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네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일이 있어 어이가 가출했으므로 음슴체.
오늘 결혼한 친구는 도둑놈입니다.
나이차이가 무려 아홉살.
그래도 제수씨가 당당하게 "내가 개이득!"을 외치는 상황이라 태클을 못 검.
하지만 이 도둑놈도 불행한 과거가 있는데 이 결혼 전에 혼담이 오고갔던 여자가 문제였죠.
나름 금수저에 인물, 성격 좋고 직장 번듯해서 여자도 많던 놈이 어쩌다 된장이랑 엮였음.
흔한 데이트 비용, 선물 요구 등이야 허허 웃으면서 넘어갔는데
결혼을 생각했을 때 여자 쪽에서 요구한 혼수가 무시무시했음.
어느날 여자가 혼자 집 보고 왔다고 끌고간 곳이 이촌동 자이였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은근히 받고 싶어하던 폐물이 억대였다고...
문제는 이 도둑놈이 금수저긴 해도 집에선 금수저로 키운 적이 별로 없음.
알바로 학비 벌게 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대학 때 여행 가려고 알아서 알바 찾아야 했고,
취직해서 첫 차를 장만하는 것도 중고 SUV를 골라야 했던,
정말 평범하게 자라게 한 게 이 도둑놈 아버지.
결혼자금 역시 네가 모은 만큼 더 지원해준다는 원 플러스 원 정책이었는데
자이에 억대 폐물은 아예 꿈도 못 꿀 이야기.
이야기 질질 끌 것 없이 그 결혼은 파토났음.
그리고 몇 달을 궁상 떨고 다니다 아홉 살 차이나는 제수씨랑 눈이 맞았고
이 제수씨는 성격이 완전히 상남자임.
"오빠 오피스텔 넓던데 걍 거기서 살자."
"폐물? 커플링은 했고, 목걸이나 하나 콜?"
"내가 버는 걸로 살림은 할테니 오빠 버는 건 잘 모아. 그런다고 이상한 데서 카드값 날아옴 죽는다!"
결론은 해피엔딩이고 이놈은 도둑놈인 걸로 끝나야는데 오늘 결혼식에서 사고 터짐.
혼담 파토났던 여자에게 한번씩 전화가 왔었는데 이 도둑놈이 그냥 차단하면 됐을 것을
나 결혼하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여자한테 말했던 듯.
어떻게 식장을 알았는지 여자와 엄마가 함께 찾아와 패악을 부리기 시작함.
분위기가 엉망이 될 참인데 여자들이라 몸에 손대기도 어렵고 끌고 나갈 수 없는 상황.
그래도 우리가 총대 매자 하고 나서려던 때 도둑놈 동생이 먼저 나서서 배틀이 벌어짐.
"이년들 끌어내!"
"이년? 이년? 넌 애미애비도 없냐? 너만한 자식이 있어! 이 새끼야!"
"그래? 난 집에 가면 너같은 하녀가 있어. 뭐해? 끌어내!"
"손대지마, 이 새끼들아. 다 고소할 거야."
"어이, 아줌마! 진짜 한번 제대로 해볼까? 진짜 끝까지 가볼래? 아줌마 집안 괜찮을 것 같아?"
나이차이 크지 않은 도둑놈 동생이어서 같이 술도 자주 마시고 했었는데 그런 모습은 처음 봄.
순딩순딩해서 헤헤 잘 웃고, 사람 좋은 면만 봤는데 정말 친구들이랑 여자 둘을 쓰레기 치우듯 끌어냄.
야, 어쩔려고 그러냐? 했더니 다 촬영하고 있었고 수틀리면 집안을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릴 거라고...
불알 친구까진 아니어도 중딩 때부터 알았던 형제인데, 한 번도 금수저 티 내는 걸 못 봤고,
만나면 막창에 소주잔이나 돌리며 좋은데 타령 하는 적도 없었던 기억이 맞는지 낯설었음.
오늘은 정말 저런 모습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깐 함.
진짜 힘있는 금수저.
그 모녀는 오늘 제대로 멘붕당했을 듯
그런 녀석이 뷔페에선 또 해맑게 웃으면서
"형 신혼여행 갔다오면 신혼집 테러하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