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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핡기 로마사(3)-공화정 시기의 사회적 기반
게시물ID : history_42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악진
추천 : 12
조회수 : 6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04 06:44:16
1. 공화정 시대의 사회상 시민권은 계속 강해진다. 시민권은 로마시를 넘어서 이탈리아 중부인들에게도 부여되었다. 로마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계급은 농민이다. 로마 사회의 근간은 언제나 농업과 토지에 있었다. 지중해를 내해로 하면서 상업이 발달하고, 끝없는 정복을 추구하는 군국주의적 면모에 가려지고 있지만 로마의 기초는 어디까지나 농업에 있다.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케레스). 로마는 훗날 극단적인 도시화가 되고도 농촌의 삶을 그리워하는 문화를 가졌다. 연말연시에는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농신제를 벌였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로 변용되었다. 태양력 1월 1일인 아폴로 축일이 크리스마스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차피 12월 동짓날과 태양력 1월 1일이라는 점은 같다. 아폴로와 사투르누스 둘 중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로마신 축일에 자기들끼리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였고, 이것이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의 신전터. 지난 회에 소개했던 원로원 건물이 뒷편으로 보인다. 2.시민계급 초기 공화국 인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은 농민이었다. 로마는 자체 인구조사(켄수스)를 했는데, 이는 당시 사회상을 알아내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인구조사에서는 ① 군인으로 복무하는 데 필요한 무기와 갑옷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 ② 자식을 낳는 것밖에는 국가에 공헌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무산자. 즉 프롤레타리아), ③ 재산도 자식도 없고 단지 머릿수로만 계산되는 사람들, ④ 이 3가지 계급보다 낮은 노예로 인구를 분류했다. bc3세기와 bc2세기에는 자영농 대부분이 급속도로 몰락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 시기는 로마가 전쟁을 통해 지중해의 주인이 되는 시기와 일치하는데, 자영농이 몰락함과 동시에 자영농이 상실하는 토지를 얻게된 신흥귀족들의 등장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로마가 동맹시들에게도 로마시민권을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시민계급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곧 투표권의 인플레이션을 의미하고 시민계급의 영향력이 시궁창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호민관이라면 역시 그라쿠스 형제. 3. 호민관 이탈리아 전역에 있는 로마시민권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로마시내에 거주하는 시민들조차도 그들의 의견을 정부에 반영할만한 수단은 없었다. 평민들이 군역을 거부하거나 시민철수를 함으로써 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를 할 수 있었을 뿐이다. 평민들이 그들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수단은 일반투표로 선출되는 10명의 호민관들이었다. 호민관은 법률을 제안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청원을 해결하기도 했다. 물론, 호민관마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배계급으로 변질되었다. 그라쿠스의 토지재분배 안이 실패한 것 역시 다른 호민관들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4. 로마의 헌법 공화정의 제도적 장치들은 복잡하기는 하지만 민중의 불만을 점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훌륭한 것이다. 호민관의 의결은 10명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효력이 있었는데, 이는 사회의 급진적인 변화를 막으면서 서서히 개혁을 할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상하원이 일거에 교체되지 않고 중간선거를 통해 부분적으로만 교체되는 미국의 의회제도가 이러한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정교하고도 합리적인 권력구조는 로마가 테베, 시라쿠사, 스파르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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