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단순한 지역감정의 "시초"가 아닌 "주범"을 찾고자 한다면 그 주범은 지역감정이 연속성을 띄고 일종의 관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크나큰 이바지를 해야했을 것이다. 하 지만 71년 대선자료는 영남과 호남의 대비가 다소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례이기는 해도 지역감정이라는 어떤 연속성을 띄는 현상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둘째로, 대선을 지역감정 하나만으로 재단하려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대선이라는 것은 엄연히 전국의 모든 국민들을 이끌자 하는 사람을 뽑는 선거로써, 유명한 정치인들이 나오는 곳이다. 당연히 대선은 지역감정이나 출신정당뿐만이 아니라 그 인물의 성품 및 경력, 그리고 여러 능력 등이 표에 반영되어 나오는 선거다. 따라서 지역감정이라던지 이를 통해 만들어진 정당이 무엇이냐에만 따라서 대선을 분석하려는 행위는 계량경제학 용어를 들자면 Omitted Variable Bias에 해당되는 사례다. 반면, 총선은 대선과 달리 이런 bias에서 벗어나 있다. 총선은 엄연하게 자기 지역을 위해 일할 국회의원들을 뽑는 자리고, 이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국회의원이 아닌 이상 해당 국회의원의 어떤 "경력"이라든지 "능력"보다는 고향이나 출신정당, 혹은 출신학교가 어떤지가가 선거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혹 윗 문단이 잘 이해가 안 간다면, 독자 여러분께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는 거의 100이면 100이 현대 출신에 서울시장을 겸했고 포항에 정치적 기반을 둔 이명박이라 답할 것이다. 반면에, 지금 독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의 이름 및 경력에 대해 아는가? 이에 대해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독자들의 대다수는 총선 당시에 국회의원들을 소속 정당 등이라든지 출신지역 등을 보고 뽑았을 것이다. 이렇기에 난 총선이 대선보다 지역감정의 역사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에 대해 제대로 입증해낼 수 있는 도구로써 더 적합하다고 본다. 자 그럼 이제 자료를 보도록 하자.
각 시기별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호남의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지역감정과 지역몰표의 정확한 발생 시점과 원인을 분명히 도출해낼 수 있다.
58 년 4대 국회의원선거을 보면 어느 지역이 여당같은가? 오히려 호남이 영남보다 자유당에 더 많은 표를 주고 있다. 이는 아직 영남정권이 탄생하기 전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예단할 수 있지만, 전라남도를 주목하자. 전라남도는 자유당에 46.2%라는 표를 던지면서 엄연히 여당 성향을 보였다. 그리고 전남은 앞으로도 여당에 우호적인 모습을 계속 보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말로 영남 혼자서 한국 정치를 50년이나 해먹었단 말인가? 다음 선거는 1963년이다.
63년의 6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이는 박정희의 집권 후 첫 선거다.
전북... 공화당 33.2% 민주당 14.7% 민정당 21.9%
전남... 공화당 32.3% 민주당 8.7% 민정당 20.4%
경북... 공화당 39.5% 민주당 9.2% 민정당 14.3%
경남... 공화당 41.6% 민주당 14.4% 민정당 16.9%
부산... 공화당 37.1% 민주당 18.7% 민정당 28.7%
영 남이 좀 더 표가 나온 정도지만 실제적인 성격에 있어서 이때까지만 해도 노골적인 전라도 몰표, 경상도 몰표라는 선거 정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선거가 지역간 대결 양상으로 치닫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자기 고향과 맞는 정당에 대한 호감의 표현을 넘지 않고 있다. 극히 상식적인 홈그라운드의 이점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 이 판도가 깨지게 된다. 67년 7대 국회의원선거를 보자.
67년 7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55.5% 신민당 29.8%
전남... 공화당 50.4% 신민당 28.4%
경북... 공화당 50.3% 신민당 27.6%
경남... 공화당 54.1% 신민당 31.5%
부산... 공화당 42.2% 신민당 48.7%
박 정희 집권 후 5년 정도가 흘렀다. 보다시피 호남이 영남보다 오히려 여당에 더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반면 부산에서는 부마사태의 전조인지 공화당이 상당히 인기가 없다. 이러다가 71년 대선 당시 경상도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영호남의 지역감정 싸움이 반짝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71년 대선 (4월 27일) 직후 열렸던 71년 8대 국회의원선거(5월25일)를 보자.
전북... 공화당 46.2% 신민당 49.8%
전남... 공화당 52.9% 신민당 41.7%
경북... 공화당 50.4% 신민당 38.5%
경남... 공화당 50.8% 신민당 41.6%
부산... 공화당 40.8% 신민당 56.1%
박 정희 집권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여전히 전라도는 공화당에게 호의적이다. 특히 전라남도는 공화당에 52.9%라는 표를 던지며 TK나 경남지방의 50%보다 많은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만약 이효상 씨가 지역감정의 주범이었다면, 왜 전라도는 이 때 신민당을 적극적으로 밀지 않았는가? 왜 경상도는 이 때 공화당을 적극 밀지 않고 50:38 등등 앞에 지역만 가리면 어느 지역인지 구분할 수 없는 선거 행태를 보였는가? 이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대선과 총선 표심 사이의 차이점에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71년 대선 당시의 지역감정 역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을 뿐, 전혀 연속성을 띄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71년 당시 전라남도는 공화당에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였다. 반면 부산은 여전히 매우 삐딱했다. 이제 73년 9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73년 9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29.3% 신민당 27.7% 무소속 33.1%
전남... 공화당 47.3% 신민당 22.8% 무소속 16.6%
경북... 공화당 34.6% 신민당 27.9% 무소속 32.3%
경남... 공화당 43.7% 신민당 30.5% 무소속 19.8%
부산... 공화당 35.6% 신민당 49.2% 무소속 5.4%
전 북이 상당히 나빠졌지만 여전히 전남은 공화당에게 변치 않는 호의를 보이고 있다. 부산은 더욱 나빠지고 경북도 공화당에 대한 지지율이 15% 정도나 떨어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71년 대선 하나로 지역감정이 연속성을 띄게 되었다? 무슨 매생이국 잘못 잡수고 하는 헛소리인가? 이제 78년 국회의원선거를 보자.
78년 10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29.4% 신민당 31.6% 민주통일당 8.3% 무소속 31.2%
전남... 공화당 34.2% 신민당 24.1% 민주통일당 12.8% 무소속 28.7%
경북... 공화당 27.8% 신민당 23.5% 민주통일당 2.9% 무소속 45.6%
경남... 공화당 31.1% 신민당 26.7% 민주통일당 2.4% 무소속 39.6%
부산... 공화당 29.7% 신민당 39.6% 민주통일당 12.4% 무소속 18.1%
10.26 사태 직전의 투표율이다. 부산은 더더욱 나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부마사태가 발발한다. 경북과 전북이 여당에게 별로 안좋지만 전남은 여전히 좋다. 이는 전남이 영남보다 공화당에게 더욱 호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다. 다른 말로 이 당시에는 영호남 지역감정이라는 개념이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다음, 81년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이는 훗날 김대중의 본격적인 지역감정조장용으로 악용되었던 광주사태가 발생한 직후에 치뤄졌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81년 국회의원 선거
전북…민정당 38% 민한당 22%
전남…민정당 31% 민한당 22%
경북…민정당 38% 민한당 19%
경남…민정당 34% 민한당 15%
부산…민정당 31% 민한당 27%
좀 이상하지 않은가? 민정당은 당시 광주시민들을 잔인하게 땅크로 밀어버린 전두환의 당이었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민정당이 아직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전북에서 민정당에 38%의 지지율을 보낸 반면, 경남/부산권은 31~34%의 지지율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정이 이런데 과연 영남사람들이 내리 여당에 몰표를 먼저 던졌기에 호남도 따라한 것이다 라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을까? 그 주장은 속보이는 구라다. 이제 85년 선거를 보자.
85년 12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36.8% 신민당 26.4% 민한당 18.8% 국민당 11.8%
전남... 민정당 35.7% 신민당 25.3% 민한당 18.0% 국민당 10.2%
경북... 민정당 27.8% 신민당 23.5% 민한당 2.9% 국민당 10.4%
경남... 민정당 31.1% 신민당 26.7% 민한당 2.4% 국민당 10.8%
대구... 민정당 28.3% 신민당 29.7% 민한당 18.5% 국민당 15.6%
부산... 민정당 27.9% 신민당 36.9% 민한당 23.6% 국민당 10.4%
80 년 광주를 거쳤고 전두환의 각종 악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인데 그다지 큰 변화는 없다. 희한하다. 광주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김대중이 아직 정치일선에 복귀하지 않았음이였다. 호남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권력을 가졌던 김대중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 대결의 구도가 나타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선거에서 대구가 처음 독자적 집계가 시작되었는데 이 시점에는 전두환의 민정당에게 부산과 경남, TK가 호남보다 더욱 적은 표를 주고 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지역감정? 그런 건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대구와 부산을 보라. 영호남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민정당에 이긴 유일한 지역들이다. 저 때까지만 해도 투표에 관한 한 정말 좋았던 시절이 아닌가 한다.
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28.7% 민주당 1.3% 평민당 61.4% 공화당 2.4%
전남... 민정당 22.8% 민주당 0.7% 평민당 67.9% 공화당 1.2%
경북... 민정당 50.9% 민주당 24.5% 평민당 0.9% 공화당 15.9%
경남... 민정당 40.2% 민주당 36.9% 평민당 1.0% 공화당 10.3%
대구... 민정당 48.1% 민주당 28.3% 평민당 0.6% 공화당 13.1%
부산... 민정당 32.1% 민주당 54.2% 평민당 1.9% 공화당 6.8%
1987 년, 김대중이 민주당을 깨고 나가서 평민당을 창당하고 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 언제도 볼 수 없었던 김영삼의 민주당이 호남에서 1% 내외의 지지율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김영삼은 결국 민자당을 창당했다. 전남북은 평민당에 65% 내외의 몰표를, 대구경북은 민정당에 50% 내외의 몰표를, 부산경남은 민정당과 민주당에 비슷한 몰표를 주는 극한적인 지역 대립의 단초가 드디어 시작되고 말았다. 물론 전라도 사람들의 억울한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근데 김대중이 87년 대선에서 4자 필승론이니 뭐니 하면서 지역 분할 구도를 그리기 시작한 게 과연 지역감정이나 오늘날의 병적인 투표성향과 무관할까? 당시 김대중은 경북은 노태우가, 경남은 김영삼이 갈라 먹고 충청은 김종필이 차지한 뒤 자신은 전남과 전북에서 압승하고 수도권에서 고정지지층과 호남표의 단결로 필승할 수 있다는 4자필승론을 내세우고 경선을 거부한 채 당을 깨뜨리고 나갔다. 김대중은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며 김영삼에게 대선 주자를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김영삼은 레이건도 70이 넘어 대통령을 했다며 이를 거절했고 결국 총재 김영삼에 비해 열세였던 김대중은 당을 깨버리고 평민당을 창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