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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14)
게시물ID : pony_22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9
조회수 : 41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12/29 11:26:10

(13)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2543&s_no=22543&page=1

 

 

한동안 술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가장 먼저 취한 것은 레리티였다.

 

"나도 한 때는.. 진짜 예뻤는데.. 지금 내 꼴을 봐! 내 꼴을 보라고...!! 점점 늙어가고 있잖아.."

 

이런 식의 허튼소리만 해대며 훌쩍거리길래 난 녀석을 토닥여주었다. 그랬더니 나에게 와락 안겨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참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고 있는 사이 랭보와 혜진이의 술마시기 접전은 계속 되고 있었다. 벌써 맥주 3000cc를 시킨 것이 두 번째였다.

 

"제법 잘 마시는데...?"

 

이렇게 말한 랭보는 혀가 꼬인듯 발음이 정확하지 못했다. 

 

"아직 시작도 안했어."

 

혜진이도 랭보와 마찬가지로 혀가 꼬이고 눈이 풀려 있었다.

 

"좋아. 그럼 화장실 다녀와서 시작하자!"

 

 

랭보가 말하자 혜진이도 "나도 가고 싶었어.." 이렇게 말한 뒤 룸을 나갔다. 그래서 룸에는 나와 레리티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여전히 레리티는 훌쩍거렸고 나는 슬슬 취기가 달아올라 기분 좋은 상태가 되었다. 난 녀석의 갈기를 무심코 쓰다듬었다. 마치 여자 머리카락같이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그러자 레리티는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맫혀 있었고 코에서 콧물이 나오는지 킁, 하며 들이마시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난 녀석에게 왠지 이별에 대한 말을 해야될 것 같았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거냈다.

 

"그래도 랭보 만나니까 기분은 좋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마법으로 휴지를 뽑더니 고개를 돌려 흥, 하고 코를 풀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깨졌지만 그래도 난 말을 이어나갔다.

 

"너에게 랭보는 친구잖아? 그러니까 말이지..."

 

레리티의 몸을 보았다. 저 작고 귀여운 몸을 주무르다가 힘을 꽉 주면 바로 터져버릴 것처럼 앙증맞았다. 녀석은 날 쳐다보았다. 촉촉하고 커다란 눈망울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랭보에게로 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다른 말을 내뱉었다.

 

"친하게 지내."

 

"그래야지.. 물론.."

 

혜진이와 랭보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우리들은 이제서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랭보와 레리티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둘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뭔가.. 뇌 속에 있던 스위치 같은 것이 딸깍 하고 켜진 느낌이었어."

 

레리티가 그렇게 말하자 랭보도 동의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 내 비행실력은 한마디로 끝내줬다고.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말했다.

 

"어쩌면 다른 친구들을 만났을 때, 원래의 능력이 돌아오는 건 아닐까? 레리티는 능력이 다 돌아온 것 같은데."

 

레리티는 발끈했다.

 

"아니야! 난.. 이 세계에 오기 전에 옷을 잘 만들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 옷 만드는 법을 잊어버렸어... 세상에.. 이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하면서 습관이 들었는지 아까처럼 나에게 안겨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아까처럼 녀석을 토닥토닥 다독여줘야 했다. 혜진이는 그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이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맞아! 그러고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전 김시윤이에요."

 

"전 고혜진이에요. 21살인데.. 학생이에요. 말 놓으세요. 오빠."

 

이러면서 쑥스럽게 웃었다. 여동생 하나 더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다. 혜진이는 전혀 일진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서운 표정을 지을 땐 정말 살벌했었다.

 

"음.. 말 놓아도 된다니까 말을 놓을게. 그리고.. 나 사실 너 알고 있었어."

 

"네?"

 

혜진이는 과일소주에 들어있던 얼음을 입에 넣고 사탕처럼 굴리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말하게 될 사실은 꿈에도 생각치 못한 채.

 

"너 김수연 알지?"

 

"네 알죠. 우리반인데."

 

"내가 걔 오빠야."

 

그러자 혜진이는 얼음을 와작, 하고 깨물었다. 순간 놀랐지만 혜진이가 히히 거리며 웃길래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진짜요? 우와.. 대박. 정말이에요?"

 

"어."

 

난 최악의 경우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까지 염두해두었지만 이런 결과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녀석은 계속 웃어댔다. 이러니까 마치 내 동생 때린 것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했다.

 

"혜진이랑은 왜 싸운가야?"

 

"그거 할 말 진짜 많아요. 그러니까..."

 

수연이는 학교에 친구가 없었다.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는 말버릇과 으스대는 성격때문에 친구가 생길 수 없었다. 속 된 말로 '싸가지'가 없었던 것이다. 혜진이는 자신의 친구들처럼 그런 수연이를 안좋게 생각했지만 그것을 대놓고 표출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수연이에게 시비를 걸면 불같은 성격때문에 치고박고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혜진이는 수연이를 멀리 했다. 사건이 터진 날은 점심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친구들끼리 급식실로 몰려가서 밥을 먹었기 때문에 수연이는 늘 교실에서 밥을 혼자 먹었다. 혜진이는 그 날 다른 반 친구들과 함께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급식실에가서 밥을 타먹고는 점심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교실 탁자에 빵이 하나 있는 것이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전의 학교도 그랬고 지금 학교도 그랬고.. 전 인기가 좋았어요."

 

전에 다녔던 여고에서 혜진이는 학교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혜진이의 터프한 모습과 시크하면서도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끄는 매력에 빠져서 모두들 좋아했다. 그래서 밥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면 탁자에 그녀가 좋아하는 빵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아래에 러브레터가 있더라니까요 글쎄."

 

"세상에...."

 

아무튼 혜진이는 그런 여자였다. 모두의 동경과 사랑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자신의 팬클럽도 있었다.

급식실 보수공사를 한다고 도시락을 싸와야 할 때가 있었는데, 1교시가 끝나고 도시락을 먹은 뒤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이 주는 빵으로 끼니를 떼웠다. 전부 다 팬클럽들이 제공해주는 혜택이었다. 팬클럽에 속하지 않은 아이 중에 다른 반이라면 혜진이의 자리를 몰랐기 때문에 그녀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교탁 위에 편지와 빵을 놓고 간 아이도 있었다. 여기서 문득, 의문점이 생겼다.

 

"그렇게 잘 다니던 학교에서 왜 여기로 전학온거야..?"

 

"그게... 아 지금 생각해도 정말!"

 

혜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엄청나게 아파서 학교를 1년 유급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학교를 다녔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다녔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학교에는 자신들을 따르는 추종자가 가득했고 자신을 못살게 구는 애들도 없었다. 그런데 모든지 순탄한 일은 꼬이게 마련인건지 사건은 학교 밖에서 일어났다.

 혜진이에게 러브레터를 주는 여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녀들의 마음을 받아주지는 못했다. 혜진이는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친구와는 진한 관계였고, 그 둘은 어느 날 모텔에 가게 되었다. 그 때마다 혜진이는 자신의 신분증을 먼저 제시했다. 만으로 19세. 법적으로 성인이었기 떄문이었다. 그리고 한 명이 성인인걸 알고 나면 나머지도 보통 성인이려니 했기 때문에 신분증 확인을 소홀히 하는 이유도 있었다. 모텔 카운터에서 보통 두 명 다 신분증을 확인하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그것을 제시할 때는 가슴을 약간 조려야했다. 그는 신분증의 번호를 마킹해서 성인으로 고쳐놨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모텔에 들어가서 혜진이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수건으로 몸만 가린 채로 무슨 일인가 확인해보니 경찰 몇 명과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있었다. 혜진이는 남자친구 부모님에게 머리까지 쥐어뜯기며 곤욕을 치른 것도 모자라 경찰서까지 가게됐다. 가관인 것은 남자친구의 증언이었다. 부모님이 옆에 있어서 기가 죽었는지 혜진이와는 사귀는 관계가 아니며 자신을 모텔로 가자고 꼬득였다고 진술했다. 혜진이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남자친구 머리통을 경찰서 의자로 내리찍었다. 그 때, 생긴 상처는 바늘로 14번이나 꿰메야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걔 얼마 전에 소식 들었는데 땜빵 엄청 크데요."

 

하면서 꺄르르 웃었다. 잔인한 년..

아무튼 그것으로 혜진이는 남자친구 부모님과 합의도 안되서 성폭력 가해자+ 폭력 전과가 생겼다. 반전이 있는데 그 둘을 신고한 사람이 자신의 팬클럽 회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혜진이는 그것 때문에 배신당한 기분이 들어서 너무나도 슬펐다. 그런 사건때문에 학교에서 강제 전학을 가게 되고 이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참.. 험난한 인생을 살았구나. 그런데 말이지.. 우리 처음 얘기에서 좀 벗어난 것 같아."

 

"아 맞다! 수연이랑 왜 싸웠냐면요.."

 

수연이랑 싸운 날, 교실 교탁에는 빵이 하나 놓여 있었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혜진이는 예전 학교의 버릇처럼 그 빵을 먹었다. 그런데 수연이가 들어온 것이었다. 수연이의 손에는 우유가 들려있었다. 그런데 빵을 먹은 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고 혜진이는 이 상황을 잘 설명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빵을 사준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수연이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마구 욕지검을하며 혜진이에게 덤벼든 것이다. 교실 끝에서부터 달려오길래 주먹을 피했더니 그대로 책상 다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칠판에 얼굴을 박았는데 누가 주먹으로 때린 것처럼 시퍼런 멍자국이 눈에 생겼다. 그래서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그것은 수연이의 화를 더욱 돋굴 뿐이었다. 수연이가 다시 덤벼들었는데 그걸 또 피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서 교탁에 턱을 찧고 말았다.

그 사건 이후로 수연이는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평소 수연이를 싫어했던 애들은 꼴 좋다며 약보기 시작했다. 혜진이와 그다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감히 자기 친구를 건드렸다며 괴롭히는 애들도 있었다. 이제보니 수연이는 참 힘든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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