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그런 얘기 많이 들립니다. 승복하자, 다수의 선택인데 어쩌겠냐, 져놓고 징징대는 것 같아 보기 흉하다, 니 일상이 더 급해 병신아;;;
뭐 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 꿀꿀한 기분 갖고가봐야 나만 기분 더럽고 세상이 그런다고 변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이대로 아무 일 없던 듯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기분이 영 그렇습니다. 저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동안 독을 품고 와신상담하며 칼을 갈아왔습니다. 피해자인 주제에 가해자에게 화해하자고, 화합하자고 대인배스럽게 내밀었던 손길을 붙드는 척 하면서 뒤로는 상대방을 때려잡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과 5년만에 저들 세상을 찾았습니다. MB 5년 사이에 순식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퇴보가 우연이었을까요? 아뇨, 그들은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간 진보-합리적 보수층 사람들은 대체 뭘 했죠? 5년동안 뭘 했나요?
누군가 증오를 품고, 독을 품고 덤벼들면 말리기에만 급급했지요. 똑같은 놈들 된다.
저들의 과오에 강경한 발언으로 비난을 퍼부어도 자제시키는 데 정신이 팔렸습니다. 똑같은 놈들 된다.
온갖 편법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동안 맞불 놓을 생각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지요. 똑같은 놈들 된다.
다행히 똑같은 놈들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용산 철거민이 됐고 삼성 노동자가 됐고 쌍용 해고자가 됐고 민영화다 가격담합이다 사는 데 팍팍한 소식만 들려오는데도 무기력하게 때리는대로 처맞고만 사는 소시민이 됐습니다.
저는 민주화 끝물 세대입니다. 지금이야 가정에 직장에 이리저리 걸리는 게 많아 소심하기 이를 데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사상만큼은 대학교 다닐 때에서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래 묵어서 독이 참 많이 중화되기도 했지만, 독기를 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마저 빼면 정말로 저들과 똑같은 놈들이 될 것 같아서요. 물론 잘해봐야 저들의 손가락질에 휘둘리는 일반시민1 정도가 현실이겠지만.
다수결은 소수를 입닥치게 하려고 만든 시스템이 아닙니다.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비정한 시스템입니다. 소수의 발언권이라는 보완이 항상 따라붙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승복의 의미는 마음 속 응어리까지 내려놓자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결과를 인정하고 정신승리에 빠지지 말자는 얘기일 뿐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구질구질하게 우울한 결과에 얽매이고 싶지 않을거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세상의 부정과 싸우고 싶을 겁니다.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굳이 표시하지 않더라도 분노와 울분만은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진정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유시민 전 장관이 항소이유서에서 차용했던 네크라소프의 싯구입니다.
진지는 스파게티 먹었습니다. 집에서 넉넉하게 했더니 너무 많이 먹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