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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핥기 로마사 방론-한니발과 칸나에 전투
게시물ID : history_42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악진
추천 : 12
조회수 : 86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5/04 08:46:23
한니발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한 카르타고의 장군이다. 그는 다양한 요소를 한데 녹여 막강한 전투부대를 탄생시켰고, 이질적인 군대의 강점과 약점을 적절히 활용했다. 그는 비상한 능력을 지닌 야전사령관으로서 로마를 상대해 결정적인 몇 사례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로마를 정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쟁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했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명문가 바르카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문의 영지인 히스파니아에서 자랐으며, 장성한 후에는 히스파니아에 주둔한 카르타고 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2차 포에니전쟁이 벌어진 계기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한니발이 에브로 강 남쪽을 공격하고 로마가 이에 반격을 하면서 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었고,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가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니발은 히스파니아에서부터 육로로 갈리아를 거쳐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이 기상천외하고도 과감한 전략은 로마의 의표를 찔렀다. 한니발의 원정군의 용병과 피지배민이 포함되는 등 다양한 구성을 가졌다. 리비아 출신 보병대가 보병대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고, 기병대는 갈리아, 히스파니아, 누미디아인으로 구성되었다. 코끼리 부대는 매우 유명하지만 사실 알프스를 넘는 행군에 있어 애물단지였고 제대로 활용한 전투는 트레비아강 전투 밖에 없다. 자마 전투에서도 코끼리 부대는 동원되었지만 그것은 카르타고로 귀환한 이후의 이야기이고, 알프스를 넘으면서 대부분의 코끼리를 잃었다. 로마군보다 병력이 열세였지만 한니발 군대는 연승을 거두었고 특히 칸나이 전투는 포위섬멸전의 교과서와 같은 싸움이다. 중앙에 보병을 두고 양익에 기병을 두는 전술은 이미 고전적인 배치가 되어 있었는데, 한니발은 보병중앙에 의도적으로 약한 전력을 두어 로마군 중앙보병 앞에서 후퇴시켰다. 로마군 중앙보병이 돌진을 하자 중군의 양옆에 있던 정예리비아 보병이 로마군을 둘러싸고, 로마군 양익의 기병대를 정리하는 작업이 끝난 카르타고의 기병대가 퇴로를 차단하면서 로마보병이 포위되었다. 한니발군은 이탈리아 전역을 유린하고 다녔으며, 이탈리아 남부는 아예 한니발의 편으로 돌아섰다. 시칠리아 역시 다시 카르타고 쪽에 섰다. 로마군은 한니발군의 보급품을 차단하기 위해 자국영토를 초토화시켜야만 했다. 한니발은 로마시를 직접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로마를 몇 킬로미터를 앞두고 히스파니아에서 출발한 지원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공성장비가 부족한 탓이다. 스키피오는 한니발과의 정면대결을 미룬 채 히스파니아와 아프리카를 공격했고, 한니발은 이탈리아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한니발은 군대를 이끌고 카르타고를 구하기 위해 돌아왔지만 자마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했다. 이 싸움의 승패를 가른 것은 칸나이 전투에서도 핵심전술요소였던 '기병'이었다. 칸나이 전투 때와는 달리 자마전투에서는 누미디아가 스키피오 군에 가담을 했고, 기병숫자의 열세때문에 한니발의 작전은 실패했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한니발은 한동안 카르타고 중앙정치 무대에 있었다. 하지만 로마군이 한니발의 신병을 요구하자 망명객이 되었고, 소아시아에서 용병단을 이끌기도 했다. 도피생활 도중 로마가 보낸 사람들에게 잡히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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