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올린 글에 무려 4분이 추천을 해주시고, 2분이 다음 얘기를 올려달라고 하셔서 ㅎㅎ 올려봅니다.
회사 일이 많아 시간이 없으므로 음슴체 갑니다.
너.. 이 색...
야구장에 가는 날이었음. 주로 나랑 동생 2인이 가는 편인데 그 날은 동생 친구넘들도 따라왔음.
동생이랑 워낙 친하게 지내니까 동생친구넘들도 즈이 형제보다 날 더 만만하게; 생각해서 술 처마시고 새벽에 3차하러 우리 집으로 와서 '누나! 슐안주 점 듀데요~' 하는 놈들임 (계란말이 해줬는데 안에 다져넣은 양파 안 익었다고 툴툴거리고, 그 이후 난테 뒤집개로 맞는 과정을 즐기는 거 같음). 겜하다 안 되면 동생한테 전화해서 '누나 바꿔줘. 누나한테 물어보게' 하기도 함.
여튼 그 놈들과 야구장에 갔는데 한 명이 늦어서 나부터 들어가 자리를 잡기로 함 (당시 지정석 아님).
그때 우리가 원정인지 홈인지 잠시 헷갈렸는데 보이는 외야출입구로 가면 바로라며, 날 들여보냄.
암 생각없이 들어갔는데... 상대편 응원석.............. (당시엔 야구장 폭력도 흔했음)
나는 당시 등에 맨 백팩에 엄청시리 큰 울팀 깃발을 꽂고 있었음............
조용히 전화했음
나: 야 이 시*야! 여기 아니잖아! 애들이 날 잡아먹을 듯이 야리고 있단 말이다!
동생: (낄낄 웃고, 친구들한테 '야~ 우리누나 잘못들어갔대' 등등을 얘기한 후, 급 진중한 목소리) 명복을 빈다.
나: 디진다..
동생: 누나 말고. 거기 있는 애들. 다른 사람 같아야 걱정을 하지. 애들 패지말고 조용히 우리 응원석으로 가.
나: 너 일부러 나 여기로 보낸 거지!
동생: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 물론, 유혈사태 없이 조용히 입장했음.
저희 신고 안했는데요..
그 날은 동생과 둘만 집에 있는 휴일이었음. 나름 AV 시스템이라고 대형 오디오와 TV가 연결되어 있는 거실에서 둘이 퍼져서 야구중계를 시청하고 있었음.
그런데 둘 중 누군가가 '조니 실감나는 시청'을 제안해서 둘 다 유니폼 입고; 깃발 들고; '집구석의 야구장화'를 실천하기 시작했음.
심지어 공수교대 타임에는 오디오에 응원가 cd를 걸고 둘이 일어나서 춤추고 응원가 부르는 생쇼를 함.
그러던 와중에.. 지고 있던 우리팀의 대역전 찬스. 이때부터 이성의 끈을 놔버린 우리. 그리고 진짜 역전!!!
둘이 소리 지르고, 뛰고, 깃발 휘두르고, 노래 틀고 진짜 생난리를 침.
이때 우리집은 그럭저럭 큰 마당이 있는 단독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음.
그런데 그 난리를 치고 약 5~10분쯤 되었을까.
동네에 소방차 사이렌이 울림. 바로 집 앞 골목에 소방차가 들어섬.
우린 급쫄아서 오디오 끄고,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보았음.
어디 불난 건가 물어보자 동네 주민이 신고는 했는데, 허위신고인 것 같다는 설명.
집에 들어와 자초지종을 설명.
나: 근데.. 설마 우리가 시끄러워서 불 난 줄 알고 누가 신고한 건 아니겠지?
동생: 불이야 소리 지른 것도 아니잖아...... (정적) 그런가?
나: 죽은 척 하자.
동생: (갑자기 울팀 깃발을 내 손에 쥐어주며) 누나. 우리 팀을 알리려면 이때야. 이거 들고 나가서 한바퀴 뛰고 와.
- 이것 때문에 콜로세움 열리진 않겠지...
징징이 남매
울 남매는 야구장에 직관을 가면 그리 승률이 좋지 못했음. 그래서 '우리가 가서 진 건 아닐까' 하는 자책도 꽤 하는 편이었음 (그냥 울 팀이 못한거겠지)
그런데 그 해는 우리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음. 둘은 매우 깊은 고민과 진지한 상의 끝에
'우리가 언제 또 한국시리즈에 나가겠냐. 가자. 어찌되든 후회만 남기지 말자'로 결론 냈음. 그 날은 모든 것이 결정지어지는 7차전이었음.
근데 그 해는 일정이 뒤로 밀려서 거의 늦가을, 초겨울 수준의 날씨에 코시를 치뤄야했음. 야구장 갔더니.. 너무 추워서 뭘 못하겠는 거임.
동생: 우리 그냥 여기서 죽자.
난 그래도 긴팔이나 입었지, 이 놈은 반팔 입고 날뛰기 시작함. 그런데 야구를 보다 보면 '아 이 경기는 지겠구나'하는 감이 옴. 그날은 4회쯤에 그 사실을 깨달았음. 질 걸 아는데 응원하는 심정은 참 비장했음. 또 다시 강조하지만 그날 졸 추웠음.
그렇게 상대팀의 우승으로 경기가 끝나는데, 우리 응원석에선 일제히 '괜찮아!' 열풍;
그 당시 상대팀은 팬이 적은 팀이라 금방 다 떠났지만, 우린 상대팀 헹가레치고 어쩌고 하는 동안도 남아서 계속 응원가 부르면서 울고 있었음. 졌다는 사실보다, 끝까지 이 악물고 덤빈 우리팀이랑 같이 응원하는 같은 팀 팬들이 자랑스러워서 그냥 벅찬 눈물이 나왔음. 동생이나 나나 그렇게 우는 건 서로 처음 봄.
경기 끝나고 1시간이 넘게 응원한 사람들은 끝나고 서로 악수하고 부둥켜 안으며 감동의 위로를 했음. 나랑 동생 뿐 아니라 그냥 옆에 모르는 사람들이랑 서로 그렇게 인사함.
누가 보면 우리가 어디 식민지 지배에 있다가 해방된 사람인 줄 알았을 거임.
야구장에서 나오니 탈진할 거 같았음. 주차장에서 터벅터벅 걷는데 그때 울팀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우리 앞으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음. 다들 또 언제 탈진했냐는 듯 박수치고 환호하니까 버스가 거의 서다시피 서행하며 안에 탄 선수들이 손 흔들어줬음.
바로 그때, 어떤 미친놈이 울팀 깃발을 들고 버스 앞으로 뛰어들어가서 울팀 만세 삼창을 하는 거임. '저 장한 미친놈은 어느집 자손인가..'하며 다시 보니 내 동생넘임........................... 그때 처음 저 놈의 누나라는게 자랑스러웠..;;;
그때 야구장이 원정구장이라 집에서 겁나 멀었는데 둘이 질질짜면서 집에 왔음. 그리고 3일간 둘 다 일어나지도 못함.
- 그리고 그 해가 바뀌기 전 동생은 군대갔음
부록:
울 집은 아빠를 제외한 엄마,나,동생이 야행성임. 아침에 못 일어남. 그래서 일요일이면 아빠가 어케든 셋을 깨우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심.
그러던 어느 날 ㅋ 일요일 아침 청소는 주로 혼자 일어난 아빠 담당인데 남은 식구들 깨우려고 일부러 TV 볼륨을 크게 틀어놓거나, 음악을 크게 해놓으심.
아빠는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대개 클래식이었는데 그날은.. 울팀 응원가 cd를 켜놓으심.
동생이랑 나 둘다 벌떡 일어나서 (피가 끓어서 잘 수가 없음. 거의 조건반사임) 눈도 못 뜬 채 거실로 나옴.
나: 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동생: 장난없다.... 우리의 약점을 제대로 간파했어. 아빠는.
- 그 이후, 우리집 기상송은 응원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