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어제 11월 6일 신곡 I(아이)를 발표했습니다.
일단 보시죠.
이후 설명들은 뮤비를 한번은 보셔야 이해하기 좋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당장 알지 못해도 무언가 분명한 주제의식과 일관된 컨셉이 있음이 보였으니까요.
앉은 자리에서 스무 번을 돌려보고, 배속을 느리게 해서도 보면서 저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들을 찾았습니다.
1. 나현은 주인공이다.
그녀는 처음과 끝에 홀로 등장하며,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중심에 있고, 유일하게 독무가 있는 인물입니다.
2. 표정
주인공인 나현 이외에 다른 멤버들의 표정은 명백히 '분노' 한 가지 감정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표정에 변화가 없고,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습니다.
3. 춤
저는 이 안무가 특이하다고 느꼈습니다.
여럿이 모여 특정한 대형이나 모양을 이루지도 않고,
귀여움이나 섹시함 등 매력 어필도 아니고,
가사의 내용을 안무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걸그룹 안무 같지 않은 춤이었습니다.
4. L'AMORE
뮤비의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저 단어는 가사에 나오는 단어도 아니고, 제목과도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마치 출입구를 막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단어가 쓰여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뮤비를 뜯어보겠습니다.
저는 우선 L'AMORE의 뜻을 검색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이돌 뮤비에 사랑이 나오는 것은 너무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왜 굳이 이탈리아어까지 찾아서 쓴 것일까?
영어는 너무 흔해서? 아니면 이 단어가 발음이 좋아서? 가사에 나오지도 않는데?
의문을 품고 검색을 이어가다가 이것과 비슷한 다른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L'AMORE 와 LA MORTE 이 단어들은 마치 영어의 IMPOSSIBLE과 I'M POSSIBLE 처럼
한 끝차이로 뜻이 달라지는 단어이면서 이 뮤비의 컨셉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뮤비가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의 제목은 I(아이) 입니다.
'I'는 '나'를 뜻하는 동시에 '어린 아이, 순수했던 나'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순수했던 나, 어린 아이 같았던 나의 사랑과 죽음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년간의 걸그룹 덕질 경력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안무는 좀 특이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막 추는 건 아니고, 어떤 장르가 있는 것 같은데...
은연중 드러나는 유럽풍의 느낌과 앞서 검색했던 이탈리아어를 조합하여 저는 발레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젤'이라는 발레가 정확히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젤'은 발레계의 햄릿이라고도 불리며 발레리나들에게는 누구나 꿈꾸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전부 읽으셨다면 위에서 주목했던 1,2,3번 의문점들이 한꺼번에 풀리게 되실 겁니다.
특이했던 춤은 '발레 지젤'을 표현하고 있었으며, 주인공 나현이 '지젤'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은 남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은 영혼 '빌리'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하나같이 분노한 얼굴들이었던 것이죠.
이것들을 조합하여 뮤비의 주요 장면들을 짚어보겠습니다.
시계가 울리고, 찻잔에는 마치 연기처럼 보이는 것이 스며듭니다.
이것은 늦은 밤 시간, 빌리들(영혼들)이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빌리들도 한때는 사랑받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즐겁게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꽃을 찾고, 춤을 추었죠.
이후 빨간색 옷을 입은 나현이 나오는데, 이 옷을 입은 것이 진짜 나현(현재의 나현)입니다.
(이렇게 각도가 틀어진 장면이 몇 장면 더 있는데,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잘 모르겠어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빌리들은 자신들의 배신당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나현을 빌리의 세계로 부릅니다.
빨간 옷의 나현은 빌리들의 세계에 빠져드는 나현의 영혼입니다.
빌리들이 향하는 곳은 앞서 보았던 뮤비의 마지막 장면에 있던 출입구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빌리들은 무덤 속에 있다가 밤에 무덤 밖으로 나오며, 새벽이 되면 돌아갑니다.
(진짜 이 세로 구도가 왜 자꾸 나오는지 알려주실 분 찾습니다 ㅠㅠ)
이 부분의 가사는 No pain No love 입니다.
반점 없음에 주목하시고 No (more) pain No (more) love 라고 해석하는게 적절합니다.
아까 이 옷 입은 애는 진짜고 다른 건 영혼이라고 했는데 얘들은 그럼 뭔가 싶으실 겁니다.
여기서 제목과의 연계가 들어갑니다.
실제 본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순수했던 나, 어린 아이 같았던 나'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빌리가 된 것이죠.
이것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기억하신다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잃은 제제는 더이상 밍기뉴와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저 나무일 뿐이니까요.
실내에 있는 애들은 빌리들입니다.
유일하게 살짝이나마 웃는 모습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발레 지젤에서는 찾아온 남자를 죽이려는 빌리들에게서 남자를 지켜주며 함께 사랑의 춤을 추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혼자 춤추게 되는 걸로 보아 남자는 끝내 사과조차 없이 떠나간 나쁜 놈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 장면 기억나십니까?
이곳은 빌리들이 거주하는 죽음의 공간이며 저 문은 사랑과 죽음을 가르는 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네 번 울리며 빌리들은 사라집니다.(시계는 처음부터 변화하지 않습니다.)
나현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제 나현은 자신의 순진했던 아이(I)를 잃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빌리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최종 정리 해보겠습니다.
소나무의 신곡 I(아이)는 사랑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순수했던 나의 죽음이라 말하며 그것을 발레 지젤과 엮어 노래하였습니다.
으아아아아아!!!!!!!! 소나무가 해냈습니다 여러분!!!!!!!!
고급지고 멋있는 분위기와 컨셉, 의상 뭐하나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뮤비 어려울까봐 힌트 남겨준 것들도 보세요 ㅠㅠㅠㅠ
어젯밤부터 이 글 쓰고 싶어서 잠이 안오더군요.
진짜 작품하나 나왔습니다.
우리 소나무 다들 수고했다 ㅠㅠㅠㅠ
여러분 우리 소나무 뮤비 잘 만들었다고 소문 좀 내주세요 엉엉엉 ㅠㅠㅠ
마지막으로 뮤비 한 번 다시 감상하고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