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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를 부정적 허무주의 뉘앙스에서 본다면?
게시물ID : movie_42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rdi
추천 : 0
조회수 : 72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2/19 08:30:15
리암니슨이 맡은 오트웨이역은 아내를 투병생활로 잃고 삶의 목적이 사라졌고,  
부질없는 추억에 파묻혀 지내는 상처입은 영혼이란걸 영화 후반부까지 조명하는데, 
겉으로는 침착하게 외부의 위험요소로부터 직원들을 지키는 가드 역할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정작 자신이 지켜야 하는 아내를 잃은 "삶의 목적을 잃은 인간의 표상"이라 할 수 있음, 
영화에서는 은유적으로 시와 분위기등을 인용,사용하여 
" 삶은 삶 그자체에 존재,목적적 의미가 있다. " 라는걸 말하고 싶어 하는듯 함.

하지만 도입부의 음울한 분위기가 그렇듯 바닥으로 치닫은 감정은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르고
총을 들고 생을 마감하려함. 이때 리암니슨의 눈빛연기가 훌륭했음.
하지만 때마침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고  약간의 인간애와 약간의 직업정신에 의해서 마음을 고쳐먹음. 
< 아내를 잃어서 더이상 지킬게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늑대 울음소리로 타인이 고통과 희생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라는걸 상기시킴.>
어쩌면 개인의 감정보단 사회주의적 삶이란 관점으로 주인공을 다시 삶의 궤도선상에 올려놓음.

여하튼 첫번째 희생자가 죽고 리암니슨형은 삶의 목표는 삶 그자체에 있다는걸 서서히 느끼며 
숲에 대해서 집착하기 시작함, 숲으로만 가면 살 수 있다는 말로 동료를 만듬. 
(수목한계선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저의 조건을 상징하며 즉 삶의 경계선을 의미.)
하지만 결과론적으론 리암니슨이 동료를 데리고 향한 곳은 늑대소굴이였음.

여기서 한번더 뒤집어 본다면, 
한번 삶을 포기할 뻔한 주인공이 과연 
진정으로 삶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되찾았을까? 라는 늬앙스를 차마 떨칠 수 없음.
자살을 결심하다 잠시 접어두게 만든 '늑대'라는 자연순리적 상징에 대해서 문명에서 벗어나자
자연상태에서는 대적할 수 없는 자연의 진리를 서서히 느끼고, 자포자기한 심정이였을지도 모름. 
즉 동료들을 거의 다 잃은 순간부터 혹은 그이전 부터
진정으로 살아보고자 한게 아니라 자신이 택한 직업의 마지막 의무로서 생존자를 인도했을뿐이였을지도.
아버지가 지은 시를 지나치게 자주 되풀이 하는것도 그렇고, 
불안한 마음을 시를 낭송 함으로서 다잡아 보려 하는것도 잃어버린 신념에 대한 반증적 강조일지도 모름. 

즉 마지막 동료를 물에서 허무하게 잃은것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자연순리에 대한 강조이고
리암니슨은 애초에 자살을 포기한게 아니라, 잠시 보류 해두었을 뿐이며 
허공에 대고 신에게 존재를 내보이라며 소리치는것 또한 
신을 부정하며 자살을 암시하는게 아니였을까 함.

즉 리암니슨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지나치게 상처입어 삶의 목적을 잃고 
자연과 문명 경계선상에 부유하게 되고 자살을 잠시 보류했던 순간, 
극한의 환경에 접하게 되어서 그로인해 본능적으로 삶에 집착하나 
실은 무의식적으로 자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의 
허무주의적인 그런걸 표현한 캐릭터가 아니였을까.

내가 생각하는 결론은
리암니슨은 자살을 보류하고 있던차에 생에 집착하나
자연앞에 부질 없음을 깨닫고 순리에 순응하기 위해 !<하지만 마지막으로 신의 존재를 확인함>
자살을 결심함. 

마지막에 액션신을 담은건 리암니슨에 대한 매너리즘적 사고가 아니였을까라 생각해보며

말그대로 이 영화는 '더 그레이' 였음
다른 영화처럼 삶에 대해서 희망적이고 그런걸 담는게 아니라
삶의 목적을 잃은 인간이 사회주의적 굴레에 얽매여 굴러가다가 
자연에 내던져 졌을때 얼마나 자신을 파괴하는지를 조명했으면 좋았을뻔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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