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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best_426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밉상이★
추천 : 24
조회수 : 1189회
댓글수 : 1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6/01 00:12:03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5/31 13:45:57
-23-
마지막 수업 이었다.
그 애는 오늘 따라 숙제도 다 해오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돌아보면...
이렇게 별 탈 없이 끝난 적은 한번도 없었지 않나 싶다.
"진작 이렇게 하지"
"그러게요"
그 애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다.
"왜 그렇게 힘이 없어?"
"힘이 없긴요..."
수업이 수월하다 보니..
두 시간이 금방 간 느낌이었다.
아주머니께 인사하고,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문을 나서려는데..
"선생님..."
그 애가 내 옷깃을 잡는다.
잔뜩 풀죽은 표정이다.
돌아서서,
그 애를 찬찬히 바라 보았다.
나도 녀석도, 서로 정이 많이 들었다.
"나 집까지 바래다 줄래?"
"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게..
여름이 끝나가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말없이 걸어서..
버스 정류장을 지나..
호빵 파는 구멍가게 앞을 지나..
우리 집 앞 까지 왔다.
"내가 너한테 맡길게 하나 있는데, 잘 돌볼 수 있어?"
"뭔데요?"
잠시 기다리게 한 뒤,
집으로 들어가...
개 집에서 멍멍이를 꺼냈다.
녀석은 자다 깨서 으르렁 거린다.
"시끄러 임마.."
그 애에게 멍멍이를 안겨주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다.
"어?"
"잘 돌볼 수 있지? 나 없는 동안 성격 좀 고쳐놔"
그 애는 눈시울이 붉어 지더니..
강아지 등에 얼굴을 묻고..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네.. 잘 돌볼게요"
나는 멍멍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새주인은 나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을게다."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마구 버둥거린다.
"자.. 이제 가봐."
훌쩍거리고 있는 그 애의 등을 떠밀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버티고 서 있다가..
"선생님.. 있잖아요"
"뭐가 있어?"
머뭇 머뭇 거리더니.
"아무리 나쁜짓이라도 뭐든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 했는데요"
"알지.. 오늘은 참아주라"
나에게 한 걸음 다가오더니..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본다.
"진이 언니한테만은 나쁜짓 못하겠어요.."
"무슨 소리야, 그렇게 못살게 굴어 놓고"
"아뇨.. 그런게 아니라"
그 애는 강아지를 품에 꼬옥 안으며..
결심한 듯이 말한다.
"그럴 일 없겠지만.. 만약에 만약에 인데요..
몇 년 후에, 저도 졸업하구..
혹시라도 선생님이랑 진이 언니가 헤어지면..."
언젠가 진이가 말한대로..
이 나이 때는 잘 대해주고 놀아주는 상대에게..
쉽게 정이 들어서, 좋아하는 감정으로 착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절 어떻게 생각 하세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한 때 철 없이 과외 선생을 좋아 했었지' 하는 정도의..
추억담으로 남는 것이 좋다.
"조그만게, 까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그렇게.. 말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씨... 아파"
살짝 때린건데..
녀석은 진짜 아프다는 듯이..
눈물을 찔끔 거린다.
"너무.. 아파"
나는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후.. 한 숨을 쉬었다.
"가, 입대 전에 한 번 보자."
녀석은 말 없이 돌아서서..
터벅 터벅 힘 없이 걸어간다.
축 처진 어깨를 보니..
나도 왠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 진다.
담배 한대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한모금
후.. 깊게 들이 마셨다.
지금은 아프지만,
초 봄 추위처럼 금방 지나갈 것이다.
그런 나이니까.
입대를 앞두고의 몇 달은 금방 지나갔다.
마음만 조급할 뿐, 뭐 하나 제대로 정리 되는 것도 없었다.
가을이 깊어갈 수록,
진이는 점점 더 우울해 했다.
난 그런 진이를 달래느라..
애써 익살스런 짓을 하고는 했지만,
진이의 말수와 웃음은 줄어들어만 갔다.
그렇게 헤어진 후,
그 애에게는 전화 한통화 없었다.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녀석도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거겠지..
하긴 나도 이것 저것에 정신이 없어,
그 애의 일은 조금씩 잊어 가고 있었다.
머리를 바싹 깍은 후,
손 잡고 미용실 문을 나서면서
진이는 드디어 울어 버렸다.
그 동안 많이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진이의 뺨에다 머리를 문지르며..
"받아랏 고슴도치다~"
해 보았지만..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가고 나면
진이는 참 외로운 애다.
멍멍이의 부재에 대해서는..
저녁 식탁에서 잠깐 화제가 되었지만,
누구도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역시 맡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산에는 부모님과 작은 누나 그리고 진이가 따라왔다.
누나는 나를 꼬옥 안아 주었다.
"징그러 저리가. 안하던 짓을 하고 난리야"
"정말 귀여운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니까"
엄마는 우시고..
아버지는 껄껄 웃으셨다.
내 자식이 벌써.. 하시면서.
진이는 말 없이 훌쩍거리고 있다.
뭐, 기다려 달라는 둥 쓸데 없는 말은
우리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난 진이를 꼭 껴안아 주고, 뒤돌아 들어갔다.
훈련소 기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춘천가는 기차를 타고..
102보에 잠시 머물렀다가.
자대 배치를 받았다.
우리 부대는 그야말로...
첩첩 산중 한 가운데 있었다.
보통 말년 병장이 막내를 직접 괴롭히는 일은 없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속칭 개지랄 최병장이라 불리는 그는..
말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지막 날 까지 나를 가지고 놀다가.
"내가 너라면 자살한다"
...라는 말을 남기고 전역했다.
그럴 수야 없지,
내가 나가는 대로 널 찾아가 한 방 먹여 주마.
날은 점점 추워진다.
강원도의 겨울은 내가 경험해 본 어떤 계절 보다 추웠다.
그나마 편지 보는 것이 낙이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뜯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진이는 일주일에 두 세통씩은 꼭꼭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우울한 내용이었지만,
갈 수록 적응이 되는지.. 이제는 많이 밝아졌다.
그러던 중,
의외의 한통을 받았다.
그 애였다.
반가웠다.
가슴이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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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진이 언니한테 주소 알아 낸 것은 한참 전이었지만,
일주일 간이나 망설였습니다.
입대 하시기 전 까지, 얼마나 찾아가서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정나미 없다고 욕하지 마세요.
왠지 선생님을 보면 마구 내 욕심대로 투정 부리고 매달리고 그랬을 것 같아요.
아시죠? 저 참을성 없는거...
진이 언니와는 소중한 하루 하루 였을텐데,
저 같은 것이 사이에 끼어서 아름답지 못한 기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진 않았어요
어제는 편지지를 앞에 두고..
선생님과 보낸 1년을 가만이 돌이켜 보았답니다.
이렇게 제 멋대로인 녀석은 처음 보셨을 거예요.
속 시원하시죠? 저 안보니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선생님만 보면 자꾸 어리광을 피우게 되는 저였습니다.
자꾸 눈물이 나네요.
약속 드려요.
지금은 비록 철 없고 어린 여자애지만.
언젠가 선생님이 '쟤 있잖아 내가 가르친 애야'
자랑스러워 하실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선생님,
건강 조심 하세요. 식사 잘 하시구.
다음에는 정말 밝은 표정으로 만나요 우리..
보고 싶어요. 정말
답장 꼭 쓰세요.
마지막으로..
지난 1년..
너무 고마웠어요.
전 선생님 덕분에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선생님의 의무가 이걸로 끝은 아니예요.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절 지켜봐 주세요.
그거 아시죠?
여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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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준 장미꽃은 세상에 한 송이 밖에 없어.
그러니까...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지.
"녀석.."
코 끝이 찡해진다.
편지지를 내려 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너한테 많이 배웠고.
많이 즐거웠고.
많이 보고 싶다.
편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으려고 보니..
"어라"
뒷장에도 무언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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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까먹고 안 쓸뻔 했네요.
지금 "답장은 무슨 답장이야" 하면서
이 편지.. 쓰레기통으로 직행 하고 있겠죠?
안봐도 뻔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내 말 딱 맞죠? 뜨끔하신가요?
그렇게 나올 줄 알았죠.
그래서 말인데요..
한 가지 상기시켜 드리려구요.
선생님은 그 안에 계시지만.
사랑하는 진이씨가 제 손바닥 위에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언니 하나 쯤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것은
아시겠지만, 저한텐 식은 죽 먹기거든요.
빠른 시일 내에 답장을 받기를 바랍니다.
저 참을성 없는거 아시죠?
그 어리버리한테는 이래저래 참 험한 세상이군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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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입대 하면서도..
뭔가 뒤가 찜찜하다 했어.
"내가 이 자식을 없애 버리고 들어 왔어야 하는건데"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탈영할까...
이리하여..
[그 여중생]
-끝-
그 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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