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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받는 원칙이란?
게시물ID : history_42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없는여자
추천 : 5
조회수 : 771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2/05/05 19:38:59
간단히 정의하자면 <주고받는 원칙>이라는 건 전쟁을 둘러싼 여러 가지 요소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하나의 규칙이 발생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흔히들 전쟁이란 사람들이 모든 것을 걸고 어떠한 규칙이나 룰 없이 온갖 수를 다 써서 싸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 싸움에서 어떠한 룰도 없다고 알 고 있습니다. 이건 틀린 말입니다. 물론 룰이라는 것을 누가 규정하고 지키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인위적인 룰이 전쟁의 형태를 결정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현대전에서 그나마 영향력을 주는 제네바 협정이라고 하더라도 수틀리면 어겨버리는건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주고받는 원칙>이라는 건 인위적이 아닌 인간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에 의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원칙>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날씨, 지형, 인구 숫자, 사회 체제, 식습관, 습기, 평균기온, 무기와 장비의 형태와 성능, 가치관 등의 감히 수로 다 셀수 없는 외적 요소와 더불어, 공포, 분노, 슬픔, 생각 등 인간 내면적인 수많은 요소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작용하여, 일견 룰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에 하나의 규칙을 발생시키는 것이지요. 몇가지 예를 들자면 인구와 지형에 의해 발생한 <주고받는 원칙>의 가장 큰 예로는 폴리네시안 원주민들을 들 수 있습니다. 개중에서도 뉴질랜드의 예를 들자면, 이들은 칼이나 창같은 살상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나무 몽둥이나 옥으로 만든 무기 같은 타격무기들만을 사용합니다. 또 승리하더라도 상대를 전멸시키거나 몰살시키는게 아니라 데려다 쓰죠. 다짜고짜 습격하거나 죽이는게 아니라 전쟁에서 만나 우선 하카라 불리는 전쟁 춤을 통해 자기 위세를 과시하고 거기서 상대가 항복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하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전쟁을 설렁설렁하게 생각하는건 절대 아닙니다. 지면 노예가 되어 평생 노동에 시달려야 하거든요. 그렇지만 왠지 참혹한 살상전에 익숙한 우리들 눈에 보기에는 뭔가 짜고 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지요. 뭔가 룰이 눈에 보이는 겁니다. <주고받는 원칙>이 느껴지는 것이죠. 이들이 이런 전쟁방식을 취한 이유는 뉴질랜드라는, 인구의 신규 유입이 어렵고 다른 곳과 연결되지 않은 섬(지형요소) 이라는 점과, 별로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살육전을 통해 인구가 줄어들었다간 기다리는 것은 파멸뿐(인구요소)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이 인위적으로 이런 것을 알고 모여서 싸움법을 정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형태가 정해진 것이죠. 이러한 전쟁 방식이 보이지 않는 룰, 즉 <주고받는 원칙>으로 되면서 갈등을 전쟁이라는 최대의 수단으로 해결하면서 인구의 소모 등을 크게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그들의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형태가 된 것입니다. 더불어 나중에 백인들에 의해 총이 들어오자, 이들은 앞다투어 총을 구입하고 늘상 하던 것처럼 하카춤을 춘 다음에 총격에 들어갔습니다. 결과는 엄청난 사상자와 인구의 급감이었습니다. 전쟁을 설렁설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전쟁을 의식처럼 생각했다면 앞다투어 총을 살 리가 없겠죠) 와 더불어 그동안의 <주고받는 원칙>이 괜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때의 인구급감에 의해 그래서 뉴질랜드에는 백인이 많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은 이러한 <주고받는 원칙>의 변화가 풍부하게 발생하는 시점입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16~17세기 중후반까지 서유럽의 가장 보편적인 보병 진법인 테르시오 전법입니다. 중앙에는 4~6m의 장창인 파이크를 소지한 병사들이 있으며, 사방에 총병들이 배치되어 있지요. 굳이 이런 전법이 등장한 이유는 기사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4.7m의 랜스와 휘황찬란한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돌격으로 어떤 보병이든 분쇄하는 랜스차징에 대항하기 위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이 4~6m의 창을 가지고 한데 밀집하여 돌격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이지요. 이 또한 <주고받는 원칙>의 일환으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사의 돌격(전술요소) 에 대항하여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장창과 진법(전술요소)에 의한 하나의 형태가 발생한 것이지요. 나중에 16세기 중반쯤 되면 기병의 랜스 돌격이 거의 사라지게 되면서 장창의 필요성이 줄어듬과 동시에 보병들이 점점 장창 교전을 피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파이크 대 파이크의 전투는 이른바 장창 밀어붙이기(Pike push)라고 해서 상호간에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전투입니다. 16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15세기의 양상이 남아있었고, 백병전 무기의 비율이 테르시오 방진 정원 3000명(스페인 기준)당 70%를 넘겼으므로 끝장을 내기 위해서는 백병전을 해야 했지만, 16세기 중반 위그노 전쟁을 거치면서 랜스기병의 가치가 완전히 쇠락하고서는 더이상 장창 비율을 높은 수준에서 올릴 필요가 없었고, 점차 병사들은 확실한 죽음과 사상자가 기다리는 장창 교전보다는, 보다 먼 거리에서 불확실한 죽음이 기다리는(즉 명중률이 낮은) 총격전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16세기 후반에는 총병의 비율이 정원 대비 50%가까이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즉 16세기에 걸친 서유럽 전쟁에서 격렬한 장창교전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총질을 하는 식으로 <주고받는 원칙>이 변한 이유는, 기사의 랜스돌격의 소멸(전술적 요소) / 새로운 기병인 권총기병의 등장과 기병의 전투법이 총격전으로 변화(전술적 요소) / 백병전의 중요도와 무기 감소(전술적 요소) / 상호 피해가 극심한 장창 교전보다는 총격전을 선호하게 됨(심리적 요소) 이러한 요소가 합쳐져 장창 위주-> 화승총 위주라는 <주고받는 원칙>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지요. 서유럽의 예를 한가지 더 들자면 18세기의 왠지 웃기기 그지없는 전투법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짜고치는 고스돕마냥 화려한 군복을 양측이 갖춰입고, 고리타분하게 척척 대열을 맞춰 걸어가더니, 일정 거리를 두고 서로 총질을 해대는 모습은 전쟁이라기보다 신사도의 예법에 의거한 결투에 가깝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엄연한 실전이며, 이러한 형태를 가지게 된 데에는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변화를 봐둘 필요가 있습니다. 16세기가 지나 17세기가 되면 대부분의 기병이 총격전을 주로 하게 되는데, 총알 막는 중장갑을 갖추고 권총을 25m전방에서 발사하는 퀴레시어와, 보다 긴 사정거리의 카빈총을 갖추고 50m전방에서 발사하는 경장갑 혹은 갑옷을 안 입는 아르케버시어로 2원화됩니다. 이와 더불어 총격전 선호는 더욱 강해져서 테르시오 방진의 총병이 정원의 60%에 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17세기 후반이 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다시 <주고받는 원칙>의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부싯돌 점화 총과 경량 화포의 대량 보급으로 인한 보병화력의 총체적 상승과 총기 발사속도의 고속화가 그 이유가 됩니다. 이번에는 <무기 요소>가 <주고받는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이지요. 과거의 기병은 이제 보병화력이 총체적으로 증가하면서 더이상 17세기 초중반처럼 보병 전열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없게 됩니다. 과거에는 테르시오 진법의 약점이 총병을 4방향으로 배치해서 전투시에는 총병 전체 정원의 1/4정도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신교도 측에서 화력의 효율적 사용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스웨덴에서 전체 총병을 2개 제대로 나누어 돌아가면서 일제 사격을 집중적으로 하는 일제 사격법(Salvo)가 정착되고, 경포가 등장하여 기병은 물론 보병들끼리의 전투에서도 빠르고 기동력있는 화력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더이상 과거처럼 돌아가면서 보병 전열에 총질을 하려고 해도 극심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부싯돌식 총의 보급은 이런 문제를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총기의 발사속도까지 빨라진 것이지요. 이럼으로써 기병은 결국 갑옷까지 다 벗고 경량화되어 정찰 및 패전한 적병의 추격 등의 용도로밖에 전용될 수 없었고, 창병은 17세기 후반 프랑스를 시작으로 결국 완전 폐지됩니다. 더불어 보병들간의 총격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두께가 깊고 연속사격이 쉬운 종대, 옆으로 넓은 횡대 전술 등이 개발되었고,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크고 무거웠던 머스켓 화승총은 이제 그럴 필요가 없으니 구경과 무게를 축소하여 쓰기 편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과거의 창 대신 총검이 지급되었죠. 경량화된 총기는 그만큼 발사속도가 빨라졌지만 사거리와 위력이 줄어들어, 보병들은 상대를 맞출 수 있는 거리인 50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고도 명중률이 높지 않았던 당시의 부싯돌 총은 일제 사격을 가해도 대부분이 머리 위로 날아가 손실률은 별로 높지 않았습니다. 영화 <패트리어트>등에서 보고 사람들이 바보짓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였으며, 무슨 짜고치는 고스돕마냥 둘이 똑같이 화려한 군복을 입고 똑같이 걸어와서 서로 총질해대는, 너무 짜고치는거 같아서 마치 신사도의 결투에 가까워 보이는 당시의 전투 방법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최선의 전투법이었으며, 서로간의 전투에서 무기의 성능, 화력의 극대화를 함께 추구하다보니 발생한 <주고받는 원칙>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립된 전투 방식은 명중률이 낮은 활강식 부싯돌 총이 사라지고 후장식 강선총이 주류를 이루어 총의 성능이 근본부터 변해버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계속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 무기를 쓰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죠. 중세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일본도를 연상하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중세 일본의 전투 방식은 말을 타고 활을 쏘아 적을 맞추는 전투 방식이었습니다. 창은 크게 쇠퇴하여 쓰이지 않았고 대신 나기나타라는 언월도 같은 무기가 많이 쓰였는데 그조차도 보조병들이 많이 쓰는 무기였습니다. 중세 일본에서 창기병 돌격이라는 것은 끝끝내 볼 수 없었는데, 여기에도 <주고받는 원칙>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말이 크기가 작아, 기병 돌격을 감행하기에는 부적합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일본은 봉건제라 소수의 엘리트 무사들이 전쟁을 독점했는데, 유럽과는 달리 이 말 때문에 창기병 돌격이라는 풍토가 발생하지 않은 하나의 원인이 되었고, 그러자니 활을 사용하여 적을 공격하는 풍토가 발달한 것입니다. 더불어 굳이 불리하게 근접하여 싸울 필요 없이 활로 쏘면 되지 않느냐는 인식이 자리잡았죠. 이게 자연히 묵언의 합의가 되어, 그런 것들이 바로 마치 짜고치는 고스돕마냥 비슷한 무장에 다같이 활로 나서서 쏘아 대는 전투 방식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고받는 원칙>라는 것은 전쟁에서 다양한 요소에 의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룰이며 상호간의 묵언의 합의로써 이루어지는 규칙입니다. 거대 전쟁뿐만이 아니라 검술 등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이는데, 중세 독일검술은 메서, 그로스메서, 롱소드 등 다양한 검을 사용하는 검술과 더불어, 서로 달라붙어 유술기를 거는 캄프링겐에 이르기까지 깊은 수준의 백병전 전투를 해설하고 있지만, 백병전의 비율이 줄어들고, 과거와 같이 검술에 크게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는 18세기에 이르면, 상대와 거리를 무조건 유지하고 서로 캄프링겐을 회피하는 등 하나의 룰 같은 것이 발생하지요. 이 경우 스몰소드는 베는 기능이 완전히 없는 하나의 대형 바늘에 가까우므로 공격을 위해서는 그 칼끝의 영향권 하에 상대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거리를 유지하려 드는 것과 더불어, 상대 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회피 경향 등과 합쳐서 하나의 <주고받는 원칙>를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가 언급한 <주고받는 원칙>이란 인간의 개인적인 싸움에서부터 대규모의 분쟁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요소에 의해 발생하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이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무형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고받는 원칙> 이라는 단어의 원작자는 http://blog.naver.com/macvpark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술을 하기도 하시지만 뛰어난 통찰력 또한 가지고 계셔서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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