하단 소리군요. 이 사람들이 나중에 커서 우리 지도층이 됩니다. 그러니 사회지도층과 서민층에는 거기서부터 괴리가 생기는 겁니다. 청소년기에 방황을 겪어본 대다수의 우리, 청소년기엔 그저 닥치고 공부만 한 그분들.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뭣보다, 고등학교때 방황 안해본 그분들, 대학 가서 방황하더라구요. 아직 철이 덜 들었어요. 시험 문제 어렵다고 교수님들 욕하는 거 보면.

사실 내신제도 같은거 버리고, 수능 난이도 좀 높여서 변별력 좀 갖추면 됩니다. 그러면 대학 본고사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내신을 고집하느냐 하면, 사실은, "시험 한방에 인생이 결정되는건 가혹하니까"따위가 아니라, "3년 내내 쳐놀다가 시험 한번 잘 봐서 나보다 대학 잘 간 저놈, 배아프니까"입니다. 다시 말해, 내신제도는 "평소에 지속적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게 더 기회를 주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라, "평소에 공부 안 한 학생은 뭔 짓을 해도 좋은 대학 못 가도록" 막는 제도입니다. 내신 좋은 놈이나 나쁜 놈이나 수능 망치면 재수해야 하는 건 똑같거든요. 물론, 수시모집은 얘기가 좀 다르죠. 수능 반영 안 하는 전형도 많고 하니.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히 좋은 대학들에선 다 수능 조건부죠. 내신만 좋아가지고는 좋은 대학 못 갑니다. 내신"도" 좋아야 하는 겁니다.

시험 한 방? 물론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시험 한 방을 위해 한 노력은 시험 결과로 그대로 드러납니다. 3년 내내 죽어라 했는데도, 3년 내 놀고 3학년때만 반짝 빡세게 한 저놈보다 수능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그건 공부 방법이 틀린 것이거나, 아니면, 죽어라 공부했다는 건 자기 생각일 뿐이고 사실은 공부 안 한 겁니다. 시험 잘 본 사람은 대개 그만한 노력을 한 겁니다. 당신이 안 본 곳에서 공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요즘 "좋은 대학은 학생들을 훌륭하게 길러내는 대학이므로, 꼭 좋은 학생을 뽑으려고 기를 쓸 필요가 없다" 라는 논거를 펴고 계신 분들이 보여서요.
좋은 말씀입니다. 평범한 학생들을 훌륭한 학생으로 길러낼 수 있는 학교가 진정 좋은 학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학생 입장에선요? 누구나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면 훌륭한 학생이 되어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기회를 누구에게 주는 것이 정의입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수능시험 잘 본 사람에게 주는 것과, 공부 그럭저럭 했지만 후진 고등학교 다닌 덕분에 내신 캡짱 먹어서 대입점수 좋은 사람에게 주는 것. 좋은 대학이 좋은 학생을 뽑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학생이 되려고 노력한 학생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나는 저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학생이 되려 노력했는데, 정작 저 대학은 "우린 당신같은 좋은 학생 필요 없습니다. 아무나 뽑아서 좋은 학생으로 기르면 되니까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재능과 노력에 맞춰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맞습니다. 좋은 대학에서 교육받을 기회 역시 사회적으로 매우 가치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정의롭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
83년생부터 학력저하가 있지 않았다는 논거로,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우린 교수님들로부터 너희들은 수준 떨어져서 가르치기 힘들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하셨는데,
대체 어떤 개념없는 교수님이 학생들 면전에다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고등학교도 아니고.
저희 아버지 선배님이 교수로 계신데, 학력저하 맞답니다. 전엔 바로 전공수업 들어가도 됐는데 이젠 입문과목을 따로 가르쳐야 된다고 하시더군요. 공대 들어와서 미적 못하는 학생들이 그렇게나 많대요. 예전에 비해 객관적으로 학생들 학력이 떨어진건 맞댑니다. 뭐 저도 그분께 들은 얘기니 객관적인 자료로 검증된 건 아닙니다만, 최소한 교수님 중에 그런 소리 하시는 분은 있습니다. 그러니 저 논거는 설득력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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