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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7)
게시물ID : pony_212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9
조회수 : 42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2/21 12:06:46

(6)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1118&s_no=4220517&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271809

 

결국 선택한 것은 택배 상하차 일이었다. 집 근처에 있는 직업소개소 건물은 무척 허름했다. 2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간판은 낡았고 건물은 오랜 세월을 보여주듯 얼룩덜룩한 뗴가 타 있었다.

 

난 직업소개소에 들어가기 전, 계단에서 녀석을 꺼내주었다. 녀석은 나오기 싫은건지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서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무슨 일이지? 무뢰한씨.'

 

이러면서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리자 귀부인같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아무래도 아까 일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난 이럴 때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해."

 

그러자 이렇게 썼다.

 

'넌 아까 나한테 너무 무례하게 굴었어. 나는 좀 더 정중하고 격식있는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녀석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있는데 이렇게 정중하고 올곧은 말은 어디에서 배워왔을까 하고 생각했다. 저런 말은 우리 엄마도 못쓴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안쓰시겠지. 저 녀석의 말투는 어느 나라의 귀부인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영화 '로마의 휴일' 에 나오는 로마 거리도 아니었고 저 포니가 오드리 햅번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녀석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서 어줍잖게 예의라는 걸 갖춰보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머리르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왜 있잖아. 어릴 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차마 친해지기는 못해서 괴롭히는거... 아니면 조금 관심있는 여자애가 있는데 차마 말은 못하고 그냥 괴롭히면서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뭐, 그런 거."

 

그러자 녀석은 내 말이 의외였는지 입을 쩍 벌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다가 곧 베시시 미소지었다.

 

'결국 나랑 친헤지고 싶다고 말하는거면 난 당연히 환영이야. 그러니 괴롭히는 건 관둬.'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 말은 보통 괴롭히는 이유가 그건데 너는 보면 그냥 괴롭히고 싶어져. 마치 심슨에 나오는 랄프 위검처럼..."

 

녀석은 날 빤히 바라보다가 곧 호호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나는 "농담이야" 라고 말하고서 난 내 눈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핑키 프로미스. 앞으로 안 괴롭힌다고 약속할게."

 

녀석은 수줍게 큭큭 거리고는 자기 앞발로 눈을 치며 메모장에 썼다.

 

'나도 핑키 프로미스.'

 

이 메모를 보여주면서 수줍게 혀를 빼꼼 내밀었다가 넣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직업소개소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다. 숙녀 취급을 받기 원하는 이 망아지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앞으로 좀 답답할지도 몰라."

 

그러자 이렇게 썼다.

 

'얼른 이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그리고.. 사실 배도 고프고.

'

저 글을 읽고 생각을 해보니 일을 하기 전에 무엇이든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소개소를 들어가는 건 잠시 미뤄두고 근처의 편의점을 찾았다. 편의점 앞에 서서 지갑을 확인해보니.. 지폐가 단 한장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아들! 지금 바빠!"

 

"아, 엄마 다름이 아니고요..."

 

확실히 이 시간이라면 가게는 회사원 손님들로 붐빌 것이다. 내가 도와드리지 못해서 더더욱 바쁘시겠지. 그래서 차마 통장에 돈 좀 부쳐달라고 말할 수 가 없었다. 내가 우물쭈물 거리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 돈 떨어졌길래 통장에 5만원 부쳤어. 그걸로 밥좀 사먹고 그래. 엄마 끊는다."

 

엄마의 통화는 끊어졌는데도 난 곧장 폰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생각을 해보면 나는 24살이 넘도록 엄마에게 한 번도 용돈을 드려본적이 없었다. 어머니에 용돈을 받아가며 생활하는 주제에 그 용돈들은 모두 허투로 쓰곤 했었다. 담배도 피우고, 피씨방도 가고.. 술도 마시고.

그래, 이번만이다. 다시는 어머니께 용돈을 받지 않을거라 다짐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나와 레리티가 먹을 것을 찾아보았다. 나는 애그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을 골랐다. 후식으로 먹으려고 푸딩도 샀다. 하지만 레리티가 먹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삼각김밥은 전부 고기가 들어있는 것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샌드위치와 햄버거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뭘 먹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보던 찰라, 딱 적당한 것을 발견하였다.

둘이서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아까 갔었던 PC방 윗층이 비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방을 내려놓자, 지퍼를 열고 배꼼히 머리를 내민 레리티는 바로 이렇게 쓴 메모장을 보여주었다.

 

'배고파 ㅠㅠ'

 

그래 알았어. 하고서 난 녀석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것을 꺼냈다.

 

"짜잔~!"

 

내가 그것을 내밀자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렇게 적었다.

 

'이게 뭐야?'

 

난 손수 뚜껑까지 따준 뒤, 녀석에게 대답했다.

 

"개 사료야."

 

머리가 나쁘면 몸만 고생하는 건 줄 알았는데 몸까지 아프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레리티는 씩씩거리며 공사가 취소되면서 나뒹굴고 있던 철골 자제로 날 때렸다. 그것은 확실히 폭력이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는 약육강식의 세계도 이렇게 잔인하게까지는 굴러가지 않을 것이었다.

녀석은 내가 먹으려고 산 샌드위치와 푸딩을 먹으며 이렇게 썼다.

 

'성의는 고맙게 생각할게. 개 사료. 맛있어 보이네.'

 

이렇게 말하고, 흥, 하며 콧방귀 뀌고, 고개를 돌리자 머리가 찰랑거렸다. 마치 기름 발라놓은 것처럼 윤기가 흐르는, 샴푸 광고 모델 같았다. 하지만 그 모델이 아이유였어도 용납 못할 불행이 내 앞에 닥쳐있었다. 그 불행이란 바로 개사료와 삼각김밥이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포니는 개사료같은 것을 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개사료 성분을 확인하니 양고기가 다량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 포니가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먹어보니 무척 기름지고 바삭했다. 그리고 전혀 간이 되어 있지 않아서 밋밋했다. 그래서 웩.. 하는 표정으로 그것을 뱉고 바닥에 퉤퉤하며 침을 뱉었다. 그러자 레리티는 이렇게 써서 보여주었다.

 

'우리 둘 뿐이어도 식사 예절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네에 그래야지요. 폭력 공주님. 그래서 일부러 녀석에게 보란듯이 개사료를 한 입에 털어서 와그작와그작 씹었다. 레리티는 눈쌀을 찌푸리며 내가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진정으로 역겹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약올리려고 일부러 쩝쩝대며 개사료를 씹다가 묵구멍으로 잘못 넘어간 알맹이 하나가 기도에 걸려서 사례에 들리고 말았다. 난 폐랑 횡경막이 분리될 것처럼 계속 기침하면서 입에 있던 모든 것을 땅바닥에 뱉어버렸다. 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러자 레리티는 식욕이 떨어졌는지 더 이상 밥을 먹지 않았다. 덕분에 난 배부르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지만, 레리티에게는 참 안좋은 인상을 남긴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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