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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OT에서 만난 제 첫사랑 Ssul. txt
게시물ID : humorstory_4247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벤젖소
추천 : 12
조회수 : 929회
댓글수 : 83개
등록시간 : 2014/09/19 16:22:25
얼마나 이순간을 기다려왔던가? 

 나도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때 머리는 좋았으나 친구들을 잘못만나 수
능시험을 망쳐 겨우 내 키 정도의 점수를 받고 좌절한
지 2년, 

남들은 일생에 한번본다는 수능시험을 3번이
나 봐서 수능 시험장가는거나 우리동네 동사무소 가
는거나 별반차이를 못느껴졌을 때 비로소 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였다. 

그런데 이 합격이라는 것도 예비의 예비의 예비의 번호를 받고, 72년에 한번씩 온다는 헬리혜성이 두 어바퀴 우주를 돌아올 만큼의 대기순번이 돌고나서야 나는 혜성의 불타는 꼬리를 잡듯이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로또당첨같이 대학을 들어가 기쁘고 또 기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내가 들어간 천문학과는 그 스케일만큼이나 우주에서나 나올법만한 액수의 등록금을 요구했다. 

역시 대학은 스케일이 다르군이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등록금의 반을 학자금대출 받아야 했다. 

나머지 반은 부모님께서 주셨는데 어머니는 벽을 보며 내게 돈 봉투를 내밀었고 나는 바닥을 보며 돈 봉투를 받았다. 

부모님도 돈을 어렵게 마련하신거라 등록날짜의 마지막의 마지막에 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난생처음 느껴보는 두꺼운 감촉을 느끼며 나는 은행을 향해 달려야했다. 

번호표를 뽑는 곳 옆에서 있는 직원은 나에게 무슨 일이냐며 묻고는 나를 ATM기계 앞으로 안내했다.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직원 대신 난 오래된 게임기같은 차가운 기계앞에서 돈을 입금해야했다. 

내가 게임을 하듯 가벼운 손놀림으로 버튼을 누르자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은 누군가에게로 전달됐고 기계는 미션성공을 축하하며 종이를 내뱉었다. 

힘껏 부풀어있던 내주머니는 갑자기 겸손해졌고 아직 손에 남아있는 두꺼운 감촉은 게임인듯 현실감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신입생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갔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나는 내가 낸 등록금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낸 어마어마한 등록금들은 어마어마한 소주들로 둔갑해있었다. 

나는 등록금을 환수하자는 목적으로 엄청난 양의 소주를 먹었다. 나는 술이 강한 편이다. 

괜히 3번이나 수능을 본 게 아니다. 

그렇게 술을 먹다보니 한 선배를 만나게 됐다. 그 선배는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는 선배였는데 지금이 무슨 70년대도 아니고 왠 사회주의인가 했지만 집이 어디냐? 예쁜 누나가 있냐? 동기 중에 제일 괜찮은 애가 누구냐? 는 질문에 슬슬 짜증이 나는 참이었기에 그 선배앞에 자리를 잡았다. 

 “ 넌 사회주의가 뭔지 아냐?”  

이미 그 선배는 혀를 씹어 먹으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안주를 먹을 것이지.....

 “ 잘 모르는데요.”  

내가 대답을 하자 그 선배는 물 만난 고기처럼 쉴새 없이 나에게 사회주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 레닌,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 등등등 마치 재수할 때 들었던 윤리수업을 다시 듣는 듯 했다. 

내가 돈이 없어 새우깡에 깡 소주를 마신적은 있어도 
사회주의를 안주삼아 술을 먹은 적은 없어서 소맥이나 폭탄주보다 더 속이 거북했다. 

나는 마르크스 선배에게 최대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취기가 오르는 것같아서 찬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마르크스 선배는 긴 수업을 마친 교수처럼 나에게 잠깐의 쉬는 시간을 주었다. 

물론 수업은 이대로 땡땡이다. 

 밖으로 나가자 온통 하얀색 투성이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눈이 참 천천히 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느릿느릿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니 온 세상이 내리는 눈의 속도에 맞추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달리는 차도 모두 흔들리는 눈의 속도에 맞추어 춤추듯이 움직였다. 

나는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져 방으로 돌아가 담배를 가지고 왔다. 
 방에서는 마르크스 선배가 다른 수강생을 찾아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었다. 
돌아온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니 안경에 김이 서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닦기가 귀찮아 그냥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안보이는 눈으로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원래 담배를 잘 피지는 않지만 사회주의 강의는 너무나 느끼했고 내리는 눈은 담배연기와 너무나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김이서린 뿌연 안경을 쓰고 문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한 두모금쯤 담배를 피고 있을 때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불 좀 빌려줄래?”

 처음 보는 사람이 왜 반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냥 동긴가 보다 하고 옆을 올려다 보았다. 뿌연 안경 너머로 어떤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올려다 보아서 그런지 키가 무척 커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였다. 
처음 보는 여자 보다는 눈 내리는 풍경이 더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말없이 그녀에게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틱’ ‘틱’  

그녀는 몇 번 라이터를 켜더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야! 안되잖아 담배줘봐”  

그녀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내 담배를 뺏어간 후 자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가 됐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라고 생각하며 한마디 할 생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김이 사라져가던 내 안경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얼굴 쌍꺼풀없는 큰 눈, 약간 웨이브가 들어간 검은 생머리, 그리고 그 뒤로 하얀 눈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마치 눈의 여왕을 보는 듯했다. 
하얀 눈을 등지고 서있는 그녀는 시린 눈처럼 눈부셨다. 
그녀에게는 그 어떠한 장신구나 명품 옷보다도 그녀의 등 뒤로 내리는 눈이 그녀를 가장 아름답게 해주는 것 같았다. 

순간 김 서린 안경을 끼고 쭈그린 채 앉아있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난 재빨리 안경을 벗고 일어났다.
 일어나자 그녀의 타들어가는 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저 담배가 다 타기전 까지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하지? 무슨 말을 하지?“

 담배는 순식간에 타들어갔고 그녀는 담뱃불을 끄고 꽁초를 버리려고 했다. 
더 이상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 꽁초는 제가 버릴게요 저 주세요” 

 
“응?”  

그녀는 “얘가 무슨 소리하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들어봤던 수많은 작업멘트 중에서 “꽁초는 제가 버릴게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황당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나조차도 황당했다. 
낭만도 없고 재미도 없는 그런 멘트를 해버리다니 최악이었다. 

그래도 난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하면서 말했다. 


 “환경을 사랑해야죠”  


점점 더 나는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아까보다 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수만가지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웃는 얼굴로 변하더니 말했다. 


 “미안 내가 환경을 오염시킬 뻔 했네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손에 담배꽁초를 떨어뜨려 주었다. 
그리곤 휑하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는 커녕 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채 그녀를 보내버렸다. 

내가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녀가 던힐 밸런스 담배를 피운다는 것 정도다. 
정말 CSI에 DNA검사라도 맡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3번의 기회를 맞는다는데 나는 그 한번을 환경이야기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온다는 그 3번의 기회 중 한번을 이상한 환경이야기로 날려버렸다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온 뒤에야 마르크스 선배가 생각이나 그쪽을 힐끗 돌아보았지만 선배는 이미 구석에 누워 자고 있었다. 
꿈에서 마르크스랑 술 한 잔하고 있는지 매우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속상한 마음을 잊으려 다시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다시 똑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집은 어디냐?, 여자 친구는 있냐?, 여기서 제일 맘에 드는 에는 누구냐? 몇 살처럼 보이냐?, 

개중에는 전에 물어봤던 사람이 똑같은 걸 질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을 하기 위한 말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처음 본 사이에서 침묵은 죄악이다. 
마치 탁구를 하듯이 서로의 말을 받아친다. 
랠리가 끊기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다. 

 “어디사세요?” 서브 

 “○○살아요.” 리시브  

“아 ○○살아요? 거기 내 초등학교 친구가 사는데!” 서브 

 “아! 정말요 와! 세상 참 좁네요.” 리시브  

탁구는 의외로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운동이다. 

나는 그 랠리에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 한 선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야! 야! 자리 좀 만들어봐!” 

 선배는 호들갑을 떨며 좁은 자리를 비집고 자리를 만들었다. 

 “들어 오세요”  

선배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문을 열고 몇 명의 여자들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미대 학생들인데 우리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얼마 없고 저쪽도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 없어서 친분도 쌓을 겸 불러왔어 잘했지?”  

선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몇 명은 존경의 눈빛으로 선배를 잠시 쳐다보고는 들어오는 미대생들에게 재빨리 시선을 옮겼다. 

나는 평소라면 하이에나같은 눈빛으로 문 쪽을 쳐다봤겠지만 전의 여왕님과의 알현이 있었기 때문에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그래도 눈의 여왕 말고도 백설공주나 신데렐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나도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들어오는 한 여자가 있었다. 

바로 눈의 여왕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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