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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을 다녀왔습니다.
게시물ID : animal_317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르스
추천 : 15
조회수 : 48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1/05 07:53:17

어제 아침 뒷산을 다녀왔다.

밤늦게 편의점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작은 고양이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동정심을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한 달 전 죽은 내 고양이가 생각나 편의점으로 돌아가 통조림을 사 뜯어주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려 나와서 어제 본 고양이가 기억나 조금 돌아가서는 통조림을 옆에 두고 가만히 있는 그 고양이를 보았다.

움직이지 않았고 걱정되어 손을 뻗었지만 다 크지도 않은 고양이는 내 손보다 차갑게. 차갑게 가만히 있었다.

어제 간 편의점으로 돌아가 쓰레기봉투와 신문지를 사곤 반쯤은 얼어붙어 있는 고양이를 감싸고 봉투 안에 넣었다.

그리고 산을 올랐다. 마음속으로 미안하다는 생각과 어제 내가 먹을 것을 두지 않았다면, 가방 속 이 고양이는 평소 길에서 자신이 밤을 보내던 곳에 가 오늘도 쓰레기통을 뒤지며, 그래도 살아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길고양이에게 관심을 주면 안 되었다. 보살피지 못할 거면 편의점을 나와 쓰레기와 같이 있는 그 고양이를 나와 눈이 마주치고 가스관 뒤로 숨던 그 고양이에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올라가는 길, 관리소를 들러 산불방지용으로 있는 붉은 삽을 빌렸다. 두껍게 입은 옷 사이로 장갑을 끼고 있는 손으로 냉기가 파고들었다.

이 추위 속에서 내가 던지듯 놓아둔 통조림 때문에, 점점 얼어가는 통조림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했을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산을 올랐다.

등산로를 벗어나 얼어있는 땅을 십 분간 파 내려가며 옆에 둔 가방 속의 고양이가 아닌 한 달 전 죽은 내 새끼가 생각났다. 치즈도 화장시키지 말고 내 손으로 묻어주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고양이가 들어있는 봉투를 열어서 약국에 서산 솜으로 감싸 무릎 깊이까지 파놓은 구덩이에 넣고 손으로 흙을 덮었다.

손마디가 굳어가는 느낌이 새삼스러웠다. 온몸이 얼어붙어 차가운 바닥에 있었을 내 발아래 고양이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끼려 해보았다.

나는 그 느낌을 알 수 없었고. 삽을 돌려드리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그리고는 하루 동안 잊고 있었다.

조금 전에 악몽을 꾸고는 일어났다. 집에 올라가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는 서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꼬마가 나를 보고 있었고 '오래 기다렸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 아이가 사라진 자리에 놓인 칼을 들어서 나를 찌르고는 엘리베이터에 타서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느끼고 있는데 차가운 내 손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는 어제 묻었던 고양이가 생각나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다시는 길에 보인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할 거라면, 데리고 들어올 수 없다면, 그냥 가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이름도 없었을 아이가 생각나서 나는 지금 슬프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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