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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핥기 로마사(4)-포에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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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악진
추천 : 12
조회수 : 86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5/04 08:45:09
1. 로마의 세력 확장 bc5세기 로마는 이탈리아 중부를 정복하였고, 라틴연맹에 속하는 도시를 로마에 종속시켰다. bc4세기 중반에는 반란을 일으킨 동맹시들을 꺾으며 자치권은 인정하되 군권은 로마에게 헌납하도록 했다. 로마의 귀족 가문은 동맹시들의 지배계층과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쌓으며 그들을 로마화시켰다. 곡창지대 이탈리아 중부를 장악한 것은 이후 로마의 팽창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속주가 늘어나면서 로마군대의 세력은 더욱 강해졌다. 로마 공화정은 징병제를 통해 병력을 동원했는데, 재산을 소유한 모든 남자 시민들은 보병16년, 기병10년을 복무해야 했다. 로마군은 "레기온"을 단위로 구성되었다. 레기온은 장창을 들고 밀집대형을 이루며 싸우는 것을 기본 전술로 삼았다. 2. 지중해 서부의 패권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한 로마는 그리스 서쪽에 있는 도시들로 눈을 돌렸다. 그 중 시라쿠사는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했는데, 시라쿠사의 그리스인들은 피루스를 필두로 로마인과 카르타고인들을 모두 물리쳤다. 시라쿠사인들이 외부침략자들을 가까스로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시라쿠사는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싸움에 할 수 없이 말려들었다. 3. 1차 포에니 전쟁(bc264~241) 3차 걸친 포에니 전쟁은 100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포에니'란 페니키아를 가리키는 로마어인데, 이 전쟁의 이름부터가 그렇듯이 포에니 전쟁에 관한 자료는 깡그리 로마 입장에서 만든 자료로만 접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이 때 처음으로 해전이란 것을 해봤다. 함대를 구축하여 시칠리아를 공격했고,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정복했다. 시라쿠사는 결국 카르타고와의 동맹을 포기했다. 사르디니아와 시칠리아 서부는 로마 최초의 이탈리아 바깥 영토가 되었다. 4. 2차 포에니 전쟁(bc218~201)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것은 2차 포에니 전쟁이다. 이 전쟁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논쟁이다. 스페인을 사유지와 같이 지배하던 한니발은 스페인에서부터 진공하여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전역을 유린했다. 트라시메네 호수와 칸나이에서는 2배나 더 많은 로마군을 참패시켰다. 이탈리아 내부 동맹시들이 줄줄이 로마에 등을 돌리고 카르타고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이탈리아 중부의 동맹시들은 로마를 배신하지 않았다. 한니발의 이탈리아 주둔은 장기화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를 포위공격할만큼의 물자를 모으지는 못했다. 본국에서도 한니발에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로마가 자신들을 배신한 동맹시 카푸아에게 잔인한 보복을 가할 때 한니발은 카푸아를 도와주러 오지 못했고, 로마군은 이베리아를 공격하는 대담한 공격을 했다. 한니발의 동생이 이베리아를 지키러 달려 왔다가 로마군에 의해 전멸 당했다. 한니발은 b202 카르타고 남서부의 자마에서 스키피오에게 패배하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났다. 2차 포에니 전쟁에 의해 사실상 서지중해는 로마의 손에 떨어졌다. 패전한 카르타고는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였고, 한니발은 카르타고 중앙정치에 몇년 간 몸을 담다가, 망명객이 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도중 카르타고 편에 섰던 시라쿠사는 주권을 완전히 잃었다. 이 때 시라쿠사로 몰려오는 성난 로마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다. 정원에 그려놓은 도형을 로마군이 밟자 이를 항의하다가 아르키메데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날조된 전설(이라고 하는 것이 JM로버츠의 말)이다. 5. 동 지중해로 진출하는 로마 여러 가지 중대사건들로 인해 로마는 동 지중해로 팽창을 꾀하게 됐다. bc228년 로마는 이미 코린테 지협 제전경기에 참여를 했다. 이는 그리스가 로마를 헬레니즘 세계의 문명세력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는데, 로마는 대체로 남부 그리스 도시들의 편에 서서 마케도니아를 견제하는 태도를 취했다. bc200년에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 왕국에 대항해 그리스를 도와달라는 요청이 로마에 들어왔고, 이를 기점으로 로마는 헬레니즘 세계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6. 포에니 전쟁이 만든 세상 사실 카르타고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로마인들 대부분이 이것을 승산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마평원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일부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두려워했다. 승리를 거둔 뒤,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깨닫는다. 그 달콤함은 가히 다시는 중독을 끊을 수 없는 것이어서 로마문명 자체를 정복 중독증에 걸리게 할 정도였다. 사르디니아, 이베리아, 시칠리아에서 유입된 노예와 황금은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부를 선사했다. 로마인들은 포에니 전쟁을 통해 얻은 정복지들을 동맹시가 아니라 약탈대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로마의 장군들이 전리품들을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전통도 생겨났다. 카르타고 유적. 대체로 정복 후에도 지방특색을 존중하는 로마의 전통과 달리, 카르타고만큼은 철저하고도 무시무시하게 파괴되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카르타고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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