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내년에 열여덟살 되는 여고생입니다. 계속 고민하다가 글 남겨봅니다..
아마 나이대 있으신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번 읽어봐주시기 바래요.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서 동년배이신분의 글이 필요할것같아서요ㅠㅠㅜ
긴 글이기 때문에 미리 3줄요약해두겠습니다.
1.엄마가 씨엔블루를 좋아하십니다.
2.아빠는 엄마가 씨엔블루를 좋아하는 걸 싫어하십니다. 그냥 싫어하시는게 아니고 직접 통제를 하십니다.
3.저는 가운데서 쥬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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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 싸우기 시작하신건 제가 중학생때였구요.
싸우시는 이유는 다름아닌 아이돌때문입니다.
엄마가 언젠가부터 씨엔블루라는 아이돌 밴드를 좋아하게 되셨습니다. 서른 살 먹고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였겠죠.
저도 그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가 좋아하는 가수 얘기가 나오면 앞뒤잘라먹고 마구마구 말하게 되죠.
친구들한테 막 찬양하고, 너도 이거 한번 보라고 전파도 하고, 난리도 아닙니다.
어쨌든, 엄마가 그렇게 되었어요. TV에 씨엔블루가 나오는 걸 보면서 좋아라 하고.
인터넷에서 씨엔블루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만나서 대화도 하고. 씨엔블루 앨범도 모으고, 영상도 다운받아서 돌려보고.
저는 평소에 무미건조하게 일상을 보내시던 엄마가 활기를 띄는 걸 보고 기뻤습니다.
드디어 엄마도 취미생활을 가진다는 것의 기쁨을 깨달았구나!!
근데 아빠가 그게 마음에 안드신겁니다.처음에 그소리를 들었을 땐 그냥 질투인 줄 알았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가 씨엔블루를 좋아하는 것이 아빠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라고 생각하시고 질투하는줄요.
사실 그게 아니잖아요. 엄마가 현실이랑 연예계랑 구분도 못하겠어요?
그런데 아빠에게 있어서 이건 가벼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처음에는 아빠도 그렇게 심하게 반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엄마가 씨엔블루 찬양하는것도 그냥 옆에서 가만히 들었구요.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가 콘서트를 다녀오셨는데 (아빠 입장에서는 아빠가 콘서트를 보내준 것이 되더군요.)
아빠에게 듣기로는, 그 날 이후로 엄마가 씨엔블루에 눈이 뒤집혀서 정신을 못차린대요.
네. 콘서트를 다녀오면 안 좋아하던 가수도 좋아하게 되죠. 분위기라는게.. 한번 갔다오면 또 가고싶어하는건 당연한 겁니다.
이걸 아빠에게 미리 알려주기라도 해야 되었던 걸까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빠는 그 후로 엄마의 취미생활을 막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루는 그 문제로 싸우시다가, 엄마가 모으시던 앨범이나 관련상품을 전부 다 압수해서 버리셨답니다.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아빠는 지금 엄마가 절대적으로 아빠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하구요.
압수? 평등한 위치에 있다면 절대 못할 짓이죠. 선생님이 학생한테, 부모님이 자식한테나 하는 일을 왜 아빠가 엄마한테 해요.
저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인 걸 어떻게 하겠어요. 계속 싸우십니다. 통제는 심해지고요.
좋아하는 가수가 프린트된 달력 하나 원하는 곳에 세워놓지 못하고, 자기 핸드폰 바탕화면도 마음대로 못하고.
원하는 콘서트에 가고싶을 때,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가지 못하고.
심지어 인터넷에 자기 아이디를 검색해서 자기 글을 확인하기까지..
만약 그게 제 상황이라면 전 벌써 우울증걸려서 자살시도 몇번 하고 정신병원다니면서 약먹고있었을걸요.
이걸 버티는 엄마가 신기할따름입니다.
어느날 이런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크게 터진 적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혼 얘기가 나온거죠.
이혼얘기가 나올거라는걸 알고는 있었어도, 솔직히.. 존나 병1신같았습니다. 욕해서 죄송합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죄없는 씨엔블루만 미워하게됐어요. 씨엔블루때문에 무너진 가정은 우리집밖에없을겁니닼ㅋㅋㅋㅋㅋ
저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제 밝은 미래를 부모님간의 불화로 망가뜨리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끼어들었습니다.
아빠랑 엄마랑 각각 1:1로도 얘기해봤고 셋이서도 해봤습니다. 아빠를 설득하는게 목적이였습니다.
한 사람의 네티즌으로서 수많은 커뮤니티를 거쳐봤던 덕후로서 인터넷에서의 아이돌 팬 문화와, 오타쿠들의 취향존중정신과, 신상털이의 위험성, 부부로서 존중받아야 할 개인 프라이버시,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 등등을 전부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아빠는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아니죠. 이해하고싶지 않은것 같았습니다.
'내가 씨엔블루를 좋아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좋아한다' -> '나와 가정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렇게만 생각하고계십니다. 하시는 말 하나하나마다, 밑바닥에 기본적으로 아빠>>엄마라는 공식이 깔려있습니다.
이걸 바꾸려니 마치 경상도출신 50대 아저씨에게 그네공주님 찍지말라고 설득하는듯한 기분입니다.
진중권아저씨의 명언이 생각나는 하루였습니다ㅠㅠ
솔직히 엄마가 피해자이기만 한 건 아니죠. 아빠가 싫다고 했는데도 계속 씨엔블루를 언급해서 일을 키우신건 엄마입니다.
밖에 나가서는 꼬박꼬박 근황 보고하라고 아빠가 당부를 했는데도 연락없이 즐기고만 오셔서 아빠가 걱정하게 만들구요.
초기에 제가 엄마한테, 씨엔블루 좋아하는 걸 너무 드러내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적당히 숨기라고 권해주고 방법까지 알려드렸는데도
그렇게 못하겠다고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래야 하냐구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겪어온 후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해결책이니까요!
하여튼 어른들은 애들 말을 장난으로 듣는다니까!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제가 선배인데.
전체적으로 엄마 입장으로 쓴 글입니다. 제가 객관적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쵸?
글을 잘 못써서 글이 중구난방 엉망진창일 거예요..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한줄이라도 의견 남겨주셨으면합니다ㅠㅠ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대체로 어떠한지 보여드리고싶어요.
베스트 보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지만..많은 건 바라지 않구요.
뭐라도 적어주세요. 꼭이요. 빨리 이 싸움을 끝내버리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