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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핥기 로마사(8)-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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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악진
추천 : 7
조회수 : 3915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05/08 07:34:36
아우구스투스의 대리석 조각상. 맨발인 것은 신성을 상징한다. 오른발 발치에 있는 것은 돌고래 위에 올라타 있는 큐피트인데, 이는 베누스(Venus비너스. 아프로디테)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1. 젊고 영민한 후계자 헬레니즘 문명은 대체로 '절대군주'의 존재에 부정적인 편이다. 그 알렉산더조차도 절대적 권한을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특출한 능력을 가진 한 인물이 로마제국의 초대황제가 되었는데,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이다. 18세에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인맥은 물론 어마어마한 재산, 충성을 바치는 군대를 물려 받았다. 2. 안토니우스와의 내전 카이사르의 오른팔이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손을 잡고 카이사르 암살공모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해나갔다. 안토니우스가 동방원정에서 실패하고 카이사르의 부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와 결혼을 한 것은 오히려 옥타비아누스에게는 기회였다. bc31년 악티움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파멸했다. 이집트 역시 300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한편,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난 카이사르의 친아들 카이사리온 역시 옥타비아누스에게 제거되었다. 3. 옥타비아누스에서 아우구스투스로 이집트가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 마침내 오랜 내전이 끝이 났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로 돌아와 집정관이 되었다. 그는 공화정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제정을 시작했다. 물론 로마시민들이 독재와 왕정에는 극력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서두르지 않고, 겉으로는 공화정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카이사르가 걸어간 길을 쫓아 독재권력을 재확립했던 것이다. 그는 국경지대에서 군사령관을 지냈기 때문에 '임페라토르'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는 최고사령관을 뜻하는 말로서, emperor황제라는 명칭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의 집정관직은 해마다 연장되었고 bc27년에는 원로원으로부터 '존엄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칭을 받았다. 다만 당대에는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이나 프린켑스(제1시민)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렸다. 사실 프린켑스는 과거에도 스키피오와 폼페이우스가 받은 적이 있지만, 더 이상 정치적 라이벌이 없는 상황에서 이 명칭을 받은 것은 원로원으로부터 황제 즉위를 인정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해석된다. 집정관직 연임이 길어지자 독재자라 아니라는 의미에서 집정관을 그만두고는 2명의 집정관을 감독하는 원수(!)가 되었다. 대신관이 죽은 후에는 대신관직까지 겸직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기 업적을 홍보하는 데에도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 죽은 후에는 신으로 추앙되어 더더욱 많은 조각이 만들어졌다. 짤방은 신관 의상을 입고 있는 아우구스투스. 4. 자비로운 황제 그는 너그러운 전제정치를 펼쳤다. 행정과 군대를 정비했고, 고대 로마의 전통축제를 부활시킴으로써 민중의 단합을 꾀했다. 정부의 도덕성 회복에도 힘을 써서, 마치 공화정의 이상과 도덕적 가치들이 현실에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스스로도 금욕적인 생활을 실천했으며, 그의 시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축물이나 기념물들이 증명하듯이 평화를 정착시켰다. 파르티아의 위협을 물리력과 외교력을 동원하여 효과적으로 막은 반면, 게르만족에 대해서는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경계로 국경을 그어야 했다. 자비를 털어서 제국 전역에 도로를 건설하였고 역참제도를 두었으며, 로마시에는 경찰청과 소방청을 창설했다. 거금을 기부해서 퇴역군인연금을 만들었고, 경호명목으로 '근위대'를 창설한 것이 실질적으로는 원로원에 대한 좋은 협박이 되었다. 세제에도 개혁을 하여, 속주에서 거두던 특별세를 폐지하였고 불시에 임의로 걷던 세금을 고정세율의 직접세제로 개혁하였다. 이것이 좋은 평가를 받아 세입은 오히려 늘어났다. bc14년에 사망한 후에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신격화되었다. 그는 죽기 전 "나는 진흙으로 된 로마를 물려받아 대리석으로 된 로마를 물려준다"는 자신감 찬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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