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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8)
게시물ID : pony_21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10
조회수 : 44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2/21 17:31:51

(7)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1223&s_no=4226808&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271809

 

직업 소개소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어느 회사 사장님 책상같은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곳 중개인일 것이다. 그는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담배를 끄고 어쩐 일로 오셨냐고 물어보았다. 무척 인상 좋고 서글서글한 아저씨였다.

"택배 상하차 알바 구한다고해서 왔는데요."

 

그러자 그는 나를 위부터 아래까지 의심쩍은듯 훑어보았다. 아무래도 힘 쓰는 일이다보니 내 외소한 몸 때문에 신뢰가 가지 않는듯 보였다.

 

"경험 있어요?"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뽑아주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런데 열심히 할 거에요."

 

"신분증좀 주세요."

 

그에게 신분증을 건내자 컴퓨터로 나에 대한 신상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신분증에는 나와 있지 않은 집 주소와 휴대폰 번호등을 물어보았다. 학력은 물어보지 않는걸로 보아 그쪽으로는 제한이 없는 일이리라. 그것을 다 입력한 뒤 나에게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군대는 다녀 오셨고?"

 

"넵."

 

"현역?"

 

"네."

 

"오늘 당장 하실거죠?"

 

뜻밖이었다. 보통 아르바이트를 한다고하면 몇 일 후에 시작하는 건줄 알았는데...

 

"오늘 당장도 가능해요..?"

 

"알아봐야지요. 그런데 하고싶다고해서 다 되는 건 아니구요. 인력이 부족해야 돼요. 안 될수도 있어요."

 

"전 가능하면 오늘부터 일하고 싶은데요."

 

"넵. 그럼 저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쇼파에는 츄리닝바지에 편한 옷을 입은 남자 2명이 있었다. 한 명은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보였다. 쇼파로 다가가자 날 경계하듯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다른 한 명은 덩치가 제법 있는 중후한 아저씨였다. 나이는 30대 초반인듯 했다. 이런 일을 오래했는지 제법 살집이 있는데도 팔둑에 근육이 갈라져 보였다. 그의 손은 뭉툭했고 턱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앞으로 조선시대 백정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하면 저 아저씨가 생각날 것 같았다.

난 쇼파에 가방을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그리고 가방을 만져보았다.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참 얌전하기도 하지. 만약에 강아지였다면 지금쯤 가방 안에서 생난리를 쳤을 것이다.

가만히 있기도 심심해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수연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밥 먹었나.'

 

시간은 6시였으니 지금쯤 학교에서 밥을 먹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보내놓고 잠시 묵묵히 있는데 곧 답장이 와서 확인했다.

 

'버스임. 지금 집 가는 중.'

 

'야자는?'

 

'조퇴함. 밥 먹을 대마다 턱 아파서 못먹음. 집에서 쉴거임.'

 

혜진이란 여자애가 싸움좀 제법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턱을 때리다니.

나는 중학생 때 복싱을 배웠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법 싸움좀 한다고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많이 싸우고 다녔다. 하지만 싸움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멋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맞고 상대도 맞는다. 이런 개싸움이 현실의 싸움인 것이다. 그래서 나도 많아 맞았다. 그리고 싸움 잘하는 애랑 싸우면 유독 턱을 많이 맞았다. 턱을 맞으면 입을 크게 벌렸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턱과 두개골이 짜릿해지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어졌다.

 

'그래. 난 지금 알바 구함.'

 

'잘했어. 드디어 사람됐네. 뭐하는데?'

 

''택배. 돈 들어오면 맛있는거 사줄게. 베스킨갈까?'

 

'아 턱 아프다고. 그리고 내 맘도 아프다. 학교 다니기 싫어졌어.'

 

'갑자기 왜?'

 

'전교에 소문 쫙 났어. 고혜진한테 털렸다고... 그래서 혜진이년 끄나플들이 나한테 시비 걸고 그런다막. 또 싸우려다가 참았음.'

 

'잘 참았어. 참는 게 이기는거임. 그러니까 누가 일진같은 애한테 개기래?'

 

'그년이 내 빵 말도 없이 까서 먹었단말이야. 가뜩이나 돈도 없어서 가장 양 많고 저렴한 걸로 떼운건데ㅠㅠ 으헝;'

 

돈, 돈. 이놈의 돈이 문제다. 돈이 궁핍해지니까 모든 것이 삐꺽대기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담배가 무척 피우고 싶어졌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와 내가 텔레파시가 통했나보다.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모금 들이킨 뒤 내뱉자 진한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익숙한 냄새가 무척 그리워서 넋 놓고 아지랑이 같은 담배연기를 눈으로 쫓고 있는데 그것을 아저씨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흡연자에요?"

 

"아니오."

 

"담배 피우세요. 여기서 담배 피워도 되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중후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아저씨라면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담배가 없어서.."

 

이 말을 꺼내자마자 아저씨는 담배곽을 열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었다.

 

"죄송한데.. 불도 좀.."

 

그러자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라이타를 빌려주었다. 라이타에는 '영광 스크린경마' 라고 씌여 있었다. 경마장이라..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레리티를 놓고 달리게 하는 것이다. 1번마 레리티. 2번마 애플잡. 3번마 트왈라인. 그 뭐시기. 4번마 플라곤샤이 5번마 레빗보우.. 어쩌구. 6번마 핑키 보이. 이렇게 해서 경주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레리티가 마법으로 다른 말들을 다 제치고 1등을 하게 되고, 난 돈을 몽땅 레리티에게 걸었으니 딴 돈을 레리티랑 8:2로 나누는 것이다. 물론 내가 8이다.

담배를 한모금 깊게 들이킨 뒤, 뿌연 담배연기를 내뱉었을 때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담배연기와 함께 내 우스운 생각도 함께 사라졌다. 거의 하루만에 다시 피는 담배는 무척 맛이 좋았다. 머리에 짜릿하고 몽롱하게 전해지는 이 기분은 오직 흡연자만이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흡연자끼리는 대화도 잘 통한다. 담배와 재떨이가 있는 공간은 담배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사교와 소통의 장으로 통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 아저씨는 그런 소통 행위를 즐길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일 처음 오시는가봐요. 못 뵌 것 같은데."

 

"네.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렇게하고 한모금 빤 뒤에 후 내뱉었다.

 

"일 생각보다 힘들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네. 대충 때웠어요."

 

"밥 안 먹고 오면 죽어요. 밥 꼭 잘 챙겨드셔야해요."

 

하고 눈을 찡그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무척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 일 오래하셨나봐요."

 

"뭐 그냥.. 한 2년쯤 됐나. 꾸준하게는 안하고.. 뭐.. 학생이에요?"

 

"아뇨."

 

"그런데 가방 들고 오셨네요."

 

순간 흠칫 놀랐지만 침착했다.

 

"혹시 여기에 가방 들고오면 안되는건가요...?"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그는 시원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뇨, 꼭 그런건 아니구. 예전에 여기 자주 오던 재수생 있었는데 공부한다고 맨날 가방 들고 다녀갖고 그거 생각나서요."

 

그렇게 말하고서 ;허허;하고 웃었다. 혼잣말로 '그 새키 대학은 잘 갔나' 하고 말했다. 그래서 참 좋은 형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기다리자 우리들을 데리러 온 차가 왔다는 전화가 왔다. 아저씨가 중개인 아저씨에게 말했다.

 

"오늘은 어디에요?"

 

"동구."

 

"아.. 동구 별론데."

 

"서구는 뭐 달라?"

 

"서구는 서류하는 아가씨들이 예뻐요."

 

"허허허 꼬셔보지."

 

"어휴, 안돼요. 내 나이가 몇갠데.."

 

서로 허허허 웃더니 아저씨가 계단을 내려가자 휴대폰 하고 있던 사람도 같이 따라 내려갔다. 난 어덯게 해야하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중계인 아저씨가 말했다.

 

"뭐해요? 가지 않구."

 

"저도 가요..?"

 

"네. 수수료 10프로 떼어요."

 

"그건 어떻게 떼는 건데요?"

 

"거기서 떼서 줄거에요. 기다리겠어요 얼른 내려가요."

 

그래서 가방을 챙겨들고 재빨리 내려갔다.

봉고차에는 우리 말고도 3명이 더 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고 아저씨도 차를 타자마자 구석에 자리를 잡더니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차에 깨 있는 사람은 아까 중계소에서 핸드폰 하고 있던 사람과 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 사람과 그다지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저 사람에게 말을 걸면 왠지 '나한테 말 걸지마라. 하찮은 인간주제에' 이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 저 사람에게는 그런 오로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외모에 퀭한 눈. 그리고 계속 폰게임을 하면서 이곳 저곳 경계하듯 바라보는 행동들이 모두 마음에 걸렸다.

차에 타고 몇 분이 지났을까. 차 안이 어두워서 나도 슬슬 잠이 오려고 하는데 가방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레리티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나를 계속 툭툭, 건드렸다. 나도 꺼내주고 싶었지만 내 앞자리에서 폰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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