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위에~.” “(아래쪽을 가리키며) 아래~.”
한파에 꽁꽁 얼어붙었던 지난 4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경기인력개발원의 한 교실은 한국어를 배우는 에티오피아 학생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전날 수업에서 배운 ‘방향을 가리키는 용어’를 복습하는 시간. 에티오피아에서 온 연수생 30여명은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강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한국어를 따라했다.
이 학생들은 에티오피아의 6·25전쟁 참전 용사 후손들로, 우리 정부 초청으로 직업역량배양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 무상원조집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예산 82억원을 부담하고 대한상의가 연수 프로그램 운영을 맡았다. 세 차례에 걸쳐 300명의 참전용사 후손들이 한국에서 2개월간 한국어 연수, 6개월간 자동차, 전기·전자, 용접·배관 분야 직업훈련을 받을 예정이다.
김영욱 대한상의 글로벌프로젝트 팀장은 “1차 연수 대상자로 60여명을 뽑을 때 현지에서 1200여명이 지원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고 전했다. 1차 연수생 60여명은 지난달 17일 입국해 파주시와 광주광역시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2, 3차 연수생은 올 상반기와 하반기에 나눠 선발할 예정이다.
이번 연수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준비됐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황실 근위대 6037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강원도 양구, 철원 등 전투에 참전해 122명이 숨지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6·25전쟁에 참전한 이력은 이후 이들에게 좋지 않은 ‘낙인’이 됐다. 1974년부터 20년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순간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한 것이다. 정권 탄압에 생활이 열악해지면서 참전용사들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근처에 참전용사 마을이 있지만 정작 참전용사들은 가난 때문에 대부분 쫓겨났다.
이 같은 사정은 2011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국빈방문을 계기로 국내에 전해졌다. 김식현 KOICA 과장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후손들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고 에티오피아의 경제개발에 기여하기 위해 이 사업이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LG그룹을 비롯한 대기업과 몇몇 중견기업이 국내 채용 규모를 두고 KOICA 대한상의 측과 협의 중이다. 전체 연수생의 30% 정도는 국내에 취업할 예정이며 나머지는 에티오피아로 돌아가 북아프리카에 진출한 우리 기업 등에 채용될 계획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는 라헬 젤레케 데스타 씨(여·33)는 아버지와 삼촌이 강원도 인제 지역의 전투에 참전했다. 데스타 씨는 “아버지는 ‘한국에서 난생 처음 본 눈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국의 추위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어 연수가 끝나면 자동차 관련 기술 연수를 받을 예정이다. 전기·전자분야 연수를 받을 예정인 아브라함 이프터 아세가헤 씨(33)는 “아버지가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싸우셨다는 점에서 항상 자랑스러웠다”며 “아버지의 희생을 잊지 않고 우리를 초대해준 한국에 감사한다. 한국에서 배운 기술로 고향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