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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11)
게시물ID : pony_216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12
조회수 : 441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12/23 14:04:25

(10)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1605&s_no=4240857&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271809

 

 

눈이 자동으로 스스르 감겼다. 이대로 잠이 들 것 같았지만 무언가 내 얼굴을 콕콕 찔렀기에 잠기운이 확 달아나버렸다.

가방에서 나온 레리티가 볼펜으로 날 깨운 것이었다. 그리고 항의를 하듯 메모지에 이렇게 적었다.

 

'샤워를 하고 싶어.'

 

마치 애 같았다. 제발 날 더이상 귀찮게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팔아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녀석에게 파리를 쫓듯 손을 휘휘 저으며 귀찮게하지 말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처럼 볼펜으로 쿡쿡 찌르며 메모지를 들이댔다.

 

'미안하지만 따듯한 물좀 틀어주지 않을래? 오늘 너무 땀을 많이 흘렸어.'

 

그러고보니 이 녀석도 나와 일을 함께 했던 동지였다. 그 힘든 지옥 속에서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전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정도 요구쯤은 들어줘도 상관 없겠다고 생각했다. 난 침대에 일어나서 녀석에게 거실에 있는 보일러 장치를 보여주었다.

 

"이걸 켜면 뜨거운 물이 나와."

 

하고 온수 버튼을 눌렀다. 가르쳐주었으니 이제 알아서 목욕을 할 것이었다. 녀석은 메모장에 이렇게 썼다.

 

'고마워.'

 

그러면서 수줍게 웃길래 난 녀석의 머리를 머리카락이 흐트어지도록 마구 비벼주었다. 순간, 싫은 표정을지만 내가 싱긋 웃자 녀석도 결국 호호 거리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더 고맙지."

 

돈 덩어리야. 속으로 이렇게 말한 뒤, 난 다시 침대로 향했다. 너무나도 피곤해서 씻을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택배의 일을 고작 반밖에 안했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매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뎌내는 낼 수 있는걸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땐 레리티가 내 코앞에 있길래 깜짝 놀랐다. 레리티는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는데 얼굴이 나를 향해 있었다. 나와 같은 배게를 쓰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녀석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내 입술에 닿았다. 녀석의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무척 좋은 샴푸냄새가 났다. 난 녀석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난 뒤, 자기 전에 충전했던 폰을 확인했다. 역시나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수연이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89통이나 와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다 수연이가 보낸 내용이었다. 내용을 세줄로 요약하면 이러했다.

 

1. 오빠가 끼어들어서 싸움을 방해했다.

2. 싸웠던 아이의 이름은 혜진이다.

3. 난 오빠가 뭐라고해도 혜진이를 반드시 박살낼 것이다.

 

그래서 나도 간단하게 카톡으로 한 마디 써주었다.

 

'이제부터 그 학교의 미친년은 너야.'

 

나는 책상에 앉아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그런 뒤 휴대폰으로 포니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럴 때보면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고 생각했다. 군대 입대하기 전에는 스마트폰이란 것이 나오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사이트에 접속하자 쪽지가 한 통 와 있어서 확인했다. 보낸 사람의 닉네임은 '이로리'였다. 어제 레인보우 대쉬를 정말 갖고 있냐고 물어봤던 사람이었다. 보낸 시간은 어제였고 내용은 이러했다.

 

'사실 어제 대쉬를 주웠어요. 믿기진 않으시겠지만 상자에 있더라구요. 글을 읽어보니 그쪽도 레리티를 주우셨나봐요. 만약 저처럼 대쉬를 갖고 계시다면 혹시 레리티 사진이나 갖고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대쉬와 레리티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이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대쉬가 상자에 있었다는 것이다. 레리티도 상자에 있었다. 만약 나를 속이려는 거라고 생각해도 너무 잘 들어맞는 공통점이었다. 만약 저 사람의 포니가 레리티처럼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떠오르는 것이 단 한 가지 있었다.

 

'엽서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나요?'

 

만약 레리티를 상자에 넣은 무언가가 대쉬도 같은 방법으로 넣었다면 녀석이 갖고 있었던 엽서를 대쉬도 갖고 있을 것이다. 만약 저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난 단순히 속은 것에 불과한 것 뿐이니 손해는 없었다. 하지만 레리티의 사진을 보낼 경우, 상황은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저 사람이 나를 속이는 거였는데 레리티의 사진이라도 유포된다면, 누군가에게 레리티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보내고서 게시판을 이곳 저곳 둘러보는데 의외로 쪽지의 답장이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주저할 것도 없이 바로 확인했다.

 

'강하고 거칠지만 내면은 무척 부드러운 아이에요. 부디 잘 부탁드릴게요. 멋진 것과 쿨한 것을 좋아해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엽서에 대해서 알고 계신건가요? 정말 레리티를 갖고 계신거에요? 괜찮다면 우리 만나기로 해요!'

 

에상 외의 빠른 전개 때문에 그 사람이 포니를 갖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사는 곳을 말해주니 그 사람도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 답장이 왔다. 믿기지 않을만큼 엄청난 우연이자 행운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지나다니지 않는 가게의 골목에서 6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일이 너무나도 쉽게 풀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물어보았다.

 

'포니는 데리고 나올까요?'

 

순간, 생각이 복잡해졌다. 레리티를 누군가에게 팔 때, 만약 레인보우 대쉬라는 포니까지 붙어있으면 그 가격이 더욱 올라갈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저 사람이 대쉬를 갖고 나왔고, 내가 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라면? 포니를 나한테 빼앗겨도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할 것이다.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려고 하면 경찰관이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리셨나요?' 그러면 훌쩍거리면서 이렇게 대답하겠지. '포니요! 레인보우 대쉬요!' 그러면 경찰관은 '멀쩡하게 생기신 분이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면서 정중히 쫓아낼 것이다. 반대로 내가 저런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이 생각은 신중해야했다. 저 사람이 만약 레리티를 뺏으려고 한다면?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레리티를 믿어보기로 했다. 레리티의 마법이라면 내가 더 유리할지도 몰랐다. 잠깐, 그러고보니 포니들은 모두 마법을 쓸 수 있는건가...?

하지만 더욱 좋은 생각은 레리티를 이따가 만날 사람에게 파는 것이었다. 저 사람이 만약에 엄청난 부자여서 나에게 레리티를 사고 싶다고 제시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가 제시하던 금액이 어떻든 간에 조금 더 올려받고 흡족해하겠지.

그래, 난 사람을 위협하면서까지 포니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것을 저 사람에게 파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써서 보냈다.

 

'네. 데리고 나갈게요. 레리티가 좋아하겠네요.'

 

이 소식을 레리티에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이 팔려갈 거라고 말하고나면 녀석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상대방은 얼마를 제시해줄 수 있을까? 설레이고 기대대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레리티는 엎드려 누운 채로 사과를 먹으며 패션잡지를 보고 있었다. 이럴 때만 보면 도대체 이 녀석이 사람인지 망아지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녀석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책 재밌냐?"

 

그러자 녀석은 얼굴을 찌푸리며 보고 있던 잡지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변태가 아니라면 일단 옷부터 입어.'

 

이 메모가 내 눈 앞에 둥둥 떠다녔다. 망아지 주제에 까탈스럽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녀석이 사과껍질을 깎은 뒤 사과를 8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이미 깎여 있는 사과에는 날 위해 준비했는지 포크도 하나 꼳혀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렇게 물어보았다.

 

"날 위해 깎은 거야?"

 

그러자 칼을 내려놓고 글을 쓴 뒤 나에게 보여주었다.

 

"딱히 널 주려고 깎은 건 아닌데, 괜찮다면 같이 먹자.'

 

녀석은 사과를 조금 베어물고 야금야금 씹었다. 간혹 저런 과일을 먹을 때, 깨작깨작 먹는 여자들을 본적이 있었는데 레리티가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듯 했다. 먹는 둥 마는 둥 신경은 온통 패션잡지에 가 있었고 사과는 생각이 나면 먹는다는 식으로 간간히 맛을 보았다. 난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밥 먹을 땐, 밥만 먹기. 그게 우리집 규칙이야."

 

사실 이것은 내가 방금 만들어낸 규칙이었다.

레리티는 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그런 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서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실례했어. 사과할게'

 

이런 메모가 날아왔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너처럼 생긴 사과는 싫은데."

 

레리티는 내 말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가 이제서야 깨달았는지 메모장에 이렇게 적어서 보여주었다.

 

'너무 썰렁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모르겠어. 미안해. 그래도 시도는 좋았어.'

 

그러면서 도도하게 내리깔은 눈으로 후훗, 웃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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