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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에게 미안합니다.
게시물ID : gomin_5114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일마레따
추천 : 2
조회수 : 2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20 15:51:36

저는 광주에 살고 있는 38살 직장인입니다.

 

저에겐 9살 아들, 6살 딸이 있습니다.

 

와이프와 전 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났고, 5년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둘다 전남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번 선거때...한 일주일 전부터 저는 "문재인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이 되어야 한다" 를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에 들떠...혹은 패배나 하지 않을 까 하는 불안감에

 

표정은 굳었고, 퇴근만 하면 뉴스만 보는 생활이 지속되었었습니다.

 

예전에는 퇴근하면 아들과 오목을 두거나, 제가 어렸을 적 하던 딱지치기를 하곤 했었고,

 

딸에게는 동화책을 읽어주곤 했었죠.

 

애들에게 뉴스만 보던 아빠가 낯설게 느껴졌었나 봅니다.

 

어제 개표가 진행되면서 저는 어김없이 TV앞에 눌러앉아 방송을 보고 있었고

 

방에서 놀던 애들도 제 옆에 와 앉았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표 획득율이 박근혜 후보 보다 낮자 아들녀석이 "아 씨....짜증나 문재인이 지쟎아"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와이프는 놀라 아들을 쳐다봤습니다.

 

덩달아 딸녀석도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투를 내뱉은 아들, 딸을 혼내자

 

"아빠도 저번에 그랬쟎아"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

.

.

미안했습니다. 아들, 딸에게...

 

아이들에 눈에 저는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던 걸까요.

.

.

제가 딸녀석의 나이쯤 5.18 광주 민주화항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당시 저는 서석동 단칸방에 살고 있었고,

 

광주 교육청에서 운전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 누나 둘과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겨울에만 덮던 솜이불로 창문을 막으셨고

 

밤에는 멀리서 콩알탄 터지는 소리처럼 들리는 총소리가 나기도 했고,

 

세들어 살던 주인집 대문 밖에서 군인들이 불을 피우던 모습도 기억이 나고...

 

군인에 의해 모든 것이 진압된 후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화순군 능주면에 사시던 할머니를 뵈러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어떤 남자분의 시신도 기억이 납니다.

 

그런 제가 빨갱이였을까요?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을 데리고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를 뵈러가야했던 어머니가 빨갱이였을까요?

 

아니면 그저 베트남 참전 후 교육청 운전수로 일하셨던 아버지가 빨갱이였을까요?

 

 

.

.

.

전 이번에 어린시절의 눈으로 채증한...절대로 제가 알기에 빨갱이가 아니었던 분들이

 

그 더러운 정권의 연장선에 있는 정권에 의해 다시한번 모욕을 당하지 않고,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에서 상식이 이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랬던 것 뿐인데...

 

아들과 딸의 눈에는 그런 아빠가 낯설게 느껴졌었나봅니다.

.

.

박근혜 후보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한가지 부탁드리는 것은 부디 올바르지 않은 정치에 의해 제가 아들, 딸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가 되지 않게끔 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그리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 만큼이나 압제의 힘에 쓰러져간

 

광주 시민분들을 기억해주십시오.

 

그리고 48%가 51%와 같은 당신의 국민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오늘 퇴근하면

 

아들, 딸녀석과 공기놀이나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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