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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보는 대한민국 사회.과연 정의로운가?
게시물ID : sisa_3391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nggu
추천 : 2
조회수 : 2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26 23:34:40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적 정의’>

 

명예, 금전 등과 같이 분배 될 수 있는 것과 관련된 정의

부정한 사람과 부정한 행위를 불공정하거나 불균등하다고 할 때, 옳음이란 과대(불균등)와 과소(불균등)의 중간

옳음은 최소 4가지 항으로써 성립한다. 누구를 위하여(둘 이상), 배분되는 것(둘 이상)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A(사람):B(사람)=C(사물):D(사물)

분배의 기준이 되는 가치가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비례적 균등을 이루는 것이 옳음, 즉 정의이다. 이 비례를 깨뜨리는 것이 옳지 않은 것, 부정이다. 균등한 사람들이 균등치 않은 것을 취득할 때, 균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균등한 것을 취득할 때 이 비례는 깨지며 분쟁과 불평이 발생한다.

Ex) Q : 노동의 강도와 숙련도가 같고 갑은 3시간, 을은 2시간 빵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빵은 총 10개가 생산되었다. 생산된 빵은 어떻게 분배되는 것이 정의로운가?

A : 3():2()=6:4

 

<노동을 분배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할 때, 과연 우리 사회는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례적 균등을 이루는 것이 분배적 정의라고 하였다.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곧 비례가 깨진다는 것이다. 균등한 사람들이 균등치 않은 것을 취득할 때, 또는 균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균등한 것을 취득할 때 비례적 균등은 깨진다. 이런 비례적 불균등에 놓여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 위험에 노출될 집단은 다름아닌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현대자동차의 왼쪽바퀴를 끼우는 정규직 노동자와 오른쪽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동일한 노동을 한다. 개별적으로 느끼는 체감의 정도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객관적인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는 동일하다. 그들의 노동숙련도에 따른 생산량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정 수준의 숙련도 이상은 생산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이다. 상여금은 없다. 사내 복지제도의 혜택도 없다. 균등한 사람들이 균등치 않은 것을 취득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비정규직 노동자(계약직,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부딪혀 좌절하고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와 투쟁을 한다.

이러한 부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빈번하게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을 실질적인 효력이 없게끔 만드는 어떠한 메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종속성을 완화하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부조리한 사용자의 행위에 맞설 수 있는 수단과 통로의 차단. 그것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결국 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작동원리로 깊숙이 관여할 때 분배적 정의의 실현은 점점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전체노동자에 대한 비정규직의 비율(201211월 기준 47.7% 한국비정규노동센터)과 정규직과의 임금격차(정규직의 49.6%)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사회는 아직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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