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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12)
게시물ID : pony_224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11
조회수 : 39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12/28 19:35:27
 ( 11)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1647&s_no=4242206&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271809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해는 점차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허름한 슈퍼였다.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제삿상에 쓸법한 커다란 상이 있었다. 나무로 못질해서 만들었는데 윗부분은 장판을 못질해서 박아둔 상태였다. 그래서 앉았을 때 약간 찬 느낌이 났다. 아직 초가을이라 날씨는 선선했다. 이 외진 곳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약속장소에 오면서 폐휴지를 줍는 할머니와 유유하게 산책을 다니는 할아버지 말고는 그 누구도 보질 못했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레리티가 들어있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포니가 작다고 하더라도 오래 들고 있으면 힘들었다. 녀석은 가방의 지퍼를 열고 머리만 빼꼼히 내민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녀석은 가방 속에서 뭔가 적더니 앞발로 종이를 내밀었다.

 

'대체 누굴 만나려는거야? 이런 누추한 곳에서...'

 

나는 녀석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순간, 무척 싫어하면서 발버둥쳤다. 그래도 상관 없이 녀석의 코앞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말했다.

 

"깜짝 놀랄 일을 준비했어. 기대해."

 

'숙녀의 얼굴을 함부로 만지는 건 실례야!'

 

라고 곧장 종이가 날아왔다. 갈수록 글을 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난 그저 후후 웃어넘겼다.

만나려는 사람의 정체는 모른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레리티를 그 사람에게 팔 수 있다면 단번에 팔아버리고 말 것이다. 이 녀석을 언제까지 이렇게 데리고 다닐 수만은 없었다. 비록 귀여운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 정은 '돈'이라는 철벽을 뚫기에는 너무 약했다. 지금 우리집 상황은 돈이 절박하게 필요했다. 만약 포니가 아니라 김태희를 판다고 그래도 팔 것이었다. 굿바이 마이 레리티.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나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레리티는 가방에서 나온 뒤,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전신을 쫙~ 스트래칭했다. 엉덩이를 하늘로 뺀 뒤 허리를 활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마치 사람이 요가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은 그걸로 멈추지 않고 곧바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앞발로 머리를 감싸고 돌리기 시작했다. 왼쪽 한 번, 오른 쪽 한 번. 번갈아서 한 뒤에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거슬렸는지 이렇게 써서 보여주었다.

 

'너무 뻔히 보지 말아줄래? 요가하는거 처음보니?'

 

"요가는 몇 번 봤는데.. 포니가 요가를 하는 건 처음보네."

 

'어때? 멋지지? 그럼 잘 보도록해. 이 우아하고 멋진 모습을.'

 

이렇게 쓰더니 우쭐해하며 다시 고양이 요가자세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예뻐서 쳐다보고 있는줄 아는가보다.

녀석이 허리를 부르르 떨며 고양이자세에 흠뻑 심취해 있을 때, 저 멀리서 오타바이의 불빛이 보였다. 그것이 이곳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에 난 녀석을 낚아채서 곧장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녀석이 '꺅'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순간 내가 납치범이 된 느낌이었다. 조선시대에 유부녀를 보쌈해가는 남자들도 이런 느낌일런지.

 

오토바이를 탄 사람은 내 앞에서 멈춰섰다. 그런데 그 오토바이는 익숙한 것이었다. 아침에 수연이와 싸웠던 혜진이도 같은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꽤 인기 좋은 모델인가보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은 헬멧을 쓰고 있었다. 갈색 호피무늬였는데 고양이귀 같은 게 달려있었다. 가슴은 보기 좋게 볼륨감이 있었고 가슴 밑까지만 내려오는 여성용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단숨에 여자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 속에는 흰 나시티를 입고 있었는데 길이가 짧아서 배꼽이 살짝 드러나보였다. 군살 없이 매끈하게 빠진 몸이었다. 스키니한 청바지를 입었는데 부츠는 종아리를 가릴만큼 긴 것을 신고 있었다. 이렇게 훑어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단 한명 있었는데 설마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 사람이 헬멧을 벗자, 그 속에 감춰있던 머리카락이 나오면서 커튼처럼 흩날렸다. 오토바이를 탄 채로, 고양이같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그 사람은 혜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날 본것을 기억 못하는 것인지 그녀가 처음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혹시.. 포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오셨어요?"

 

저 사람이 나보다 동생임에도 난 왠지 기가 죽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우와~!"

 

탄성을 질러댔다. 그 모습이 마치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같았다. 그녀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내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반가워요! 세상에!! 레리티는요?"

 

"가빙에요.."

 

"열어봐도 되요?"

 

호기심 여린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 영혼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제발 열어보게 해달라..냥;' 이라고. 그래서 마녀의 주술이라도 걸린듯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가방을 연 그녀는 다시 한 번 "우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무척 좋은가보다. 너무 좋아서 입까지 가린채로 어찌할지 모르는 듯했다. 저 조그만 망아지 때문에 감동이라도 받았나보다. 수연이를 때린 일진이라길래 이미지는 안좋았지만 생각 외로 좋은 면이 있는 아이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저 여자에게 시간을 뺏길 수는 없었다.

 

"레인보우 대쉬는요?"

 

"잠시만요."

 

이렇게 말하고는 공포에 질린 레리티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레리티는 이게 무슨 경우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혜진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두 세번 쳐다본 뒤, 마지막에 나에게로 고정 된 눈빛은 '제발 어떻게좀 해줘..'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듯 보였다.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혜진이는 악수는 포기한 뒤,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 이름은 고혜진이라고해요. 그쪽은 레리티죠? 놀라게 한 거 죄송해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레리티가 혜진이를 쳐다보자 혜진이는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이 소름 돋는 상황은. 저 망아지에게 어째서 존댓말을 쓰는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쭉 반말을 썼던 나는 뭐가 되는데..?

 

"레리티, 당신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혜진이는 그렇게 말한 뒤, 오토바이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러자 날개 같은 것이 '푱' 하고 튀어나왔다. 푸른색이었다. 그것이 몇 번 퍼덕이더니 트렁크에서 레인보우 대쉬라는 포니가 짜잔, 하고 튀어나왔다. 난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세상에 망할, 날아다니는 말새끼라니!! 그렇게 놀라고 있었는데 더 놀랐던 것은 내 옆에서 들렸던 앙칼진 여자 목소리 때문이었다.

 

"레인보우 대쉬!!!"

 

다름 아닌 레리티가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했던 외침에 레인보우 대쉬는 바로 반응했다.

 

"세상에!! 레리티!"

 

단숨에 레리티에게로 날아왔지만 차마 멈추지 못해서 그만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 때문에 서로 얽혀서 몇번 구른 뒤 멈춰섰다. 서로 아파했지만 레리티는 곧장 레인보우 대쉬를 와락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레인보우 대쉬.. 무사해서 다행이야!"

 

"잠깐, 일단 좀 떨어지자..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껴 안는건.. 쿨하지가.."

 

떨어져보려고 아둥바둥거리는 듯 했으나 레리티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도 어쩔 수 없가 없다는듯 끌어안아주었다. 난 녀석들이 다쳐서 혹시라도 상품가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혜진이는 놀란듯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세상에.. 말을 하다니.."

 

그 말을 그냥 흘릴 수가 없었다.

 

"말을 하다니..가 무슨 뜻이죠?"

 

"랭보는 방금까지 말을 못했어요. 지금 처음 말한거에요!"

 

무척 흥분됐는지 볼까지 빨개져가며 소리치듯 말했다. 여기서 랭보는 레인보우 대쉬를 뜻하는 거겠지.

 

"레리티도 말 못했었는데.. 그래서.."

 

메모장의 종이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레리티가 썼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자 혜진이는 다시 탄성을 질렀다. '우와..' 하고.

 

"미처 이 생각은 못했어요! 그래서 랭보는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나랑 말했었는데!!"

 

저 여자보다는 아무래도 랭보가 더 멍청한 것일테지. 우리도 사실 저런 생각은 레리티가 제안한 것이니까.

이렇게 감동적인 제회가 끝나고 난 혜진이와 대화를 할 필요가 있었다. 레리티를 살 의향을 물어보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좋아하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살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는 가격.. 그 다음으로는 결제 방법등; 설레이고 기분 좋은 생각만이 넘쳐나왔다. 그런데 막상 처음에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난감했다. 혜진이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랭보와 레리티가 노는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랭보와 레리티는 서로 그 동안 못나눴던 회포를 푸느냐고 쫑알쫑알 시끄러웠다. 말을 하는 망아지들이 신기하긴 했지만 저렇게 시끄러울 거면 차라리 종이로 말을 썼던 시절이 더 나앗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뒤에 혜진이에게 말했다.

 

"저기요."

"저기요."

 

둘 다 동시에 말한 '저기요'는 상대방과 자신, 둘 다 난감하게 하는 최고의 상황일 것이다.

 

"먼저 하세요."

"먼저 하세요."

 

이것 또한 앞서 말한 것과 동일한 상황. 그래서 난 혜진이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혜진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장소를 옮겨요!"

 

생각해보니 혜진이와 판매 얘기를 하려면 장소를 옮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그 말에 동의했다.

 

"하려던 얘기는 뭐였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레리티의 모습을 보았다. 도도한척 고개를 꼿곳히 세운 채로 랭보의 열변을 듣고 있고 있었다. 이젠 안녕이다. 레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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