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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피를 마시는 새>를 다시 읽었습니다...
게시물ID : humorstory_3454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늬비
추천 : 2
조회수 : 46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21 14:34:24


   그을린발은 몸을 돌려 발광하는 주테카를  부여잡았다. 주테카는 그

  의 손을 뿌리치고  허공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그을린발이 비틀거릴 

  때 그를 돕는 손길이 나타났다.  반대쪽에서 주테카를 부여잡은 쵸지

  는 주테카의 머리에 대고 계명성을 내질렀다.

   

   "주-테-카-! 안-싸-우-면-죽-는-다-!"

   

   주테카의 난동이 멈췄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짓누른 채 쵸지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쵸지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주테카의 팔 

  하나를 붙잡아 아래로 내렸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러니 싸우자고."

   

   "싸워? 왜?"

   

   쵸지는 자신이 잘못된  이유를 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를 댔다.

   

   "정의를 위해."

   

   주테카의 눈에 불꽃이 피어났다. 그 모습을 보자 그을린발과 론솔피

  도 조금 침착하게 되었다. 쵸지의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어이가 좀 

  없었기 때문이지만. 주테카는  물에 젖은 주먹을  들어올리곤 그것을 

  바라보았다.

   

   "정의를 위해?"

   

   "그래."

   

   주테카는 철저를 움켜쥐었다.



(중략)


   주테카가 두 팔을 좌우로 던지며 울부짖었다.

   쵸지에 비하면 주테카의 나날은 확실히 투쟁의 연속이다. 정의 구현

  의 사명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먼지투성이 바람을 벗삼아 온세상을 누

  벼온 세월의 끝에서, 그는 이제 가장  큰 정의의 완성에 도전하고 있

  었다. 사람에게 통치받을  사람의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사람 아닌 

  것에 의해 사람이 죽는 판국이라면 정의는 한낱 광언에 불과하다. 그

  런 일은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센범 폭포에 던져져도 수면을 부글부

  글 끓이며 타오를 그 일편단심을 일개  폭우가 꺼트릴 수는 없다. 젖

  은 깃털을 꼿꼿하게 세워 뭐라 말할 수  없이 흉흉한 모습이 된 주테

  카는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레콘을 보며 철저를 집어던졌다.

   

   "이것이 정의다!"

   

   핑핑 돌며 날아간 정의가 돌진하던 레콘의 다리를 강타했다. 우지끈 

  소리가 나며 레콘은 공중제비를 넘었다.  부러진 다리로 경험하는 추

  락은 끔찍했다. 레콘은 살벌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주테카는 그쪽

  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떨어진  철저를 집어들고는 성큼성큼 걸

  어갔다.

   주테카가 보기에 사악한 용의 농간에 놀아난 죄밖에 없는 자들의 목

  숨을 앗는 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그는 다가오는 모든 레콘을 옆으로 

  치워놓았고 어떤 레콘의 목숨도 끊지 않았다. 하지만 앞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때려부수겠다는 듯이 물구덩이를 철벅철벅 걸어가는 주테카

  의 모습은 사라티본 부대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세상에 정의

  가 사라졌음을 슬퍼하는 이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샘솟는 생의 의

  지에 전율할 것이다.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 8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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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설명하자면 주테카라는 캐릭터는 '정의' 덕후죠.

3m의 신장과 반인반조(鳥)의 모습을 가진 거인 종족인 레콘은 몸의 비중이 물보다 커서 물에 빠지면 그대로 가라앉습니다.

때문에 천성적으로 비합리적인 공수증을 가지고 있고, 몸이 물에 젖는 것만으로도 심하면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죠.


사실 클라이막스에 가까운 이 장면은, 반쯤 진지하고 반쯤은 정의 덕후를 이용한 코믹적인 장면이랄 수도 있습니다만.


아...

왜 이렇게 '정의'를 말하는 저 대목에서 못 견디게 울컥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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