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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차 오너다
게시물ID : soju_42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말세
추천 : 1
조회수 : 47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5/01 08:37:08
내차는 경차다
지엠대우 시절의 돼지코 엠블럼을 달고 있으며 뒷범퍼는 깨져 있고 세차를 하지 않아 흰색 차임에도 누가봐도 막 굴리는 차로 보일 정도다
다음날이 쉬는날이라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여기 3층에 물건좀 빼야되는데 차좀 빼줄 수 있나요~? 네네~
중저음의 낮게 깔린 목소리
한~참 어린 조카나 귀여운 여성에게 남자다운 자상함을 뽐내며 말하듯 한 말투다
차를 빼주러 나갔다
내차 옆에는 검은색 체어맨이 주차되어있었다
주변을 보니 다른 차는 없었다
음.. 저차도 빼달라고 하겠구만 생각했다




나에게 전화한 것으로 보이는 이삿짐 센터 직원이 어딘가 전화를 건다
네 사..사장님! 죄..죄송한데 여기.. 저.. 사.. 삼층에 물건.. 아니 짐을 좀 빼려고 하는데요~ 차좀 잠~시만 좀 빼주실 수 있..있으실까 해서요..
뭐랄까.. 처음 들어온 어린 막내가 유관부서의 무섭기로 소문난 팀장에게 전화했을 때 말하는 듯한 굉장한 하이톤의 목소리와 심하게 격식을 차리며 심지어 더듬기까지 하는 말투다
듣는 순간
아 체어맨 차주에게 전화 하는구나 생각했다
직원은 내가 차를 빼주고 다시 들어올동안 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집에 들어와서 생각해보니 
아 이런게 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행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그사람은 나를 무시한 것도 아니고 전화 내용도 굉장히 친절했으며 그 어떤 기분나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참 씁쓸한 이 기분은 무얼까?
창문 넘어로 그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사장님 어..어디 나가시진 않으실꺼죠? 이쪽으로 잠~시만 차를 빼주시면 될거 같습니다!
분명히 이사람은 참 일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받은 느낌은...
나에게는 정말 최소한의 필요한 말과 최소한의 예의와 격식을 차렸다면
체어맨 오너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예의범절을 갖추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경차에게는 약자에 대한 친절, 체어맨에게는 웃어른에 대한 예절이었다
나는 차를 처음 몰 때부터 중형 SUV를 몰았다 물론 내차는 아니었다
그러다 출퇴근용 경차를 샀고
도로에서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갑자기 악마로 돌변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건 정말 더러운 느낌이었지만 4년동안 경차를 몰다보니 그것도 충분히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경차를 몰면서 내가 겪어온 스트레스 상황은 대부분 눈앞에서 대놓고 무시를 한다거나, 실수는 자기가 해놓고 적반하장으로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한다던가, 이유없이 경적을 울리거나 상향등을 깜빡깜빡 한다던가 하는 누가봐도 몰상식한 사람의 행태였기 때문에 
나는 저러지 않을 거야
난 저사람과 달리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야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이 경험을 통해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가 저 직원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딱히 더 훌륭한 행동이 생각나지 않았다
굳이 다르게 행동한다면
체어맨 차주에게도 경차 차주에게 했듯이 최소한의 친절한 말투 정도?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에게 한 것 보다 훨씬 과한 격식을 차림으로써 내가 무시받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들만한 상황이다
나 또한 일터에서 나보다 아랫사람을 대할 때와 부장님을 대할때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학생과 한국 학생의 행동을 비교한 어떤 동영상을 최근에 본 적이 있다
미국 학생은 교수님에게도 친구처럼 말을 걸고 편안하게 행동하는 반면 한국 학생은 교수님이 지나가기만 해도 모든 행동을 멈추고 바른 자세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만약 여기가 미국이고 나와 체어맨에게 전화한 사람이 미국인이었다면 그사람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미국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이 뭔가 씁쓸한 느낌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이런 문화의 근본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교육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는 수업을 위해 선생님이 들어오면 반장의 구령과 함께 고개숙여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했다
선생님의 말을 조금이라도 거역하면 개처럼 맞았다
우리 시절의 학교는 체벌금지 시절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로 인해 기분이 나쁘면 이유 불문하고 따귀를 맞거나 출석부로 뒤통수를 맞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모든 사회적 문제는 정치와 직결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정치를 교육으로 치환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새벽에 차빼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논하는 글로 이어지다니
새벽까지 먹은 양주가 아직 안깬것이 분명하다
횡설수설 그만하고 잠이나 더 자야겠다
자고 일어나면 형편없이 싸지른 글을 보며 이불을 차겠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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