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면서 쓴 글 입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물론 제 개인적인 분석입니다~ㅋ
지역감정 생성과 득표율의 관계
1. 지역감정의 시작
혹자들은 지역감정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지역감정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각 지역의 지역적 감정은 있을 수 있으나,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더욱 심화시킨 것은 바로 박정희 시대이다.
5.16쿠데타로 인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국정운영의 정당성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국정운영의 정당성을 북괴침공과 경제발전이라는 두 가지에서 찾았다. 이는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혀들었고, 경제발전에 있어서 큰 성과를 이루기도 하였다.
정치적 기반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새로운 기반을 만들려고 시도를 한다. 자신의 기반을 두는데 있어서 자신의 출생지를 하는 것이 당위성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기에 이를 이용한다. 또한 경상도의 인구는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인구가 있기에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경부축을 기준으로 경상도의 발전을 먼저 실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라도 지역이 소외되게 된다. 이를 박정희 대통령은 더 심화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이로 인해 경상도 사람들 스스로의 기득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차별적 기득권을 가지게 된다.
강원지역은 그 당시 경제 성장을 위해 광물자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적 우위를 가지게 됨으로 인해, 경상도 지역과의 유대감을 가지고 된다. 이에 비해, 충청과 전라도지역의 지역적 소외감이 발생하게 된다.
독재정권으로 인해 민주화 열망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을 해왔을 무렵, 국민들의 승리로 인해 박정희 시대가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박재규의 암살로 인해 독재가 끝나게 되었다.
2. 또 다른 독재자
암살로 인해 박정희 시대의 과오는 국민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된다. 민주화의 열망이 조금씩 커지려 할 때, 민주화의 요구 대상이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또 다른 군사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전두환 대통령 시대. 전두환은 박정희와의 친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서, 박정희의 정치적 전략을 잘 봐두었고, 이를 그대로 계승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 또한 정치적 기반과 국정운영의 정당성이 없기에 이를 박정희 대통령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오게 된다. 이로써 지역적 감정이 풀어지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더욱 철저하게 이용이 되게 되었다. 여전히 경상도의 차별적 기득권을 가지면서 호남과의 적대적 관계를 이용한다. 호남의 민심이 이탈이 되더라도 호남의 인구는 경상도의 3분의 1의 해당되기 때문이다.
3. 민주화 운동의 시작
또 다른 독재자로 인해 민주화의 열망은 다시 최고 통치자에게로 쏠린다. 이전 독재자의 대한 심판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박정희 정신을 계승한 전두환은 자신의 기반을 다지려 노력할뿐, 이전 시대의 과오는 묻히게 되었던 것이다.
민주화 열망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나, 상대적 박탈감이 있는 호남에서 타 지역보다는 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곧 5.18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사상 유래 없는 국군이 국민에게 총을 발포하고 무참히 짓밟는 사태가 발생한다. 전두환은 민주화의 시작을 봉쇄하려 하였고, 이는 한국사에 가장 비극적 결과를 가져온다.
“매년 5. 6월이 되면 광주는 향 내음이 도시 전체를 감싼다.”
민주화 운동은 결국 전국적으로 퍼져 6월 항쟁으로 인해 전두환 정권은 무너지게 된다. 경상도지역에서 민주화 운동도 활발하긴 하였지만, 서울과 전라지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계속적인 지역감정을 유발시킨 효과로 볼 수 있다.
민주화 열망은 전두환을 물러나게 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4. 반쪽 성공
민주화에 있어서 정치적 거물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김영삼, 김대중 이다. 이 두 명이 이끄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민주화를 이끈 거대 정치세력이다.
처음으로 맞는 대통령 직선제에서 이 두 정치거물들이 서로의 이권싸움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의 부하였던 노태우가 직선제 대통령이 된다. 어부지리의 승리이기 하지만 국민이 직접 뽑은 13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다.
노태우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할 수 없기에 전두환의 과오를 숨겼고, 박정희, 전두환에 이어 군부세력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지역감정은 더욱이 심화되었다.
대선결과에서도 이러한 지역감정이 효과를 본 노태우는 계속적인 지역감정을 이용한다.
이 시기에 충청지역에는 또 다른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김종필이었다. 박정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지만, 박정희 말년에서 추출이 되고 자신만의 지역기반을 찾던 중, 충청지역의 일면‘핫바지’론을 들고 나와서 충청지역의 대표 정당을 만들었다. 이 또한 지역감정을 이용한 기반다지기의 일환으로 사용되었고, 박정희와 같은 프레임을 이용한 것이다.
5. 김영삼 대통령
김영삼은 노태우, 김종필과 함께 3당 합당을 이루어 거대 여당을 만들다. 이는 바로 새누리당의 시초라 불리는 ‘민주자유당’이다. 민주화의 거목이었던 김영삼의 이러한 행태는 예상 밖의 일이였고, 이로 인한 정치적 분열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때 김영삼과 함께한 노무현이 탈당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의 선택은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주 목표였을 것으로 보이고, 이는 큰 성공을 이루었다. 군사정권에서부터 단단히 묶어진 지역감정과 자신의 출생지은 부산의 기반은 경부 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감정은 투표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상도의 인구 비중은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인구비율을 차지하고 있기에 김영삼이 김대중을 누르고 대통령이 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목으로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한다. 이때 박정희는 이미 암살로 죽임을 당해 처단의 대상이 없었고, 그 과오를 다시금 들추어 볼 기회도 같이 묻히게 된다.
사형 선고까지 받은 두 전직 대통령은, 김영삼 정권 말에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게 된다. 이로 인한 전라도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 세력인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로 인한 지하경제 양성화를 이루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하지만 IMF라는 경제적 파산에 이르게 되면서 극심한 경제위축이 오게 되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잠시 사그라든다.
6.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의 당선은 흔히들, IMF로 인한 사람들의 분노로 당선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IMF로 나라경제를 망쳐놨지만, 보수정당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이회창의 지지율은 김대중의 지지율을 훨씬 뛰어 넘었다.
이때, 대선에 나타난 사람이 있으니, 흔히‘피닉제’라는 별명을 가진 이인제 이다. 이인제는 보수성향의 대표적 인물로서 이회창 후보와 당내 경선을 치루었지만,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탈당을 한 후 대선이 나오게 된다. 이로 인해 이회창을 지지하던 보수(경상도)쪽 지지율이 갈리기 시작한다.
김대중은 당시 김종필과의 단일화로 인해 충청도의 민심을 어느 정도 가져가게 되지 만, 이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김대중의 득표율은 40.3%를 달성하였고, 이회창은 38.7%를 얻어 김대중이 제 15 대 대통령이된다. 이때 이인제가 받은 득표율은 19.2%이다. 이회창과 이인제의 득표율을 합치면, 무려 58.9%를 이루게 된다. 즉, 김대중의 당선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바로 이인제 인 것이다.
집권여당이 IMF로 경제를 파탄을 내었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대한민국 기여한 공이 큰 인물 이였던 김대중이 간발의 차로 이기게 된 것이다.
이 당시에도 전라도 지역에서는 90%가 넘는 지지를 보내왔지만, 경상도의 인구비례를 본다면, 경상도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기에 보수정당이 60% 득표를 하면 전라도의 득표율보다 2배가 많은 양이 된다. 지역의 득표율 보다는 인구비례 득표율이 더 중요한 것이다.
경제파탄이 되더라도, 30여 년간의 차별적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7. 노무현 대통령 과 깨지지 않는 40%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이러한 지역구도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상황 이였다. 기적 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있어서 몇 가지의 특이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첫째, 노무현은 바로 경남 부산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역적 감성을 이미 가지고 있지만 민주진영에 있는 후보라는 것이다. 경상도의 지역적 프레임을 완전히 깨지는 못하지만, 상당부분 흡수할 수 있는 지역적 태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김대중의 빠른 IMF 탈출이다. 이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IMF탈출로 인해 사람들에게 민주당이라는 각인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생각을 한번 정도 할 뿐이지, 경상도내의 지역감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셋째,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이다. 단일화로 인해 언론의 관심이 커진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의미는 정몽준의 정치지지기반이다. 정몽준은 경남 울산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으로써 울산지역을 흡수하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사상과 정치색이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은 보수와 진보를 합치는데 있어서 크게 작용하게 된다. 또한 막판 지지 철회가 오히려 민주당의 결집을 불러일으키고, 당시 밤 늦게 철회함으로써 정보가 유권자 개개인에게 빠르게 전파되지 못했다.
넷째, 충청의 행정수도 이전계획이다. 충청권에서 거대한 공약을 내놓으면서 충청도의 보수적 지역감정을 단번에 끌어 올수 있었다. 결정적 한 수였다.
이로써, 노무현은 전라, 충청의 지지를 받으면서, 깨지지 않는 경상도의 지지층을 이끌고 와서 기적적으로 당선이 된다.
48.9% 대 46.6% 의 승리. 접전 이였다. 저러한 특수 상황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노무현은 절대로 승리 할 수 없었다. 깨지지 않는 지역감정으로 인해...
지역적 감정을 깨려는 시도가 노무현 집권시 이루어졌다. 계기는 바로 탄핵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의 탄생이다. 열린 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지역적 감정을 뛰어넘는 당선자를 보유하게 된다. 과반이상인 152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지역감정은 깨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은 바로 한나라당의 121석 확보라는 점이다. 당시 탄핵역풍은 지역감정을 깨트릴만한 주요한 사건 이였고, 차떼기 당이랑 불리게 된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한나라당은 존립위기까지 갔다고 전망했지만, 152석을 가진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31석만 줄었을 뿐이다. 이때 박근혜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지역적 지지 기반인 경상도가 한나라당을 살린 것이다.
이때 절대 깨지지 않는 한나라당의 전국 40% 지지율을 알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떠한 비리가 있어도 눈감아주고, 기존의 차별적 기득권에 심취하고, 정치인들이 만든 지역적 프레임을 스스로 버리지 못하게 된 콘크리트 지지율이 생긴 것이다.
지역적 한계를 조금이나마 깨려했던 열린우리당은 아쉽게도 40여년을 지탱해온 지역감정의 단단함을 실감하였고, 스스로의 권력싸움과 새로운 정치적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해 자멸하게 된다. 너무 빠르게 진행된 나머지 부실하게 당이 커져버린 부작용 이였다.
8. 이명박 대통령
열린우리당의 붕괴와 민주진영의 막강한 대선후보의 부재로 인해 보수정당의 집권은 거의 확실시 되었다. 이명박은 박근혜 와의 당내 경선에서 숱한 의혹들이 터져나왔지만, 서울시장의 경험과 당시 시대 상황에서 가장 바라는‘성공’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인물로써, 박근혜를 제치고 당내 대선후보가 된다.
민주진영은 김대중 대통령 선거와 같은 상징적 인물이 나오지 못하고, 노무현 대통령처럼 특수한 프레임이 없었다. 단지 보수진영의 균열이 생기게 되는데 이회창 후보의 무소속 출마이다.
하지만, 기존 민주진영 대통령의 프레임을 가지지 못한 채 치룬 선거는 이명박 48.7%, 정동영 26.1%에 그치는 참혹한 민주진영에 실패로 돌아간다.
이 당시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은 15.1% 였다. 이명박과 이회창의 지지율을 살펴보면, 63.8%의 득표율을 받은 것이다.
깨지지 않는 40% 경상도 지지율과 다시금 돌아간 충청지역에 민주진영은 참패를 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후의 상황은...................................
9. 18대 대통령선거와 수도권의 특수상황
18대 대통령은 박근혜가 되었다. 첫 과반 득표율을 보인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하였다.
51.6% 대 48% 로 승부가 결정됐다. 민주 3기 정부의 탄생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여러 결과도 있지만 지역감정의 벽을 깨지 못한 승부였다.
문재인 후보는 분명 승산이 있는 후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특수한 프레임인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과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해왔다는 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분명히 선거에 영향을 끼쳤고 부산에서의 40%가까운 득표율을 보이면서 노무현이 가졌던 프레임을 더욱 더 강화시켰던 결과였다. 하지만 부산에만 한정됐을 뿐, 경상도 전체에 퍼지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단일화라는 주요 이슈를 가지고 있었고, 안철수 후보 또한 경상도 출신이라는 특수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기에 효과는 분명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약점을 문재인은 가지고 있었다. 역설적이만 바로 노무현이라는 약점이 이 특수한 프레임의 폭발력을 감소 시켰다고 본다.
수도권과 서울에서는 박빙의 승부를 겨루게 되었다. 이 또한 지역적 프레임을 조금은 깬 상황이다. 수도권에 모인 사람들은 서울 출신들 보다는 타 지역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구성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이는 곳 전국에서의 인구 분포에 맞게끔 수도권 인구의 시골이 같다는 것이다.
수도권은 즉 전라도와 경상도의 인구 비례와 비슷하게 지역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전라도의 인구는 경상도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다는 점에서 수도권에서도 패배도 자명한 일이였으나, 수도권에는 지역감정 외에도 특수한 프레임이 생성됐다.
그것은 젊은 세대들의 증가율이 높다는 점과 정보공유의 확산에 있다. 젊은 세대들은 지방에 있기보다는 수도권으로 올라오게 됨으로써 지역감정을 경험하지 않고 수도권에서 생활하게 된다. 또한 한쪽만의 의견을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감정이 섞이는 수도권에 있으면서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지역감정이라는 틀이 약한 세대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보의 습득이 빠르며 상호간의 정보공유가 빨라졌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을 가지고, 젊은이들의 높은 학력은 정치인들이 짜놓은 지역적 프레임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20,30대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던 것으로 본다. 물론 약 30%의 박근혜 지지율도 가지고 있다. 이는 지역적 감성 프레임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과 고민으로 만들어낸 성숙한 정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0. 총론
이처럼 내가 본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지역감정에 따라 득표율이 결정된다고 본다. 이는 40여 년 동안 단단하게 사람들에게 박히게 되었고 그것을 깨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지역적 프레임은 향후 20년은 더 단단할 것으로 보는게 내 생각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만들어진 성처럼 빈틈을 찾기엔 역부족이다.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철저하게 이용당해 왔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51.6% 대 48%는 큰 의미가 있다. 보수 세력이 분열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항상 대선에서는 보수세력의 분열로 인해 득표율이 과반을 넘지 못했을 뿐(노무현 당시에는 정몽준이 중도 보수의 성향을 띄면서 보수를 갈라놓았다고 본다), 보수진영의 득표율은 항상 60%를 가지고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수층이 모두가 뭉쳤음에도 불구하고 51.6%의 득표율을 보인 것이다. 정치적 이용을 위해 만들어 놓은 지역적 감정이 약해지고 있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48.%의 득표율은 노무현시대에 가지고 있었던 특수한 프레임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이정도의 득표율을 보인 것은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지역감정이 자연스레 없어지려면 향후 20여년은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된 것과 같이 특수한 프레임을 가지거나, 지역프레임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나온다면 내 예상과는 다르게 빨리 지역감정이 해소 될 것이다.
현재로써, 안철수가 특수한 지역적 출생 프레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인물로 난 평가한다. 향후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안철수의 입지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안철수를 중심으로 야권이 재구성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서 지역감정이 깨져야만 한다. 그리고 난 후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가 이루어 질 것이다.
보수는 이 땅을 밝고 나아갈 수 있는 발이고,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는 눈이라고 한다. 보수만 있다면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모르고 거꾸로 달려갈 수 있고, 항상 넘어지게 될 것이다. 진보만 있다면 갈길을 보겠지만, 한발자국도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2013년 51.6%의 튼튼한 보수의 발이 생겼다. 48%의 눈을 통해 올바른 곳으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