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점심시간. 박근혜대통령은 10대 기업 총수들을 모아놓고, 밥을 먹이며 달래기에 나섰다. 상법개정안의 도입에 대해 속도조절을 할테니, 투자와 고용을 확대해달라는 거다.
도대체 상법개정안이 뭐길래?
감사위원 분리선출. 지금처럼 감사위원의 선임을 이사회에 맡기지 말고, 주주총회가 직접 하자는 것이다.
3%룰.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한 주주의 의결권 상한을 3%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집중투표제. 대주주가 모든 이사를 선임하는 지금의 제도에서 벗어나서, 가지고 있는 지분만큼만, 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집행임원제. 감독 기능을 하는 이사회와 별도로 업무 집행만 전담하는 임원을 두는 제도다.
한마디로 권한이 대주주에게 편향되었던 지금의 시스템을 극복하고, 주주총회에서 각자가 가진 주식의 수만큼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의 요지다.
이 법이 입법예고되자, 재계는 들썩였다. 한국경제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 법은 “좌익적 논리”와 “엽기적인 내용”라는 표현을 동원하며 이 법을 비난했다. 어떻게든 대주주를 차별하고 손발을 묶겠다는 선동과 증오를 입법화한 거랜다.
지배주주 한 사람이 경영권을 남용해서 부정을 일으키는 것을 감시하는 감사위원의 역할에 비추어볼 때, 감사위원의 선임에 대해 대주주의 간섭을 제한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배려가 오래되면, 권리인줄 안다고 했던가? 소액주주에 대한 차별을 지금처럼 고착화하지 않으면, 대주주에 대한 차별이라는 논리는 도대체 어떻게 성립할까?
외국의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침탈하기 위해 몰려올거란다. 경영권을 감시하는 제도를 만들면, 그 감시당할 경영권을 침탈하러 외국자본이 몰려온다는 건가? 몰려오면 좀 어떤가? 우리나라의 토종대주주들은 소액주주의 감시를 받으면 모두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런 상황이라면, 경영권이 좀 침탈 당하면 어떤가?
결론적으로 국부가 유출될 거란다. 아니, 외국자본이 몰려온다는데 왜 국부가 유출되나? 어떤 대주주들은 경영권을 가지고 취할 수 있는 자신들의 부당한 이익을 국가의 부로 착각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박근혜대통령은 10대기업인들에게 투자를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며, 상법개정안 도입에 대한 속도조절을 약속했다. 상법개정안 도입을 늦추면,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할 거라고 여기는 발상이나, 상법개정안을 도입하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거라는 발상이 겨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자본과 경영의 분리는 주식회사제도의 요체다. 그것을 모르고 대주주권한을 남용해서 수많은 소액주주들의 돈을 자기 쌈짓돈처럼 사용해온 재벌들에게 상법개정안은 분명히 달갑지 않은 존재일 게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확대는 상법개정안의 도입시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을 대통령만 모른다.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채 하는 거든가.
상법개정안이 도입이 되든, 되지 않든, 이익이 예상되면 투자를 하고, 이익이 예상되지 않으면 투자를 하는 것이 기업인이다. 그 진리를 모르는 기업인이나 대통령이 있다면, 진즉에 퇴출되는게 우리나라 경제나 고용시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