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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써본적이 있나요??
게시물ID : bestofbest_431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서
추천 : 270
조회수 : 20597회
댓글수 : 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0/11/26 01:08:38
원본글 작성시간 : 2010/11/25 15:27:08
때는 바야흐로 1994년 7월 8일..

상병 말호봉이던 저는 강원도 화천의 어느 gop에서 열심히 철책 근무를 서고 있었더랬습니다.

하루 전부터 철책너머의 대남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정채불명의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지만

그보다도 더욱 힘든건,,해발 760미터 고지에서의 30도 후반을 오르내리는 찌는듯한 더위.

더위 + 전투 모기와 싸우며 6시간의 근무를 서는 도중에 저의 귀를 번쩍 떠지게 한 소리는..

바로 대남방송에서 울려퍼지던 '김일성 사망소식'이었더랬죠.

그 당시만 해도 정신교육만 하면 항상 듣던 '김일성이 죽으면 80프로 이상 전쟁이 벌어진다' 소리.

네 그렇습니다.

하필이면 바로 망원경만 들면 북한군이 보이던 이곳 gop근무중에 김일성이 사망했고

그 소식을 들은 우리는 근무가 끝난뒤 막사로 들어가 바로 전 소대원이 모여서

부모님께 향할 유서를 썼었죠.

당시만 해도 전쟁 발발시 우리들의 최고 임무는,,

이곳 휴전선에서 최대 '5분'을 버티는것.

5분만 버틴다면 우리는 성공한것이고 그 이후엔 전원 사망크리..

유서와 함께 손톱,발톱,머리카락을 잘라 편지봉투에 넣고

우리는 전원 완전군장을 한 채로 각기 마주보며 최후의 인사를 한 후에 

각기 맡은 참호로 최후의 경계 근무를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누구 한명 도망갈 생각보다는

반드시 우리가 '5분'을 버텨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그때만큼은 나를 지독히도 갈궜던 고참,,고문관이었던 이등병 등을 떠나

모두가 한 마음으로 근무 투입을 하던 생각이 나는군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벌벌 떨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척 참호로 향할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5분을 버텨야 서울에 계시는 우리 부모님이 피난갈 시간을 벌수가 있고

내가 5분을 버텨야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이 이길수가 있다는

그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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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사망한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또한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길을 돌려 자대로 향했던 고 서정우 하사와

아직 제대로 군대에 적응도 못했을 이등병임에도 불구하고 적의 포격에 대응하기 위해

포를 향해 달려가던 고 문광욱 일병의 용기에..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절대 벌어져서는 안되는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혹여라도 발발한다면

내 사랑, 내 가족, 내 지인들을 지키기 위해 부대로 복귀하겠다는 수많은 오유의 현역, 예비역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우리 대한민국에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4대강도 좋고 경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국력'이 있어야 모든걸 지킬수 있다는걸 

저~ 위에계신분들께서도 좀 더 절실히 알아주시길 바라며

허접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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