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군대간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네.
페이스북도 가끔 하면서, 휴가 나오면 친구들 만나면서,
오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는 것 같더라.
오빠가 올해 초 술자리에서 군대간다고 말했을 때 기억나?
'나 3월에 군대 간다. 미안하다'
이 얘기 듣자마자 나 펑펑 울었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엄청 서럽게 울었지.
애들앞에서 창피하고 그런거 생각도 못하고 그냥 눈물범벅 되도록 울었었지...오빠 가면 나 어떻게 사냐고.
대학 들어와서 처음 오빠를 봤을 땐 오빠가 무서웠어.
잘 놀게 생겼었고 나랑은 말 섞을 기회도 별로 없어서 내게 그저 오빠는 '잘 놀게 생긴 무서운 사람'이었지.
그러다 내가 오빠가 있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지.
동아리를 들고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내게 오빠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무서운 사람이었어.
나랑은 말 몇 번 섞어보지도 않았지만, 무서웠던 오빠의 이미지와는 달리 유머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오빠의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나.
그러다 언제부터였더라. 언제부터였는진 모르겠는데, 내가 오빠를 좋아하고 있더라.
어느순간 오빠는 무서운 사람이 아닌 자상하고 유머있는 사람.
감정표현엔 서툴고 좀 무디지만 그래도 속깊은 좋은 사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까 나는 오빠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그게 아마 작년 이맘때쯤일거야.
내가 오빠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게.
내가 항상 오빠 챙기고 따라다니고 좋다좋다 하니까 오빠도 나 참 이뻐해줬었지. 나도 알아.
그런데 그게 여동생같이 챙겨주는거란거, 나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애초부터 오빠랑 잘돼보겠다는 생각, 나 하지도 않고 있었어.
겨우 이렇게 친해지게 됐는데.
남매처럼 다정한 사이 괜히 내 어설픈 고백으로 깨지게 될까봐, 그냥 이렇게 오빠는 나 동생처럼 아껴주고 나는 오빠 잘 챙기고 따르고.
그냥 이런 사이라도 난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게 혼자 힘들게 마음 정리했었고.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마음 정리한 나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거 오빠잖아.
그냥 동생이라면서, 진짜 아끼는 여동생이라면서,
왜 새벽마다 뭐하냐고 전화하고, 보고싶다고 술마시자고 불쑥 불쑥 불러내고 그랬어?
영화는 왜 보러가자고 한거고 카톡은 왜 시도때도 없이 했어?
내가 어디서 뭐하는지 묻고 술 마시지말고 일찍 들어가라고 잔소리하고. 왜 남자친구처럼 굴었냐구...
그래, 그때부터였어.
내가 술김에 나 오빠 많이 좋아했는데, 지금은 마음정리했다고.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남매같은 사이로 남고 싶다고 얘기했던 날.
그땐 몰랐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오빠가 저렇게 내 맘 흔들기 시작한게 그 날 이후부터였어.
나쁜 놈. 내가 그렇게 쉬웠니? 오빠 좋다고 항상 표현하고 잘해주니까 내가 그렇게 만만하고 우스웠어?
저렇게 친한 오빠가 아니라 남자친구처럼 굴어놓고, 말로는 항상 넌 그냥 정말 아끼는 동생이다. 나 좋아하지말고 다른 좋은 남자 만나라....
겨우 정리한 내 맘 미친듯이 흔들어놓고 말로만 선긋는 오빠 행동에 지쳐서 나 정말 다 포기하려고 일부러 오빠 멀리하고 오빠한테 소홀했을때, 오빠 나한테 뭐라그랬어? '이젠 나 안사랑해? 사랑이 식은거같아...오빠 서운하네'
그러는 오빠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알아?
밤마다 우느라 잠도 못잤어. 미칠거같아서 매일밤 친구한테 카톡하고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울고... 그러다 침대에 누워 눈감으면 또 오빠생각에 가슴이 턱 막히고 눈물만 나고... 그렇게 새벽까지 울다가 지쳐 잠들고..
내가 왜 오빠는 자꾸 자기 좋아하지말고 다른 좋은 남자 만나라 그러냐고 물었을 때, 오빤 날 위해서라고 했었지?
자기는 좋은남자 아니라고, 넌 훨씬 더 좋은남자 만나야한다고.....
웃기지마. 오빠한테 나는 '남 주긴 아깝고 나 갖기는 싫은' 그런 여자였던거야.
안그랬으면 어떻게 나한테 저런 행동들을 하면서 내 친구A한테도 작업을 걸었을수가 있어?
어떻게???????????????야 이 나쁜놈아....나쁜 자식아......
오빠가 군대가고 난 후 오빠가 없는 내 생활들은 진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밥먹다가도 수업듣다가도 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도 오빠가 너무 보고싶었고
눈뜨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오빠였고 잠들기 전에도 오빠 생각하며 잠들었어.
눈 떠서부터 눈 감는 그 순간까지 항상 오빠가 보고싶었다고...
그토록 내가 좋아하고 열심히 했던 동아리 생활도 오빠가 없다는 사실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이리저리 과제에 알바에 학과공부에 치여사느라 오빠생각날때마다 써 뒀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내 방 서랍 한구석에 쌓여만 가고 있었지.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던 어느 날, 난 동아리 사람들을 통해 오빠가 내 친구A와 썸관계였다는걸 알게 됐어.
난 그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너무 생생히 기억나.
온 몸이 떨리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친구A는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믿고 아꼈던 친구였거든...오빠도 알고 있었잖아...
A는 내가 오빠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 알고있었으면서... 자기는 오빠한테 눈곱만큼도 관심없다 그랬으면서...
내가 정말 사랑하고 믿었던 둘에게 배신당한 그 순간, 그 느낌을 어떻게 잊겠어..? 아직도 난 그 때만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져.
그래. 우린 따지고 보면 사귄것도 아니니까 아무 사이 아니었지.
그래도 오빠가 사람이라면, 적어도 사람이면 나한테 이러면 안되는거 아니었어..?
나한테 A랑 썸이었던거 숨길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잘 숨기던가. 들킬 짓을 왜 해?
숨기고 군대 가버리면, 끝까지 안들킬줄 알았어? 그래놓고 뻔뻔하게 나한테 전화하더라....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속편하겠지? 속 편히 그렇게 잘 살고 있겠지?
난 아직도 이렇게 불쑥 불쑥 이 모든 일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럴 때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미치겠는데.
왜 전화 안받냐고 페이스북 담벼락에 글 남기고, 잘 사냐고, 생일 축하한다고 글 남기고.....
난 이제 진짜 다 잊었다고 믿고 싶었어. 그렇게 믿어야 내가 살아질 것 같아서, 그렇게 지내왔어.
그런데 그거 알아? 오빠가 나한테 준 이 상처들이 너무 커서 잊어지지가 않나봐.
나도 평범하게 남자친구랑 알콩달콩 설레는 연애 하고 싶은데, 대학 들어올 때부터 갖고있던 작은 소망이었는데, 난 그걸 못해. 못하겠어.
나 좋다고 다가오는 남자를 봐도 저 남자는 내게 어떤 상처를 줄까 두려워서 자꾸 거부하게 돼. 연애같은거 시작도 못하겠다고...
나 아직 스물 한 살밖에 안됐고, 연애라는거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는데....
오빠가 준 상처가 너무 커서, 내 첫사랑이 남긴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연애라는거 해보기도 전에 벌써 무섭고 질린다...
주변 친구들처럼 나만 사랑해주고 나 아껴주는 남자 만나서 알콩달콩 깨쏟아지는 연애... 나도 이런거 해보고싶다...
내가 바랐던건 이거 하난데. 이게 그렇게 나한테 과분한 욕심이었나..?
요즘 모든게 다 너무 힘들어서 기댈 곳이 필요해.
친구들도 다들 자기 일로 바쁘고 부모님껜 오히려 더 약한 모습 못 보이겠고...
이젠 혼자 화장실에서 몰래 우는 것도 지친다.
나도 친구들처럼 남자친구한테 투정도 좀 부리고 기대고 싶다...
그런데 이런 생각 할 때마다 오빠가 준 상처가 떠올라서 또 숨이 막힌다 나는..
-------------------------------------------------------------------------------------------------
오늘은 답답한 마음에 혼자 산책하는데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진짜 울기 싫은데 요즘은 자꾸 울컥 눈물이 올라오는게...
이렇게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네요...
겁쟁이라서 익명으로 글 남기지만, 모르는 분들께라도 따뜻한 위로한마디 듣고싶은 제 심정을 이해하시려나요..?
벌써 세시가 넘었는데 잠도 안오네요... 오유분들은 걱정없이 푹 주무시길 바라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