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여자를 미워합니다.
아니, 여자라 칭하기도 조금 민망한 그 여자 아이가 밉습니다.
따지고 보면 잘못 한 것도 없는 그 아이가 난 너무나 밉습니다.
그 아이를 미워하는 내가 초라하고, 그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미안해하는 나는 또 참 못나 보입니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그 아이가 참 밉습니다.
예쁘고, 밝고, 풋풋하고, 현명하기까지 해 보이는 그 아이가 나는 참 밉습니다.
아마, 나보다 더 예쁘고, 내가 못 가진 풋풋함을 그 아이가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보다 더 먹은 십 년의 나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값도 못하는 내가 그래서 더 초라해집니다.
그 아이는 '오빠'를 사랑한다 말합니다.
내 연애시대의 구할을 함께했던 '나의' 그를 (혹은 나의 그였던 그를) 좋아한다 말합니다.
열 살이나 많은 남자에게 자연스레 '오빠'라 부르는 그 아이가 부럽습니다.
내 주위의 나보다 열살 많은 남자들에게 나는 오빠라 쉬이 부르지 못하는 그런 나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에게 한번도 불러주지 못한 호칭이라 그러한가 봅니다.
나는 '나의' 그였던 그 남자도 미워합니다.
그 여자 아이를 사랑한다 말하는 그 남자도 나는 참 미워합니다.
나와 점심을 함께 먹고 손을 잡고 길을 걷던 날, 그날 밤 그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던 그가 밉습니다.
그를 좋아한다는 그 아이 마음 앞에 나의 존재를 간단히 숨겨버린 그가 밉습니다.
나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아버리기 까지 한 그가 너무 밉습니다.
“미안해, 나 잡아줘”가 아닌, “미안해, 우리 그만 만나자”라고 말한 그를 나는 미워합니다.
아니 말도 아닌 간단한 텍스트를 일방적으로 보내버리고 나의 연락을 차단한 그를 나는 최선을 다해 미워합니다.
아니, 사실 미워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잊으려 노력합니다.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사랑'을 폄하하고 부정합니다. 그러려 노력합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나는 더 초라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 또한 미워합니다.
이렇게나 미움이 가득한 나는 참 못난 사람입니다.
그 남자의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나와 함께 한 그 시간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