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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가서 닭만 튀기다 온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41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26
조회수 : 4628회
댓글수 : 59개
등록시간 : 2015/03/18 12:42:22
나는 군대시절 반찬을 주로 조리하던 취사병이었다. 내가 직접 삽으로 조리한 반찬들을 맛 본 전우들은 "음식 솜씨 더럽게 없던 엄마"의 그리운 손맛이라며 향수병에 걸리고는 했었다. "5X 사단의 고든 램지"로 불리며 요리 솜씨를 뽐 낸 나였지만, (내가 전역한 이후 전우들의 평균 체중이 크게 상승하여, 전투력이 증강되었다는 후문이 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다.) 막상 제대하니 집에서 라면 끓일 때 빼고는 나의 재주를 선보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 생신날 효심을 발휘해 미역국을 끓여 드렸는데, 아버지께서는 "너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30년 동안 미각을 포기하고 살았는데, 이제 아들 덕분에 미각을 잃게 되었구나 허허허" 하시며 내가 끓인 미역국에 감탄과 동시에 단호하게 숟가락을 내려 놓으셨다.
 
드디어 여자친구가 생기겠지 하는 헛된 꿈을 안고 복학한 후, 첫 연합MT 사전 조별모임에서  밝히고 싶지 않던 "군셰프"였다는 사실을 함께 간 동기가 조원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 조원들의 눈빛은 MT때 다른조는 맛볼 수 없는 제대로 된 짬밥을 먹겠구나 하는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조장을 맡은 여자후배가 물었다. "선배 어떤 음식이 가장 자신있으세요? 우리 조는 그걸로 준비하죠!"
나는 "주방의 지배자, 주방의 화신"이 빙의 된 요리왕 비룡이나 지을수 있는 미소를 지으며, "뭐.. 그럼 간단하게 닭이나 튀겨 볼까?" 라고 했다.
여자후배들의 나를 바라보는 기대에 찬 반짝반짝 눈빛을 보며, 나도 요리하는 멋진 선배로 각인시킨 뒤 여자친구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찬 생각을 했다.
 
MT 가기 전날부터 느꼈는데 나의 그릇된 허세가 큰 실수로 이어지고 있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MT 전날 잠 약 10인이 먹을 닭 7마리를 손질하고 튀김 재료를 준비하면서 "그래도 우리 이쁜 후배들과 빌어먹을 동기들이 쳐먹을 건데 맛있게 해야지" 생각했다. 드디어 MT 당일 군대시절의 커다란 곰솥을 기대했던 나에게 큰 솥을 가져오겠다고 한 후배가 가져온 것은 작은 자취방에 어울리는 압력밥솥 하나 였다. 하지만 진정한 쉐프는 재료와 환경을 탓하지 않는 법! 나는 예수님이 피와 살로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셨던 살신성인의 자세로 닭을 튀겼다.
선후배들이 서로 인사하는 오붓한 만남의 장이 벌어질 때도, 내가 그렇게도 하고 싶던 여자후배들과의 짝축구를 할 때도 나는 한쪽 구석에서 닭만 튀겼다.  어느정도 준비된 닭을 다 튀겼다고 생각할 때 즈음 교수님 무리가 냄새를 맡고 오시더니 내 소중한 닭튀김을 먹기 시작했다.(니들.. 아니 교수님들 드시라고 준비한게 아닌데...) 교수중 한 분은 요리왕 비룡에서 시식한 뒤 "오오오오"하는 그 뚱땡이처럼 감탄하며 드시기도 했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무시하고 참 많이도 드셨다. 역시 치느님 앞에서는 만민평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인가....
그 중 지도 교수님이 "자네 어디서 이렇게 닭을 맛있게 튀기는 걸 배웠나?" 하시면서 "그런데 우리가 거의 다 먹어서 어떻하지. 내가 마트가서 닭을 더 사올테니 자네가 더 튀길 수 있겠는가?" 하셨다. 나는 닭과 함께 그 교수님도 튀겨버리고 싶었지만 원활한 캠퍼스 생활을 위해 을의 입장였던 나는 슈퍼 갑인 교수님께 "그럼요 닭만 있으면 더 튀길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너도 튀겨버리고 싶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에게 돌아온 건 닭 15마리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닭이 시골 마트에 15마리밖에 없었다는 것과 센스있는 교수님이 닭의 사지를 절단하고 오시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다음날 까지 닭을 튀기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15마리의 닭을 다 튀기고 나서야 나는 학우들의 무리에 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선배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라며 후배들이 하나 둘 씩 내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 몸에는 닭냄새 + 기름냄새가
생존을 위해 발사한 스컹크의 방귀냄새처럼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간 닭들의 저주를 받은 나는 동기 하나와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닭을 먹지 않을꺼야!" 하면서 분노의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기름냄새 닭냄새를 풍기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복학 후 첫 MT는 끝이 났다.
 
 
하지만 반전은...
 
훗날 닭 15마리를 사오신 교수님의 추천으로 모 프랜차이즈 회사 홍보팀에 취직하게 되었다. 업무는 신규매장 지원과 교육인데.... 주 업무는 닭 튀기는 법 전수 였다. 하루 평균 닭 200마리는 튀겼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교수님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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