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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9)
게시물ID : pony_214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8
조회수 : 536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2/12/22 17:29:24
8화-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1256&s_no=4229420&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271809

 

 

난 맨 끝 좌석이었고 그 사람은 내 앞 좌석이었지만 힐끔힐끔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의자받침대가 작은 보조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마치 따돌림 당하는 애가 혹시라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모습 같았다. 또 힐끔 나를 쳐다보길래 이렇게 말했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요?"

 

그러자 그는 당황한듯 곧장 몸을 웅크리고 핸드폰 게임아만 전념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턴 반대로 내가 그 사람의 눈치를 봐야했다. 한동안 나를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아서 가방의 지퍼를 살짝 열어주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마음을 조리고 있늗데 지퍼의 틈새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메모를 내밀었다.

 

'화장실....'

 

그래서 난 가방 틈새로 손을 넣었다. 가방 속은 무척 따뜻했다. 손과 팔이 녀석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몸뚱이를 건드렸지만 그것이 싫은듯 요리조리 잘 피해다녔다. 마치 귀여운 강아지 같았다. 하지만 난 녀석을 만지고 싶어서 손을 넣은 게 아니었다. 바닥에 있던 볼펜과 메모장을 꺼낸 뒤, 거기에 이렇게 써서 가방 속에 다시 넣었다.

 

'많이 급해?'

 

답장은 곧 날아왔다.

 

'빌어먹을, 당장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 젠장, 어서!'

 

유아용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저런 대사까지 뱉을 정도면 무척 절박한 상황이리라. 차는 하상도로를 달라고 있었다. 주변에 차는 없었고 차가 다니지 않는 곳에는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이 곳이라면 어떻게던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운전하시는 아저씨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요..."

 

하지만 내 목소리는 무척 작아서 운전하는 아저씨에게 닿지 않았다. 내 앞에 앉아있던 눈치쟁이가 자기 부른 줄 알고 날 힐끔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 상황 모든 것이 짜증났다. 가방 속의 이 녀석 때문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하다니..!! 망할.. '포확찢!'

그 짜증을 목소리에 담아서 다시 한번 크게 불러보았다.

 

"저기요. 아저씨!"

 

그러자 백미러로 날 쳐다보았다. 다행이었다.

 

"죄송한데 제가 너무 급해서.. 차좀 세워주실 수 없을까요?"

 

그러나 아저씨는 매정했다.

 

"좀만 참아. 시간 맞춰서 가야돼."

 

나는 참을 수 있는데 레리티가 문제인거지. 걔가 만약 가방 속에서 일이라도 벌려놓는면 도저히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진 하기 싫었지만 최후의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저.. 토 할 것 같아..서.. 우윀......"

 

하고 헛구역질 하자 운전사 아저씨는 무척 당황하셨다. 에이씨.. 이러면서 도로 구석에 차를 데었다. 난 진짜 토할 것처럼 입을 가리고 '욱..' 우욱..' 이러면서 일어섰다. 눈치쟁이는 식겁을 하며 자신의 보조의자를 손수 들어주었다. 난 급하게 가방을 챙겨서 마구 달렸다. 차의 시선이 닿지 않는 다리 밑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지퍼를 열고 레리티가 불숙 튀어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장 내 시선이 닿지 않는 다리 기둥 뒤로 달려갔다. 그러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야! 어디까지 가!"

 

이 짜증 섞인 목소리 속에는 나에게 '사고뭉치' 라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다 했어요!"

 

이렇게 외치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잠시 후, 도도한 걸음으로 레리티가 돌아왔다.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난 녀석을 확 낚아채서 가방 속에 푹 집어넣었다. 지퍼를 잠구면서 녀석이 나를 노려보는 표정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노려보았다. 그러자 '흥' 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지퍼를 잠그고 녀석을 가방채로 몇 번 던졌다가 받고 싶었지만 '핑키 프로미스'를 지켜야했다. 사내라면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한다. 그것이 내 신조였다.

가방을 들고 레리티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는데 보채는 소리가 들렸다.

 

"야! 뭐해!"

 

어쩔 수 없이 난 후다닥 뒤어야했다. 가방이 무척 덜컹거렸다. 레리티도 이해해주길 바랬다.

몇 분 더 달려서 도착한 것은 동구 톨게이트 근처에 있는 택배 분류센터였다. 엄청나게 큰 창고 같았다. 하지만 바로 일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곳을 감독하는 사람이 와서 일에 대해 설명해 주고는 차가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다려야 했다. 습관적으로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그런데 마침, 담배 아저씨가 나에게 담배곽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펴."

 

"감사합니다."

 

담배를 빼서 물자, 라이타도 건내주었다. 참 좋은 아저씨였다. 내가 불을 붙이고 그것을 돌려주자 아저씨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흡연자는 이래서 좋다. 담배만 있으면 누구라던지 편한 대화가 가능하다.

 

"이거 몇시까지 해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말했다.

 

"보통 한 5~6시 쯤에 끝나지. 집 가면 7시쯤 되려나 흐흐."

 

"이거 많이 힘들죠?"

 

"뭐.. 그냥 좀 힘들지. 그렇다고 도망가지는 마.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져."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도망? 도망이라니..? 이 외딴 곳에서 도망가봤자 집에 갈 수 있는 수단은 콜택시밖에 없으리라.

한 30분 정도 기다리고 나서 일은 시작되었다. 하는 것은 무척 간단했다. 거대한 물류트럭이 오면, 그 속에 있는 택배들을 몽땅 꺼내서 돌아가는 벤드 위에 올려놔야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럭이 계속 들어오면서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일을 하다보니 어느덧 나에게도 한계가 왔다. 몸은 온통 땀으로 흠벅 젖었고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리는 끊어질 것처럼 뻐근했다. 문득, 어느 광고의 문구가 생각났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지금 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떡이리라. 땀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백설기.

담배 아저씨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익숙한 것인지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나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힘들지? 거의 다 했어."

 

하면서 허허, 웃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저 아저씨는 이런 일에도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듯 했다. 그러니 나도 저 아저씨의 영향을 받아서 이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면 좋을테지만 도저히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쉬는 시간. 야식이 도착했다. 자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먹고싶지는 않았다. 난 피곤했고 속은 더부룩했으며, 당장이라도 샤워를 한 다음에 자고 싶었다. 나처럼 피곤하고 지쳐보이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는데 아까 차 안에서 내 눈치만 보던 눈치쟁이였다. 그 움푹 패인 눈이 지금은 더욱 피곤해보였다. 문득, 레리티가 생각나서 가방으로 향했다. 가방은 문류창고 안, 외진 곳에 숨겨두었다.

가방의 지퍼를 열자, 자고 있었는지 부스스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팔자 좋게 잘도 자는구나. 생각하는데 녀석은 이런 메모를 주었다.

 

'미안, 숙녀는 잠을 충분히 자야해.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도 있어.'

 

이 녀석은 미모를 가꾸는 망아지였던 것이다. 돈 좀 생기면 머드팩이라도 바르지 그래?

녀석은 앞발로 입을 가리고 조용히 하품하더니 메모지에 이렇게 썼다.

 

'아까는 말 못했지만 내 가방을 네 가까이에 가져다줘.'

 

언제부터 이 녀석 가방이 됐는지 모를 스포츠백이 불쌍해보였다.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묻자, 녀석은 이렇게 메모했다.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은 화장실을 가고싶어서 안달이 나기 전에 미리 다녀오는 것 뿐이란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맘돌았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 근처에 오고 싶다고 하는걸 보면 무척 심심했나보다. 그리고 처음부터 녀석을 이런 외딴 곳에 놔두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승낙하기로 했다.

 

달콤한 휴식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물류차가 들어왔다. 지옥같은 시간의 시작인 것이다. 차 안에는 덜컥 겁이날 정도로 무거운 짐들이 한가득이었다. 세상에.. 쌀을 어째서 택배로 보내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40키로 짜리를..

그것을 들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들려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속에 쌀이 들어 있는 게 맞나 생각될 정도로 가벼웠다. 하지만 쌀포대 속은 분명히 단단한 것이 빡빡하게 들어 있었다. 그것을 옮기고 다음에 옮긴 것은 책이었다. 책이 레리티가 들어갈만한 박스에 가득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놀라우리만큼 가벼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스포츠백의 가방이 조금 열러 있다는 것을. 그 틈새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오직 나와 레리티만 알 수 있으리라.. 덕분에 난 이 지옥같은 시간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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