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투표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제 한 명이 뽑혔으니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는 이야기 말이다. 선거 때마다 주례사처럼 되풀이되는 이 말은 너무나 상식적으로 들려, 그 어디도 문제 삼을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당선자가 결정됐는데도 한 목소리로 축하하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까? 신사답지 못한 '비겁한 좀생이'나 '비민주시민'이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는 운동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의로 편을 갈라 즐기는 스포츠야,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에 축하를 보낼 수 있다. 스포츠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스포츠는 '정신게임'이다. 아무리 격렬히 몸을 움직이는 운동경기라도 팬들의 상상적 동일시를 토대로 작동한다. 연고지 때문이든, 자기가 속한 집단 때문이든, 막연히 좋아서든, 자신을 스포츠 팀과 동일시해야만 연대감이 생겨나고 응원도 하게 되며, 결과에 기뻐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아무리 안타까운 패배라도 스포츠팬의 실망감은 그냥 실망감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현실이 있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 그 자체다. 운동경기에 진다고 해서 현실의 조건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의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런데도 그리 간단히 '승복'을 말할 수 있을까? 이 시간에도 자살을 생각하는 어린 학생들, 15만 볼트 송전탑 위에서 생존권 싸움을 벌이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23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에게도 말이다.
물론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과정이 '마인드 게임'이었던 사람에게는 쉬운 일일 것이다. 현실의 삶 때문이 아니라, 연고지 때문에, 핏줄이나 향수 때문에, 아니면 그저 좋아서 찍은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승복'할 사람은 유권자가 아니라 당선자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교부받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가 과반수를 얻었다 해도 여전히 절반의 대통령이다. 나머지 절반이 박근혜 후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의 48%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으며, 그에게 간 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당시 얻은 것보다 300만표 이상이 더 많다.
박근혜 당선자가 절반만 얻은 건 표만이 아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30대, 40대는 문재인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 20대의 65%, 30대의 66%, 40대의 55% 이상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 한국의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고, 미래를 이끌 젊은이들이 박근혜 당선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거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불순한 사상에 물들어서 그럴까? 현실의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곧 투표권을 쥐게 될 10대의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다. 40대는 1위가 암, 2위가 자살이다. 이들은 현재 선거결과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저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어렵게 될 오늘과 내일의 삶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5년간 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자격이 주어진 게 아니며, 국민이 누굴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해서 침묵한 채 그가 하는 일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국가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케네디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던가. 정부는 시민의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라고.
오히려 '승복'해야 할 사람은 유권자가 아니라 박근혜 당선자다.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 절반의 고통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 5년은 보수세력의 무덤이 될 것이다.
'가장 진보적 대통령' 부른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의 재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한국의 2012년은 미국의 2004년과 비슷하다. 무수한 과오, 실패, 부패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다시 집권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무책임한 전쟁을 시작해 젊은이 수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부자감세로 심각한 사회양극화와 재정적자를 초래했으며, 친기업 탈규제 정책으로 경제위기를 불러왔으면서도 보란 듯이 재선에 성공했다.
물론 부시의 재집권에는 '친근하고 서민적으로 보이는' 후보의 인간적인 매력과 언론매체의 무비판적 보도가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진보세력은 '미국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했다'며 좌절했고, 일부는 '도저히 이 나라에 살 수 없다'며 심각히 이민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절망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버락 오바마의 극적 당선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재임한 부시의 영향이 컸다. 2008년 가을, 유권자가 집 앞에 '변화'와 '진보'라고 쓰인 포스터를 붙여놓고 지지를 표하고 있다.
부시의 연임으로 당하게 된 고통은 국민들에게 '미국사회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불어넣었다. 이로 인해 무명의 민권 변호사출신 의원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시가 재집권할 때만 해도, 오바마가 뒤를 이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의 재집권이 '루즈벨트 이래로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을 낳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5년은 국민들이 '박정희 향수'의 실체를 깨닫는 시기가 될 것이다. 박근혜는 박정희가 아니며,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70년대 세계관과 정책으로 21세기 한국을 이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5년간 강바닥을 파고, 언론을 통제하고, 재벌에 특혜를 주는 (여기에 '잠자리 선글라스'까지 따라 쓰는) '21세기 박정희'를 경험했다.
새누리당의 재집권은 지난 정부의 과오와 부패를 덮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4대강 개발, 민영화, 부자감세, 복지축소, 원전 연장가동 등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은 그 폐해를 5년 내내 겪게 될 것이다. 이는 국민들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이 그랬듯 말이다.
어디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박근혜 당선자의 소통방식은 권위주의적 '보스형'에 가깝다. 세 번의 TV 토론이 잘 보여주었듯, 박 당선자에게는 사회와 정책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 이로 인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신뢰하는 소수 측근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고, 이들의 기싸움에 따라 국가정책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와는 달랐다. 그는 잘못된 결정을 혼자 밀어붙이는 독단적 스타일이었다. 잘못된 길로 질주하는 것과 길을 잃고 표류하는 것은 모두 국민들에게 큰 고통이다. 아무쪼록 박근혜 당선자가 자신의 한계를 잘 극복해 국민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해주길 바랄 뿐이다.
▲ 위로가 필요해... '제18대 대선 투표율 80%를 넘기면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약속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투표율이 75.8%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시민들과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프리허그 도중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재인이 얻은 48%의 표도 새누리당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절반에 이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과거 진보세력은 김종필이나 정몽준 같은 보수 정치인들과 연합해야 힘겹게 집권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김대중 대통령이 얻은 표가 약 1000만표, 노무현 대통령이 약 1200만 표였다. 비록 당선에 실패했지만, 문재인은 1400만 표 이상을 얻었다. 이는 진보세력 스스로가 독자 세력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수와의 연합이 개혁의 장애물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진보의 홀로서기는 참다운 사회변화의 희망이다.
하지만 진정한 희망의 처소는 따로 있다. 진보나 보수 중 누가 당선되었어도 시민들의 몫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의 뜻을 따르도록 권력을 감시하고 호된 비판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도, 여당도 아닌 국민들이다.
우선 주위의 어려움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서로 보듬고 배려하면서 미래를 준비하자. 약자들에게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 어느 때보다 혹독한 5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