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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5(자작-과거)
게시물ID : readers_42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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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22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1/26 23:00:51

 경아씨는 언제나 사랑을 찾았다.

경아씨는 순정세상, 댕기나 윙크 이전, 하이센스와 함께 자라난, 네모 칸 넘어 벌어지던 온갖 사랑에 대한 이미지를 바로 흡수하고 자라난 그런 아이, 그런 세대였다.

격주의 사랑의 판타지. 경아씨를 언제나 흔들리게 했던 하이틴 로맨스.

그들은 섹스 할 때조차 욕정을 향한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질퍽하지 않은 세상. 성기를 닦기 위한 티슈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아씨는 사랑이 그리웠다.

사랑은 언제나 어디엔가 경아씨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경아씨의 불타는 첫사랑, 쑈바를 올리고 아름다운 영원한 불꽃으로 타오른 ‘그’도, 안타까운 설레임을 안고 실종된 ‘그’도.

그러다가 경아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여자들은 누구나 공주가 되기를 꿈꾸지. 자신의 미래가 그렇게 생생하고 디테일이 잔인하게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한 채.”


 곧 공부하러 스위스로 갈, 극작가라던 노타이의 남자는 말했다.

운명일까. 경아씨가 생각하는 사이, 오른손에 술잔을 든 채 근엄한 표정으로 인생의 무게를 생각하는 스위스로 공부하러 갈 노타이의 극작가는 왼손으로 어느새 즐거운 경아씨의 치마 속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경아씨는 그날 밤 ‘사랑’을 했다.

몇 날 밤이고 지속되는 ‘사랑’, 기진맥진한 음성으로 물어야만 얻어낼 수 있었던 ‘사랑’.

그 셀 수 없는 ‘사랑’의 밤이 쌓여갔고, 어느 새 경아씨는 자신의 이름 대신에 노타이의 극작가가 상당히 극작가다운 센스로 붙여준 ‘년’  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얻었고, 경아씨의 사랑은 오로지 성기로 대체 되었고, 경아씨의 모든 사랑은 다시금 ‘기술’로 바뀌어 배워야 할 ‘필요’ 혹은 ‘의무’가 있는 것이 되었고.

곧이어 스위스에서 공부 할 노타이의 극작가는 경아씨의 ‘사랑’이라는 무대에 선주라는 과거의 유령을 등장시키면서 경아씨의 사랑을 하루하루 더해져 가는 과거의 디테일에 밀려 빨아야 될 필요성이 있는 ‘물건’으로 변형시켰다.

 그 즈음 경아씨는 반질거리는 화상흉터가 있는 왼손을 테이블위에 얌전히 놓아둔 한사장에게 소개되었다. 스위스로 공부하러갈 극작가도 반질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경아씨는 ‘뭘 모르는 년’ 이었으니까.

 반질거리는 화상흉터가 있는 왼손을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아둔 한사장은 빠져들 것 같은 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경아씨의 마음을 읽어내는 무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한사장의 무서운 눈이 꼭 경아씨의 마음만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경아씨에게는 당연한 일이 벌어졌다.

 경아씨는 다시금 사랑에 빠졌다.

한사장이 전화로 한 인간을 지옥으로-혹은 길거리로 내모는 동안, 경아씨는 몸으로 한사장을 향한 사랑의 편지를 거듭해서 썼다.

사랑의 편지, 때로는 안단테로, 때로는 알레그로로. 계속되는 고백의 밤으로 아랫배가 당길 즈음 정석이 걸어 들어왔다.

정석은 큰 키와 건장한 몸, 그리고 준수한 마스크를 지니고 있었다. 정석은 늘씬한 몸과 고운 피부, 그리고 섬세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경아씨는 사랑에 빠졌다.

이번엔 진짜일까, 진짜일까.

사랑을 얻은 경아씨에게 모든 것을 차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던 '호텔 경영학'주제로 스위스에 가는 티켓을 얻었고, 사랑을 얻었고, 한번 실제로 보고 싶던 노타이의 스위스를 가게 되었고, 경아씨는 주연이었다. 꿈만 같았다. 모든 것을 얻은 그 때, 경아씨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곧이어 사랑을 잃고, 모아두었던 스위스 여행 경비를 잃어야 했다. 꿈에서 깨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경아씨는 인생의 ‘잔인한 디테일’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네모 칸의 사라지고 있는 자리를 대체하고 있음을 안다.

 

 아직은 유치한 수준이지만.


++++++++++++++++


 ‘그’는 조용히 방의 불을 끈다.

그리고는 문의 확대경으로 복도를 본다.

그럴 때의 ‘그’의 귀는 엄청나게 예민해져 있다.

이웃한 304호의 티브이에서 나오는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귀에 간지럽다.

얼마 전 비로소 한사장에게 속았음을 인정한 ‘그’는 이제는 자신이 조심해야 할 때임을 안다.

 스위스, 스위스에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텐데.

‘그’는 잠시 문에 기대어 스위스를 꿈꾼다. 아마도 ‘그’의 꿈에는 선주도 함께일 것이다.

웃을 수 있다. 웃을 수 있을까?

‘그’는 애써 웃음을 흉내 내어 본다.


 갑자기 거칠게 울리는 왼손으로 두드리는 현관문 소리.

 

                                          '아'

 

 어느새 그는 공항에 서 있다.

 ‘그’는 문득 공항에 나와 준 선주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고마움’이라니. 스스로가 갑자기 한심함을 느낀다.

 ‘사랑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당연히 말을 못한다.

그들의 겉도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라의 최고 권력, 대통령까지 다다른다.


 그는 그 때까지 미래는 오래 지속 될 것이며, 아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주인공의 자리에 자신을 슬그머니 가져다 놓는다. 그것은 어이없이 슬로바키아 상공에서 가속의 끝을 볼 때까지 계속된다.


 격주당한 KM4237편에서 그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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