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욱 달린 댓글들을 보는데...
내가 저 댓글을 보고 충격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건 마지막 줄의 "작성자 막내니?" 라는 글이었다. 심지어 랜선까기인형님이 남긴 댓글에 묘사된 3형제의 외모도 흡사했다. 흔하지도 않은 글로벌한 외모의 3형제.. 딱 우리집 이야기였다. 덜덜덜...
큰형은 항상 나와 통화할 때 "여보세요" 라고 하기보다 버터를 참기름에 비빈 듯한 느끼한 목소리로 "막내니?" 라고 전화를 받는데 댓글을 보는 순간 딱 그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오유에서 형제상봉의 기쁨보다 형을 디스한 글과 예전 형과 형수님을 커플로 디스했던 글들을 남긴 전적이 있어 이제 대머리 독수리에게
쪼아 죽는 메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형은 나를 메기라 부르고, 나는 큰 형을 대머리 독수리라고 부른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마라 키보드보다 전화는 빠르니까.. 나는 약간 당황한 댓글을 하나 남긴 뒤 바로 큰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이 전화를 안받는다. 심지어 형수님도 안받으신다. 왠지 랜선까기인형님이 대머리독수리 아니 인자하고 항상 막내를 끔찍히도 아끼는 마음에
동생이 반항하거나 방황할 때 구타로 참교육을 가끔 실행하는 큰형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이 오유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작은형은 눈팅으로 하고 있다.
우리 3형제를 완벽하게 컨트롤하시고 계시는 시골에 계신 박** 여사님께 전화를 걸어 큰 형의 최근 동향을 파악했다. 박** 여사님은 "이 자식이
술쳐먹었나 왜 이시간에 전화야" 하시면서 그냥 씻고 자라고 하셨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9시 뉴스 시보가 알리기 전에 잠드셔서 새벽 4~5시경에 기상하시는 전형적인 새벽형 인간이셔서 10시 이후에 전화를 하면 "감히 나의 숙면을 방해해"라며 분노하신다.
결국 전화통화를 통한 형제간의 다정한 대화의 장은 마련되지 않았고, 나는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일단 숙면을 취하자는 될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에 잠을 취했다.
아침에 확인한 댓글에 랜선까기인형님은 우리 형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의 만행을 형이 모른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버섯... 버섯이라.. 우리 집은
고추농사를 짓는데... 버섯... 고추.. 왠지 둘이 합체하면 뭔가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1차산업 생산물들의 조화다. 다음에 랜선까기인형님에게 고추와 버섯 물물교환을 제안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우리집에서 생산하는 고추는 단단하고 아주 실하다. 그리고 매콤하다.
조금 전 형이 전화를 했다. "막내야 어제 밤에 왜 전화했니? 무슨 일 있어?" 여전히 형의 목소리는 내게 느끼했다.
아침부터 참기름에 밥말아 먹는 느낌이었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뭐.. 그냥 형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지. 형수님이랑 애들은 잘 지내지?"
형은 "우리 막내 철들었네 형한테 안부전화도 하고, 오늘 저녁에 약속 없으면 술이라도 한 잔 하자."
나는 "어.. 그래 내가 퇴근하고 형 회사 근처로 갈께. 오랜만에 한 잔해"
그렇게 우리 형제는 랜선까기인형님 덕분에 훈훈한 형제의 정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