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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글] 그림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그리느냐도 중요함
게시물ID : art_68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머피
추천 : 17
조회수 : 127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1/02 09:31:23


bgm : The Rolling stones -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디시인사이드 - 미국애니갤러리  MojoT님의 글






난 대학 들어가니

학과 동급생이 대부분 미술학원 강사 출신, 프로 원화가, 동화 작가, 예술고 우등생 투성이 였다.

그에 비해 난 매직펜으로 파워퍼프 걸이나 깨작대는 x도 아닌 놈이었지.

수업시간에 미나스티리스를 그려내고 점심시간에 몰리에르 석고소묘 석고상 안보고 그리기 시합같은 걸 하는 미x 놈들이 있던 곳에서

나는 멘탈 유지하기에도 벅찼다.

그런 애들도 정작 학년 작품, 졸작때 무얼 그려야할지 무슨 이야기를 그려내야 할지 몰라 고생고생 하는 거 보고 인간미를 느끼며

한편으론 자신감도 갖게 되었지.

그 괴물같은 애들, 컨셉 아트 같은거 보면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어지간한 상업 스튜디오 못지 않지. 실제로 그런 컨셉 아트 만으로도

픽업되는 애들도 꽤 있었고.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거 보면 중2병 사회 비판 물이나 티비에서 보는 어린이 동화 수준도 안되는게

태반이야. 그리고 싶은거 그렸다기 보단, 뭔가 있어보이려고 억지로 끄집어 낸 것들이 대부분이었어. 잘 그리면 뭐해 중 2병인데.

교수 평가도 좋지 못했지. 차라리, 아예 이야기는 버리고 컨셉 자체를 액션 일변도나 기술 시연에 중점을 둔 애들쪽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지.

그 솔직함, 이야기는 없어도 적어도 무엇을 추구하냐는 명확해 보였으니까. 나는 그림은 스틱맨 수준 이었지만 평가는 그 중2병 애들 보단 좋았어.

물론 내 스스로는 아쉬움이 많았지. 내가 더 잘 그렸더라면, 그 애들의 반만큼이라도 그렸다면 훨씬 더 좋았을 걸 이라고.
(그림도 쩔어주고 이야기 구성도 죽여주는 먼치킨도 있긴 있음 그런 애들은 뭐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것만으로도 내가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머)


그래. 분명 잘 그리는 '기술'은 중요해. 이게 첫번째야. 기술이 없으면 그리고 싶은 걸 제대로 그릴 수 없고 내용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어.

하지만, 그리고 싶은게 없으면 아무리 잘 그려도 소용없다.


그 정도의 '잘 그리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발에 채이는게 그림 잘그리는 사람이란 말이다.

당장에 동네 편의점 알바생이나 과일 나르는 아저씨,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아줌마 중에도 그림 기차게 그리는 사람 있어.

언젠가 대본소 만화가 작업실에 아는 형 만나러 갔을때가 생각나는군. 한 아줌마가 들어오더니 오늘은 배경 몇장 그리냐고 물어보고

작업 할당 받으니까 수다 떨면서 쓱쓱 그리는데 씨x 무슨 인간 복사기도 아니고 정교한 그림이 촤라라락 나오는데 데꿀멍했던 기억이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제작자 중에 작화가 출신이 얼마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펜들턴 워드가 그림 잘그려서 어드벤쳐 타임 히트 쳤나?

로렌 파우스트가 코믹스 작가보다 잘그려서 포니 만들어 내서 히트쳤나? 죠넨 바스케즈 만큼의 작화실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들은 왜 죠넨 바스케즈 만큼의 인지도가 없나? 조석이나 주호민, 강풀이 그림 잘그려서 히트쳤나?

결국은, 그려내고 싶은게 명확한게 중요해. 그리고 싶은게 없으면, 기술 연마하는 것도 그저 괴로울 뿐이야.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 모두

그것이 명확했기에 흔해빠진 그림러 사이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물론 이들처럼 그리고 싶은거 그렸는데 명성을 얻는 건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림 그리는 거 자체는 '스킬'이야.

스킬이란건 하면 할 수록, 그리면 그릴 수록 늘게 되어있어. 이게 기본이지. 일단 그림은, 닥1치고 그리고 봐야해.


그와 동시에,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도 생각해봐야지. 그림 그리는 거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야.

숙련된 만화가 일 수록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뭐 그리나 무슨 이야기 하나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해.

그래서 무엇을 그릴까를 위해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취재를 하고, 사회 생활을 하는 거야.

때문에 좋은 그림러나 이야기꾼은, 인생이나 됨됨이도 존경할만한 사람인 경우가 많지.

그 사람의 인생이나 철학이 담긴 그림 혹은 이야기는 늘 좋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야.

그건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리느냐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

결국 중요한건, "어떻게" 그리나가 아닌, "무엇을" 그리나니까.
(더 심화하면 그 무엇을 "어떻게" 그리느냐도 중요해지지만 이건 계속 물고 물리는 거니까 패스)


자기만의 그리고 싶은게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그려도, 자기보다 실력이 뛰어나도 멘탈엔 전혀 영향이 없어.

그런게 자존감이기도 하고. "어 너 잘그리네? 대단하다 씨x. 그건 그렇고 내가 그린 것 좀 봐봐." 정도로 끝낼 수 있다고.

물론 상업 그림러로써의 가치나 돈벌이는 또 다른 얘기지만, 적어도 그림을 그린다면 최소한의 자존감은 갖고 있어야지.


아, 언제나 또 강조하는 말이지만, "기본은 그릴 수 있어야 함."


짤은 8살에 그림으로 몇 억 벌어들인 키론 윌리암스. 쟤 보고 멘붕하고 그림 때려치던가. 아니면 닥1치고 자기 그림 그리던가.





2013-01-02 03:54:09


디시인사이드 - 미국애니갤러리  MojoT님의 글







좋은글이라 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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