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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17)
게시물ID : pony_232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6
조회수 : 47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1/01 06:16:05

(16)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2912&s_no=4296902&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271809

 

수연이와 혜진이가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수연이는 혜진이를 쫓았고 혜진이는 '학교에서 보자' 이러고서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본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개는 유감스럽게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서 짖었다.

 

"너 혜진이랑 어떻게 알아?"

 

그래서 나는 짜증을 냈다.

 

"오빠한테 너가 뭐냐.. 너가..."

 

뭔가 똑부러지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수연이와 있었던 일이 내심 캥겼기 때문이었다.

 

"어젠 왜 집에 안들어 온건데? 그리고 왜 수연이랑 아침부터 같이 있는데? 그리고 술냄새 나잖아!"

 

"음... 택배. 택배에서 쉬는 시간에 술 줘서 먹었어."

 

내가 생각해도 참 기가막힌 거짓말이었다. 그러자 수연이는 나를 미섬적게 쳐다보았다.

 

"그러면 혜진이랑은 왜 같이 있는 건데?"

 

그런데 이 질문에는 차마 좋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내 친구 여동생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연이는 '이 말을 누구보고 믿으라고?' 묻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난 쭈뼛대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내 초등학교 친구를 택배하다가 우연하게 만났는데 택배에서 같이 술 먹다가 이야기가 길어져서 걔네집까지 가게됐거든. 그런데 쟤가 여동생이라는 거 있지? 그래서 네 얘기도 듣고... 친해져서......"

 

"친해져?"

 

그 말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난 수연이와 이런 상황일 때, 어떻게 모면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피곤해서 난 잔다! 안녕!"

 

이러고서 마구 집으로 뛰었다. 뒤에서 "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문을 닫고 그대로 잠가버렸다. 이러면 수연이도 한동안 문 두드리다가 이내 포기하고 원래 가려던 곳으로 갈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레리티가 들어있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녀석은 이제 자동으로, 지퍼를 열고 가방에서 튀어나왔다.

 

"네 동생이니?"

 

저 망아지가 이제는 나의 가족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하네..

 

"응."

 

"나도 사실 동생이 하나 있어. 크면 저렇게 될지도 몰라. 흔히 격는 사춘기라고 생각하는데..."

 

저런 말을 들으면 왠지 반박하고 싶어졌다.

 

"난 사춘기가 저렇게까지 난폭하진 않았거든?!"

 

그러자 후후, 웃으며 '그럴 것 같네.' 이랬다. 그 말에는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웃는 것도 생기가 없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레리티가 주방으로 걸어가길래 나도 뒤따라 걸었다. 어제 일 때문일까? 걸음걸이가 왠지 힘 없게 느껴졌다. 마치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듯 했다.

레리티는 부엌에서 식탁 위에 있던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찾아내었다.

 

"커피 마실래? 타줄게."

 

"그.. 그래."

 

망아지가 깎아준 사과를 먹은 것도 어디에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커피까지 타준다고 한다. 맞다, 술 먹은 것도 있었지. 마님으로 빙의해서 날 갖고 논 것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엌 찬장을 마법으로 뒤져보더니 컵 두개와 스푼 하나를 꺼낸 뒤, 원두를 컵 속에 집어 넣었다.

 

"혹시 시럽은 있니?"

 

라고 묻길래 설탕을 꺼내서 내주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탕은 피부에 좋지 않아..."

 

이제는 저런 불평도 익숙해졌다.

 

"그냥 먹어.. 어차피 여기엔 네 피부 보여줄 수컷도 없잖아."

 

그러자 레리티는 경악했다.

 

"세상에... 어떻게 숙녀에게 그런 말을...!!"

 

얼굴 전체가 시뻘게질 정도로 말했다. 하지만 저 말에도 왠지 힘이 없어보였다. 이 집에 와서 하는 행동과 말들이 하나같이 모두 밥이라도 먹지 못한 모냥 힘이 부족했다.

난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만지지 말라는 듯 앞발로 손을 툭, 치고 흥, 하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리고 난 씁쓸하게 웃었다. 이것이 이 녀석의 매력이리라.

 

"물은 내가 끓일게."

 

이렇게 말하고 물이 담긴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놓고 불을 켜자 한쪽 눈만 치켜뜬 채, 이곳을 보고 있었다. 이런 모양의 가스레인지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녀석과 나는 식탁에 앉아서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녀석은 내 앞에 마주보고 있었다. 한 모금, 살짝 입만 축일 만큼만 마시고는 커피잔을 내려놓더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떤 그리운 것을 보고 있는듯 했다.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창문이 예쁘네..."

 

그래서 나도 무심코 창문을 보았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미닫이 창문이었다. 그나마 청소도 안한지 오래되어서 먼지로 얼룩이 져있었다. 그런데도 저런 것을 보고 예쁘다고 하다니.. 참 녀석의 생각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저 창문이 예뻐?"

 

"창문에 보이는 배경 말이야. 먹구름이 껴 있어."

 

그러고보니 날씨가 흐렸다. 아마도 비가 오려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택배 알바를 하려고 계획했었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나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쉴까 하고 생각했는데 녀석의 볼이 홍조를 띄고 있었다. 커피가 뜨거워서 몸이 달아올랐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시윤아.. 나... 오늘은 네 침대를 혼자 쓰면 안될까? 몸이 좀.. 좋지 않아."

 

어쩐지 오늘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술병이라도 걸린 거겠지.

 

"어, 그래."

 

내 대답을 듣더니 자신의 커피잔을 마법으로 집어 들었다. 하지만 싱크대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영 시원치않았다. 흔들거리며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불안했다. 무사히 싱크대 속에 넣기는 했지만 철컹,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너 괜찮냐?"

 

라고 물어보았지만 녀석은 의자에서 풀짝 뛰어내리더니 터덜터덜 내 방으로 가기 시작했다. 걷는 모습도 힘이 없어보였다. 지금까지 녀석의 행동을 봐서 아픈거구나라고 직감한 나는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야, 잠깐만."

 

이러고서 이마에 손을 데어보니, 나머지 손으로 내 열과 비교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불덩이었다. 열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머리카락이 나있는 부분의 갈기에서 땀이 송글송글 맫혀 있었다.

 

"너 열나."

 

그러자 레리티는 내 손을 자신의 앞발로 내린 뒤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조금만 자면... 나을 거야."

 

하고서 걸었는데 그만 픽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야!!!"

 

난 녀석을 잡고 흔들었다. 몸 전체가 불덩이었다. 녀석은 깨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하지? 병원에라도 가야하나? 간다면 동물병원인가? 만약 동물병원 갔는데 망아지에게 술먹였다고 그러면 동물학대로 잡혀가나? 이런 저런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상황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그래서 망설일 것도 없이 혜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나는 컬러링이 몇 초동안 흐르고 혜진이는 전화를 받았다.

 

"아, 오빠! 무슨.."

 

"레리티가 죽으려고해!"

 

혜진이는 내 다급한 말이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엥? 레리티가 왜 죽어요."

 

"야 빨리! 레리티가 아파! 어디로 가야해? 동물병원? 근데 이 근처 동물병원 있나? 나 미치겠다. 택시값도 없는데!!!"

 

그렇게 안절부절 하고 있을 때, 혜진이는 위로의 말보다는 행동으로써 직접 내 걱정을 덜어줄 방법을 아는 여자였다.

 

"아..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레리티 데리고 밖으로 나와 있어요."

 

참 멋진 여자였다.

 

서둘러 레리티를 가방 속에 넣고 집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부터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그래서 꽤 가까이 온줄 알았는데 그 소리는 점차 점점 더 커지더니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모터쇼 레이스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엔진음이 나오고 있었다. 그대로 내 근처에 오더니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오토바이를 경사지게 기울여서 옆으로 세웠다.

 

"타요!"

 

그러자 트렁크에서 뿅, 하고 랭보가 튀어나왔다. 사람도 아닌 것이 고양이 헬멧을 쓰고 있었다.

 

"야! 너 레리티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쟤는 저 말밖에 못하나보다.. 난 레리티를 랭보가 있는 트렁크 속에 쳐박아두고서 쓰고 있던 헬멧을 빼앗아 썼다. 랭보가 또 뭐라고 그러길래 그냥 트렁크를 닫자, 그것이 출발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혜진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붙은 가속도 때문에 나는 또 혜진이의 배를 끌어안듯 잡아야했다.

 

지금 달리고 있는 오토바이의 시속은 200km. 오토바이가 저 정도 시속으로 무언가를 들이박았다고 가정할 때, 과연 내가 쓰고 있는 헬멧이 효력이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지만 역시나 효력이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아프지 않게 저세상으로 가려면 헬멧이 필요 없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혜진이는 일부러 대로변을 피해 골목길로 질주했다. 종종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들을 아찔하게 피해갔다. 그리고 뒤에서 욕지검이 날아왔지만 엔진 소리때문에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생명의 위협과 저런 사람들의 욕지검 속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생각나는 것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레리티.. 레리티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제발, 동물병원에서 치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달리고 골목길을 벗어났다. 하늘에 뿌옇게 낀 먹구름에서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쏟아지듯 폭우가 내리쳤다. 가을비였던 것이다. 무척 차가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를 가린 먹구름 속이 빛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 홀로 촛불이 켜져 있는데 어두운 커튼으로 가려놓은 것 같았다. 그것을 보니 레리티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창문에 보이는 배경 말이야.. 먹구름이 껴있어.'

 

레리티는 아마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부분을 보고서 저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닐까?

 

대로변에 나와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오빠!!! 야!!! 대답해~~!!!"

 

거의 발악을 하듯 외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수연이었다. 녀석이 창문을 열고서 우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쳐다보았다. 마치 수연이의 지갑이라도 뺏어서 달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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