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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뿌리부터 정리해서 올립니다.
게시물ID : humorbest_4315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밥한지53시간
추천 : 57
조회수 : 3886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1/19 23:47:11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1/19 21:13:37
제헌 국회 – 무소속 85, 독립촉성회 54, 한민당 29, 대동청년당 12, 민족청년당 6, 기타 12

 이승만의 지지층 : 한민당과 친일파
 이승만은 대통령 중심제 주장, 한민당은 내각책임제 주장
 이승만의 승리, 대통령 중심제 도입(한민당은 내각책임제를 양보한 뒤 각료 구성이 한민당 위주로 되는 것을 노렸으나 이승만의 배신)
 이승만과 국회의 극한 대립 – 강도 높은 친일파 처벌법 제정 (이승만의 반대, 친일파의 매수 협박으로 유명무실화) = 친일파 생존
 한민당과 우익 성향 중에서 비판적인 세력 규합하여 민주국민당 결성 – 내각제로 개헌 시도
 이에 대항하여 이승만은 윤치열을 앞세워 대한국민당 결성 – 제헌 저지

총선 – 이승만지지 57(국민당 25), 민국당 23, 무소속 126

 이승만의 정치적 모략과 여건상 재선율이 매우 낮았음
 친일파 피선거권 제한 철폐로 인한 대서 의회 진출
 이승만이 야당을 분산 시키기 위해 공화구락부를 포섭하여 공화민정회를 만드나 많은 의원이 다시 탈당하여 민우회를 결성 ( 여 : 공화민정회 58, 야 : 민국당 39, 민우회(중립성향) 35, 무소속 16) - 대한국민당은 친여 성향의 정당으로 유지, 규모는 매우 작아짐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기 위해 이승만이 신당 창당
 - 자유당 창당. 그러나 창당 과정에서 원내자유당, 원외자유당으로 갈라짐.
 계속되는 이승만의 독재, 국회 경시, 군부와 경찰 동원 선거 등등
 이승만 재선 72% 득표
 이승만의 자유당내 족청파 제거 – 당권 완벽 장악, 정치가 이승만

 총선 – 자유당(원외) 114, 민국당 15, 국민당 3, 국민회 3, 제헌동지회 1, 무소속 67

 민국당이 교섭단체 유지를 위해 31명 규합, 무소속동지회 결성
 선거법을 악용한 협박으로 이승만은 자유당 세력을 팽창시킴
 원내 자유당은 장면과 장택상의 탈당으로 유야무야됨
 사사오입 개헌
 개헌에 대한 반발로 민국당, 무소속 동지회, 무소속이 모여 민주당 창설
 민주당 : 보수파(자유민주파)(구파) - 신익희, 고병옥, 곽상훈 – 한민당 뿌리
         혁신파(민주대동파)(신파) - 조봉암, 장택상, 이범석 – 자유당탈당파
 민주당의 창설을 구파가 주도
 신파 – 조봉암 – 진보당
      - 이범석, 장택상, 배은희 – 공화당 – 이범석과 장택상의 반목 (부통령자리)으로 와해
 계속되는 독재 ☛ 민심이반 ☛ 야도여촌현상 ☛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 당선 유력
 신익희 호남선 열차에서 심장마비 급사
 이승만 대통령 당선
 조봉암 처형 (평화적 조국 통일을 당 강령에 넣어 국보번 위반)
 계속되는 독재 (노골적인 국회 억압, 선거방해, 관권동원선거 등등)
 조병옥 급사 (유력한 대통령 후보)
 
3. 15 부정선거

4. 19 혁명

 윤보선(민주당 구파) 대통령, 장면(민주당 신파) 총리 – 내각제 개헌으로 장면이 실권, 국회간접선거. 그러나 자유당 못지않은 보수 성향으로 개혁을 이루지 못함.

5. 16 군사정변

 윤보선 나쁜놈(유엔군 개입을 허락만 하면 군사 정변 저지 가능했으나 하지 않음)
 박정희 독재 , 국회 역할 유명무실
 대한국민당, 자유당을 흡수하여 민주공화당 창당
 대통령제 복귀
 박정희 재선 성공
 10월 유신 – 대통령 임기 6년, 연임가능, 직선제 ☛ 간선제
 전태일 분신, YH사건(김영삼 부각), 부마사태에 대한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 ☛ 온건파 김재규가 강경파 차지철에게 권력 암투에 밀림

10. 26 사태
 
 보안사령관 전두환 부각

12. 12 사건

 신군부 – 국회 해산 , 민주공화당 해체, 정치 활동 규제 조치로 3김을 비롯한 500여명의 유력 정치인 퇴출 – 독재
 신군분의 정치 참여를 위해 민주정의당 (민정당) 창당 – 민주공화당 세력 흡수
 계속되는 독재, 전두환 퇴진에 대한 투쟁
 6월 민주 항쟁 – 노태우 6.29 선언, 직선제로 개헌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노태우가 역대 최소 득표율로 당선(36%)

13대 총선 – 민정당(노태우) 125, 평민당(김대중) 70, 민주당(김영삼) 59, 신민주공화당(김종필) 35

3당 합당 – 민정당의 과반수 확보 실패, 통일민주당(김영삼), 신민주공화당(김종필)과 합당하여             자유민주당 창당, 총재 노태우
           노태우는 최초 김대중과 합당 시도 (호남의 절대적지지) ☛ 김대중 거절
           김영삼 – 김대중에 대한 경쟁심, 대권 욕심
           노무현, 홍사덕, 김정길 등 8명 합당 반대하며 탈당

 노태우 탈당 - 민자당 대선 후보인 김영삼과 노태우 사돈인 SK의 이동통신사업권 허가문제, 관권선거의혹에 대한 개각 요구로 인해 충돌
 김종필 탈당 – 계파 갈등으로 김영삼과 충돌
 지방선거 참패 – 군사 정부의 색을 지우기 위한 쇄신 필요

신한국당 창당 –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세력 축소, 이회창,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맹형규 영입 – 각계 스타급 인사들, 총선 승리,
 이인제 탈당 –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에게 패한뒤에도 30%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자 국민신당 창당, 대선 출마
 두 개의 계열로 나눠짐
 - 한민당 ☛ 민국당 ☛ 민주당 구파 ☛ 통일민주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대한국민당 ☛ 자유당 ☛ 민주공화당 ☛ 민자당 ☛ 신한국당 
 공화당계열(김종필)은 탈당 하여 자민련 구성
 
김대중은 새정치국민회의

한나라당 창당

 김영삼의 신자유주의 도입, IMF 사태. 민심이반. 쇄신의 필요성 
 대선 한 달전, 신한국당(이회창)과 민주당(조순)이 3김시대 청산, DJP연합을 부정하며 통합, 후보 단일화. 같은날 김영삼 탈당.
 김대중 당선 – DJP연합, 이인제 출마. 
 이회창 두 번째 낙선 – 개혁파 성향 열린우리당으로 이동
 자민련 흡수 – 탄핵 역풍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
 이명박 당선
 공천 파동으로 친박성향 의원들 탈당 – 대부분 다시 복귀
 충청권 지방 탈당 – 자유선진당(이회창, 심대평)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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