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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운명을 건 한판승부
게시물ID : humorstory_4275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세지섭
추천 : 3
조회수 : 62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1/07 06:51:33
 지금의 초딩의 놀이문화는스마트폰 게임, 온라인게임 정도지만 예전의 어린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구슬치기, 병뚜껑따먹기,
 
 딱지놀이, 기타 몸으로 하는 여러종류의 술래잡기 등등.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건 딱지치기였다.
 
 몸이 약해 숨차는 놀이를 즐겨하지 않던 나는 종이와 약간의 손재주만 있다면 쉽게 즐길수 있는 딱지치기를 좋아했고, 우리동네의 상당한
 
실력자였다. 달력으로 만든 뻣뻣한 딱지에서 부터 얍삽한 녀석들이 물에 살짝 젹셔온 신문지 딱지까지 내 앞에서 배를 내보이지 않는 녀석은
 
 없었고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녀석들은 집에갈때는 표지가 다 없어진 누드교과서를 가지고 돌아가 어머님께 등짝을 맞곤 했다.
 
 이런 나와 유일하게 비견되는 녀석이 있었다. 그놈은 칼치기의 1인자였고 나는 발대고 치기의 1인자였다. 딱지를 세워서 딱지의 옆을 공락해
 
 넘기는 칼치기는 상당한 숙련도를 요하는 기술이었지만 왠지 얍삽해보였다. 하늘아래 태양은 둘일수 없는 법. 나는 그런 사파의 기술을 사용하는
 
녀석을 용서할수 없었고 그녀석과 나는 논두렁에서 혈전을 펼쳤다. 우리둘은 딱지를 따고 잃기를 반복했고 결국 해가 넘어가 어머니가 밥먹으러
 
오라고 부르기 전까지 승부를 낼수 없었다. 승부를 겨루는 과정에서 서로의 내공을 인정한 우리는 논두렁에 나란히 누워 헉헉대며 한게임 더?
 
라고 CF의 멋진 한장면을 연출했고, 집에 들어가 옷을 더럽혔다고 사이좋게 부모님게 두드려 맞았다.
 
 
 서로의 실력을 인정한 우리는 '깜보'를 맺기로 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M&A. 그당시 녀석과 내가 깜보를 맺었다는 것은 마치 지금의 삼성과
 
애플이 손을잡고 i럭시 핸드폰을 출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더이상 동네에는 적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렇게 우리는 동네 딱지시장을
 
독과점하는 거대 공룡이 되어갔다.
 
 이러한 사실이 동네에 퍼질 무렵, 옆마을 대표에게 도전장이 왔다. 가소로운 놈. 우리는 콧방귀를 뀌며 원정 게임을 뛰었고 가볍게 상대를 제압
 
할 수 있었다. 나름 동네에선 한 가닥 하는 녀석이 우리에게 제압당하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몇일 후 리벤지 매치를 신청해왔다. 우리는 흔쾌히
 
수락했고 몇일 뒤 결전의 날이 되었다.
 
 
 예전의 무기력한 패배에 자존심이 상한 녀석은 상당한 양의 딱지를 만들어왔다. 종류와 크기가 중구난방이던 우리의 딱지에 비해 그녀석의 딱지는
 
 유니폼이라도 갖춰 입은 듯 매우 깨끗하고 표면에 정갈한 한자무늬가 새겨진 모양이었고 규격화 되어있었다. 잠시 긴장했지만 딱지는 사람이
 
 치는 것. 규격화된 딱지는 오히려 쳐댈때마다 일정한 힘과 손목의 스냅을 주기만 하면 가볍게 배를 보였다. 결국 우리깜보의 현란한 기술에 마음껏
 
 유린당한 그녀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지켜보던 갤러리들의 위로속에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그날 저녁. 저녁을 먹던 도중 손님이 찾아왔다. 나가보니 옆마을 딱지 대표와 그의 아버지였다. 설마. 친구들과 다툴때면 '우리아빠 달리기
 
데따빨라!', '우리아빤 키 되게커!' , '우리아빤 어른이거든?' 하며 서로의 부모님을 자랑하고 명예를 드높이던 우리였지만 설마 진짜로 아버지를
 
데려올 줄은 몰랐다. 나는 재빨리 내가 딴 딱지는 아드님과 남자대 남자의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취득한 것이며 절대 물리적, 정신적 위력행사가
 
없었음을 어필하려 했으나 아버지 옆에 서있던 녀석의 얼굴이 위장이라도 한 것처럼 총천연색 칼라풀염색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녀석이 접어온 딱지는 족보로 만들어 온 딱지였다. 한집안의 덕망높은 어른들의 함자에 싸닥션을 먹인나는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공명첩을
 
받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딱지치기로 유서깊은 양반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그 녀석은 다시 딱지를 찾아갔고 후에 들은 얘기지만 어떻게든 가문의 영광을 다시 찾아 보려는 아버님께서 딱지를 한장 한장 펴서 다림질을
 
하다 울화통이 터져 그 놈의 다리에 회초리로 호랑이 문신을 새겨주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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