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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까운 여자 (긴글주의)
게시물ID : humorstory_4343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on,
추천 : 2
조회수 : 146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3/25 10:38:11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여자는 전공분야에 취업하기가 어렵고 별도로 취업준비를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 

고용하는 곳이 여자를 원하지 않으니 여자는 그냥 포기시켜버리는 교수나 학교 측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왜 여자는 일터를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우리나라 여성들의 취업구조를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경제발전과 함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인구는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그런데 직종별로 보면 여성들은 사무직, 판매직, 서비스직에 몰려 있다. 

이런 분야에서만 여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 사무직이라 할 지라도 그 내용을 따져보면 

말단 사원으로 사무실 안에서 다른 사무직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 사업체를 차렸다. 

개업잔치를 한다기에 갔다가 이런저런 말끝에 직원 얘기가 나왔다.

  

  "사무실 아가씨 하나 둬야지?"

  "글쎄 말야.  마땅한 사람 있으면 좀 찾아봐줘."

  "아는 사람이야 많지만 어떤 사람을 원하시는지..."

  "뻔하죠, 뭐. 사무실 좀 지키면서 이런저런 잔심부름하고 관공서나 은행에 출입하고..."

  

학력은 고졸이 좋겠고, 부지런하고 싹싹하면 좋겠으며, 

아무래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하니 '용모도 단정' 해야 겠다는 주문이 보태졌다.


사무실 아가씨!

우리 사회가 여성 인력을 필요로 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일꾼이 아니라 '아가씨'이다. 

그 일의 내용은 공적인 전문분야가 아니라 집안의 가정주부의 일에 가깝다. 

따라서 웬만한 여자는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굳이 대졸 여성을 써서 학력에 따라 임금을 더 줄 필요가 없다.

여고 졸업자들은 어리기 때문에 집에서 여동생이나 딸을 심부름시키듯이, 

다른 직원들이 일을 시키기에 부담이 없다.


이처럼 여자에 대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분야는 보조적인 자리로 굳어 있기 때문에 

대졸 여성은 직업을 구하기가 더 어렵다.

  

여자의 경우 취업 조건에서 용모가 빠지지 않는 것도, 

여자들의 일에서는 개인의 능력 차이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는 데서 비롯된다.  

'이왕이면 예쁜 여자가 낫다.'고 하는 속에는 '여자가 다 비슷하다.' 는 전제가 들어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구직난이 심각해짐에 따라 '용모단정'이 여성 인력을 고르는 한 기준으로 버젓이 자리잡았다.


'용모단정' 뿐이랴. 물론 나이에 관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회사나 노조 같은 곳에서 초청하여 강연을 가면 젊은 여자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나이를 물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안 하는 것이다.


"몇 살인데요? 같은 여자끼리 뭘 그래요?"

"저요, 나이 많아요."

"많으면 나보다 많을까요? 저는 서른이 넘었는데, 나보다야 적을 것 아닙니까?"

"여섯이요."

"26살이요? 그게 뭐 많아? 한참 좋을 때인데. (내 눈에는 그렇다)"

"아뇨.  우리 사무실에서는 최고령이에요. 교환실 언니만 빼고."


객관적으로 젊은 나이인데 좁은 직장 안에서 이들은 자칭 타칭 '할미꽃'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앞에 스물 자를 떼고 뒷 나이만 말하는 것도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외길 인생으로 몇십 년 일 한 것이 자랑이 되건만 

여자들은 그 젊은 나이에도 스스로 너무 오래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가르친 학생이 자기 언니에 대해 이런 글을 써냈다.

  "우리 언니는 6년이나 같은 곳에서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늙은 여우'라는 소리도 많이 듣고 

시집 안 가느냐는 비꼼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 언니는 왜 '늙은 여우'가 되었을까. 그 '언니'처럼 직장생활 6년 여성의 말을 들어보자.

  "남자 직원의 경우는  OO씨, 또는 주임이라는 호칭을 붙여 김 주임, 이 주임으로 부르면서도, 

여자 직원에게는 무조건 김 양, 이 양이다.

잘 불러봤자 OO양이고, 아예 이름만 부르는 일도 간혹 있다. 

나도 막 입사했을 때에는 '이 양'보다는 오히려 '아무개야' 라고 불러주는 게 훨씬 친근감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지만

6년이나 지난 아직까지도 이름만 부르는 사람들이 있어 무시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때가 가끔 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이다. 

과거처럼 대접받는 것이 은근히 불쾌해지고 사무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도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들의 음담패설도 적당히 받아넘길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그래서 남자들은 '늙은 여우'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무직 여성들은 아무리 오래 근무해도 임금이 별로 오르지 않고 근무 연한이 길어질수록 남녀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것은 바로 승진, 승급에서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남녀간의 임금차별 문제를 제기할 때, 

'그렇잖아도 박봉인데 여자들하고 똑같이 받으라고 하면 일할 맛 안 난다,

여자들의 월급을 올리려면 우리도 그만큼 올려다오.'

최소한 내가 여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남자들을 다루는 데 아주 좋은 효과가 있었음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미국 남부 사탕수수 농장에서 흑인 남자들에게 흑인 여자보다는 많은 월급을 줌으로써 

백인보다 적게 받는 불만을 억누르는 효과를 누렸고,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조선 남자들의 임금을 일본 남자의 반값으로 주면서, 

조선 여자들보다는 두배라는 '사나이의 자존심'을 세워줌으로써 민족차별 의식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승진, 승급에서의 성차별은 꼭 돈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비인격적 대우' 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늙은 여우'라 불리는 '오래된' 여자들이 하는 말은 이렇다.

  "직장생활 십 년에 결혼도 해서 이제 아이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스 김이라고 불려요. 

윗분이 그러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새까만 남자 직원이 미스 김 할 때는 정말 열이 뻗쳐요. 

한번은 제가 그 녀석을 불러서 따졌죠. 그랬더니 그 녀석이 능청맞게 하는 말이 

'여자들이야 언니라고 한다지만 저야 어떻게 언니라고 합니까. 아, 그럼 누나라고 부를까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거겠지요. 누군 출세 하기 싫어서 안 합니까. 제 동기 남자들은 다 승진했어요.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러면 회사는 더 좋아할 겁니다. 

할미꽃 대신 장미꽃 들어왔다고 하면서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상해 죽겠어요."


직장내 성차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러한 승진, 승급의 차이이다.  

여자는 승진되는 일이 거의 없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고 직장 경력에 따라 

대리, 차장, 과장 같은 호칭이 따라가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여자들은 만년 '언니'가 되는 것이다.


여성 인력에 경력 있는 중견이 적은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직장구조가 여성들을 서장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대접을 견디지 못하는 여성들이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두고 여성들의 직업의식이 약하다고 탓할 수 없다.


남자들은 자기 동기보다 승진이 늦으면 근무 사기가 떨어지고 다른 회사로 옮겨 가기까지 한다. 

나이와 경력에 맞게 대접받고 싶은 것은 인간 모두의 욕망이다.

회사의 인력 관리 구조는 두 줄기이다. 

하나는 정규 인력인 남성이다.  

이들은 계속 회사에 존재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서열을 정해 조직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다른 줄기는 임시적인 여성 인력이다. 

단순(반복) 보조적인 성격의 일을 맡겨,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유지하려는 것이다. 

있는 사람을 승진시키기보다 

월급을 더 적게 줄수 있는 신입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적서 차별과 비슷한 위계구조가 직원들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 오늘은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서 너희들 먹여 살렸다.' 고들 말하더군요.

    남자 직원의 무리한 요구를 그냥 여자가 참으라는 거예요."


  "우리가 퇴근하려고 하면 여자들은 왜 다 도망가냐고 직업의식이 없다고 해요.  

월급 더 받는 것은 안 따지고. 그러면 나는 그래요. 

'나도 월급 더 받으면 남아 있지 말래도 남지. 받는 만큼 하고 가는거야.' 

남자들이 싸가지 없다고 뒤에서 욕 하겠지요. 그러나 자기들도 그런 대접 받아보면 나보다 더 반발 할걸요."


이런 인력구조 속에서 회사로서는 '늙은 여우'들이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결혼퇴직제나 임신퇴직제도이다.

직장에서 기혼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장 일반적인 사례가 다음의 것이다.


  "기혼의 경우 남자가 책상 위에 가족 사진 놓으면 가정적으로 평가하고, 

여자가 가족 사진을 놓으면 '저 여자는 직장에서도 집 생각만 하는군.' 이렇게 평가해요. 

결혼해서 계속 다니면 나도 저런 소릴 듣겠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돼요."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성차별적인 정년이나 퇴직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 유행하던 결혼퇴직 각서(일명 미혼조항)나 직접적인 사표 제출을 강요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촉탁제(1년 단위 계약직)라든가, 지방 발령, 

지금껏 해오던 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를 훈련 없이 갑자기 시키는 것, 

심리적 압박을 계속 가하는 것(예를 들면 '남편 벌이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지' 등의 농담아닌 농담) 을 통해 

스스로 사표을 내게 만들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한번은 내게 사보 원고 청탁을 했던 어느 여사원이 한참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네 회사는 여태껏 결혼하면 여자들이 다 자동 퇴사를 했는데 

이번에 결혼하는 선배 둘이 결혼을 하고도 다니겠다는 뜻을 밝히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다. 

회사에 미혼조항이 없고 아무 걸림돌이 없는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아니,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단 말인가요?"

  "선생님, 모르시는군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그런 회사가 얼마나 많은데요."


반말, 음담패설, 희롱 등도 직장내 성차별에서 많은 분노를 일으키는 문제이다. 

업무지시뿐 아니라 동료 남자들도 반말이 거의 관례화 되어 있고 

'친근감'을 핑계로 손을 만지거나 어깨나 엉덩이를 슬쩍슬쩍 건드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분노하면서도 참고 넘긴다고 한다. 

매일 얼굴 봐야 하는 사람끼리 낯 붉히고 싸우면 다음날부터 직장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그리고 반발을 해도 쇠 귀에 경 읽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경우와 대상에 따라서 그때 그때 참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는데 그걸 순간적으로 판단하기가 참 피곤해요.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서 울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만 바보 취급받아요. 

오히려 뭘 그런 것 가지고 예민하게 구냐고들 합니다."

흔히 여자는 사회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이런 관점에서 한번씩 의심해 볼 일이다.



1995년 책 '너무 아까운 여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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