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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시위대의 18일 추모식 참가 후기 (스압, ssul체)
게시물ID : sewol_435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hantom57
추천 : 40
조회수 : 16928회
댓글수 : 55개
등록시간 : 2015/04/20 03:23:16
 이 게시판안에서도 시위(?!)대가 잘못했느니 폭력 집회였느니 하는 소리를 보고,

그 현장 지휘하던 경찰 서장 아저씨가 칭했던것처럼 '불법 폭력 시위대'였던 제가 보고겪었던 일들을 

써보려고 여태 눈팅만 하다가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이하는 가독성 및 게시 편의성을 위해 (스압), 또 언젠가 해보고 싶었기에 음습체.


본인은 서울에서 영아 유아 유년 청소년 대학생 시절을 보내고, 지금도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30대 초반 남자임. 운좋게 고딩때 수능을 잘봐서 고대(공대)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늦게 정신차리고 

공부만 열심히 해서 대충 먹고 살 걱정은 남들보단 덜하게 됐음. 워낙 당시 공대의 학생회들이 ㅂㅅ들

이기도 했지만  워낙 과제니 뭐니 그 분량이 많아서 동아리나 독서회 같은 외부 활동들은 엄두도 못냈음.

그러다가 군대 갔다와서(군생활 도중 노대통령 서거)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이후 취직해서 그간 

모아둔 체력과 건강을 모두 월급과 인센티브로 트레이드 하며 지내고 있음. 끝없는 야근에 얼마전에 목

디스크와 허리디스크를 한꺼번에 진단받았는데 프로젝트 일때문에 그냥 방치하고 지금도 대략 주당

 60~70시간은 일하고 있음. ( 일도 재미있고, 보상에 대한 동기 부여도 있어서  회사서 강요하는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근무임.)  


 내 개인사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순전히 경찰 아저씨들을 위해서임. 어제 본인은 무법지대서

날뛰던 불법 시위대였으니, 상기와 아래와 같이 본인의  배경을 어느정도 알면 범죄자 검거와 폭도 

진압에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함.


 여튼, 평소에 이렇게 너무 바빠서 독서도 많이 못하고 해서 역사 의식이나 시민 의식 같은 것도 별로인  

내가 세월호 사건에는 문제 인식을 하게 됨.  어른들 떄문에 배에 갖힌 아이들이 천천히 익사해갔는데..

정부 최고의 수장이 7시간이나 소재가 불분명했으며 기껏 와서도 멍청하게 서서 아이들 다 죽을때까지

도움보단 방해질만 하는 것을 라이브로 지켜봤음. 그때 아마 나 정도 이상의 트라우마 겪은 사람 많이들

있을꺼임. 내 주위 여성들은 대부분 다 울었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죽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정치 

논리로 (명백한) 박해를 받는것음 보게됨. 일베라는 사람새끼같지도 않은 소시오 패스들이 정권의 

비호를 등에 업고 유족을 모욕하고, 보상금 운운하면서 쩐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못배운 늙탱이들을

선동 하지를 않나. 빨갱이는 갑자기 왜 튀어나오고. 그러다가는 아예 경찰과 정부가 유족을 밟기 시작함.


 4월 16일이 세월호 사고 일주년. 목요일이었고. 17일이 촛불들기 기네스북 도전. 금요일이었음.

항상 세월호 소식을 접하기만 하면, 그리고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이나 SNS등을 통해서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 뒤에서 같은 사람새끼로 나누어야될 일은 아무것도 안하고, 내 앞가림에만

눈이 벌개 있는 나 자신한테 죄의식이 스멀스멀 올라왔음. 그래서 저 일주년이나 그 다음날에는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는데 역시 야근하고 열시가 넘어 가지 못함. 그러다 18일. 원래 일주일에 단 한번 여친님을

뵙는 날인데, 나 여기 한번 꼭 가보고 싶다고 허락받고 광화문으로 향함. 추모식에서 인간 띠잇기 행사를

한다고 했음. 거기에서 헌화라도 하고,  유가족에게 내 머리통이 하나 더 있는 것만으로 머리칼 한올만한

위로가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갔음. 그리고 사실 이런 낯간지런 이유보다, 내 죄의식을 좀 덜고 싶은 

심리도 컸음. 시쳇말로 정신 승리 이런거. 여하튼 상가집 갈때 입는 블랙 세미 정장에 리본을 달고 집나섬.

 가면서도 별 생각이 다들었음. 머리로는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서른넘게 나이를 먹고 좀 

감상적인것 같기도 하고, 이런 시민 참여 행사에 한번도 가본적도 없어서 뻘쭘한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갈 줄알았는데, 검은 상복의 드레스 코드에 맞는 사람은 지하철 안에 하나도 안보이고..
 

 그러다 광화문에 4시경 지각 도착. 그때가 어떤 상황이었냐면, 그 이틀전과 전날, 추모식이 열렸었는데

헌화하는 이들을 경찰이 가로막고, 유족들에게 시민들이 다가갈수 없도록 경찰이 온갖 차벽(명박산성)을

치고 감금한 상태. 즉, 유가족의 일부는 광화문에 갖혀있었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해서 이사할때 쓰는

파란색 박스에다가 생리 현상을 처리하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떴음. 유가족을 모시고 시청역 광장에서 치룰

추모 행사는 고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음. 


 막상 그래도 그곳에 나와보니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시청앞에 앉아있었음. 차례로 연사들이 발언하고,

마지막으로 유가족이신 어머니 한분이 올라오심. 내용을 적진 않겠음. 어머니 말씀하시다가 격해지셔서 

발언을 마치고 주저 앉아서 오열하심. 아.. 진짜 이런 사람들을 모욕하는 새끼들은... 형법이 왜있나 싶음.    


 정리 발언 하시는분이, 현재 유가족분들이 광화문에 갇혀 있으니, 광화문까지 행진해서 만나자고 하심.

사람들 거리로 나섬.  경찰이 쳐놓은 플라스틱 바리게이트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음. 차도는 이미 전부터

교통 통제가 되어서 차들은 없는 상태. 


이때만 하더라도 기분이 좀 뻘쭘함. 가족 단위로도 많이 오셨고, 고등학생들도 많이 왔고, 대학생들은 무슨

동아리마다 온사람도 있고... 물론 나처럼 혼자 온사람도 있긴했는데 여하튼 좀 어색하긴했음. 내가 서울시내

행진이라니. 중간 중간 구호를 외치는데 쑥쓰러워서 따라하지 않고 나름의 생각이 깊은 말수 없는 청년으로

사람들이 보아주길 바라며 사람들을 따라 걸음. (아무도 의식 안할텐데 혼자 자격지심으로 저리 생각함.)


 그런데 가는 길마다, 차도든 어디든 경찰들이 6m차단벽 (높이가 대충 6-7미터쯤 되고, 생긴것이 고속도로

옆에 아파트에 자동차 소음 나가는거 막으려고 세워둔거처럼 생김.)을 세우고 양옆에 도열해서 길을 막고 

있었음. 시민이 먼저 길을 막기 훨~씬 전부터 경찰은 거기에 장벽이랑 장비랑 다 치고, 명박 산성으로 길가에

닭장차로 인토와 차도를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음. (이거 불법이라고 함. 그런데도  경찰이란 놈들이 대놓고..)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시민이 가는 길을 경찰이 막았음. 그때까지 모든 불법적인 거리 점거는 내가 목격한

바로는 경찰만 했음.


그래서 이 경찰들이 아니었으면  원래 그냥 북쪽으로 올라가면 될것을, 행진하는 시민들은 우회적해서 

큰길을 따라 쭉 직진함. 어딘가에는 명박산성이 끊길테니, 그 쪽으로 크게 돌아가려고 함.  깃발을 든 

아저씨/어머니들을 표식삼아서 사람들이 따라감. 그러다 행진 인원들 일부가 중간에 골목길로 빠져서

 들어감. 중간마다 거리에서 음식점을 하시는 어머니가 나오셔서 경찰이 막고 있지 않은 길을 알려주심.

 앞에 가시는 형님분들이 많이 파시라고 인사함. 그렇게 종각까지 나왔는데, 그때 인원을 쪼개서 각각 

행진하던 사람들이 만남. 우리가 가려던 방향에서 시민들이 온것은 그곳도 막혀있단 이야기. 사람들이 

거기 멎어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거기 지하철을 이용해서 광화문역으로 가자고 함.

 그곳 출구를 봉쇄했는데 뚫렸다 막혔다 한다고. 그래서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3호선 환승을 해 광화문

 역으로 나옴. 9번 출구로 갔는데, 그때 경찰들은 이미 뒤로 빠져서 차단벽을 만든 상태. 


 예전에 세종대왕상 만들 때 논란이 많았음.  그 중 누군가가 컬럼에서 세종 대왕이 국민의 눈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왕좌 위에 앉아서 사람들을 내려보게 만들었다고 아쉬워한것을 봤는데, 그때 내가 정면서

세종대왕상을 보고 그말을 절감했음.  거대한 세종대왕상을 중심으로 양옆에 헬멧과 방패를 든 경찰들이 

도열해 있었음. 최종 보스 옆 몹 마냥. 세종 대왕상 옆에는 ㅗ자 모양으로 여자키만한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그 뒤로 경찰들이 몇줄씩 도열해 있었음. 바리케이트는 앙카로 바닥에 다 박아버림. 


그 앞에서 시민들이 와 앉음. 스피커를 설치해서 시민 한사람씩 발언 기회를 줬음. 몇분이서 발언을 하셨는데,

이쁘장하신 새내기 여대생이 부모님이 거기서 밤샘 농성을 하더라도 지지하겠노라는 말씀하셨다 해서 시민들

웃고 박수도 많이 쳐줌. 그렇게 몇분이 더 말씀을 하시고, 진행하시는 분이 이제 유족들을 뵈러가자고 함.

앉아있던 사람들, 학생들, 직장인들 모두 일어서심. 남자분들 다 앞으로 나오라고 앞에서 누군가 말씀하심.

주위에 남성분들과 함게 앞으로 나감. 이때부터 내가 생각한 평범한 경험은 안하겠구나 하는 감이오기 시작.


그렇게 세종 대왕상 옆에서 바리케이트를 들어올리려 시도. 어떤 분이 끈을 가지고 와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붙잡고 당김.  잘 안되자 남자들이 앞에 나서서 ㅗ 모양의 한쪽 바닥을 들어올리려고 시도함. 

 이때 경찰들 켑사이신 쏘기 시작함. 이 캡사이신 쏘는거는 밭에서 농약 치는 기계처럼 생겼는데, 탱크 두개가

붙어있는것을 등에 메고, 호스처럼 생긴 것을 쥐면 취객 오줌줄기 마냥 최루액이 발사됨.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여기저기 쏴대는데 무슨 기준인지 몰랐으나, 나중에는 앞에 있는 사람한테 그냥 다 쏴댐. 눈에 직통으로 몇번

이나 맞았는데 눈 부여잡고 비틀비틀 뒤로 오니까 어린 여학생들이 물로 씻어줌. 눈이 안떠지고 고춧가루가

눈에 들어간것 마냥 쓰리고 눈물이 흘렀음.  얼굴도 화끈댔는데 물로 씻어내니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았음.

생각했던것보다 덜 아파서 캡사이신 희석시킨 경찰 누군가가 휴머니즘을 발휘했구나 하는 뭉클한 망상을

잠깐함. 앞에서는 남자들이 바리케이트를 들어올리려 하고 있고, 뒤에서는 여학생들과 여자들이 계속 물을

날라다 주었음.  


 열받은 아저씨 몇명이 플라스틱 통같은걸 집어던지고 내려침. 캡사이신 맞은 사람들은 500ml 생수통으로 

눈을 다 씻어내고는 빈통을 건너편으로 집어던짐. 많이 열빧침 사람은 직사로 던짐. 발로 차는 학생도 있었음.

 왠 중년 체격 좋은 아저씨 하나가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이 몰리는 곳에 가서 시민들 머리와 등을 후려갈김.

 그렇게 내분 일으키려는 것 같았는데 목격한 시민들이 이 프락치 늙은이를 끌어냄.

그러나 그때까지 시민/경찰 양측에서 큰 폭력사태가 나는 것은 보지 못함. 

 그런 연유로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차단벽 앞에 있는 사람들은 경찰에 대해서 크게 위협을 못느끼는 듯했음. 

적어도 나는 그랬음. 그러다가 왼쪽  문회회관 쪽이 뚫렸고, 시민들 거기로 다 몰려감. 세종 대왕상에 도열해 

있던 경찰들은 한쪽이 뚫리자 뒤로 후퇴함. 그렇게 시민들 일차 방어벽을 뚫고 광화문 광장 꼭대기까지 올라감.

이제 유가족이 갇혀있는 광화문 현판 아래와 시민들 사이에는 도로 하나밖에 없는 상황. 물론 그 도로는 모두

명박산성 - 차벽으로 막았음. 시민들이 있는 광화문광장을 둘러싸는 형태로 한겹, 유가족이 있는 광화문 현판

아래로 한겹. 그리고 그 사이에 경찰병력들이 집결해 있었음.


 바로 앞에 차벽을 만난 시민들, 차벽을 옮기려고 시도함. 차를 밀어버리려고 구호에 맞춰서 닭장차를 흔듦.

그러다가 누군가 저 건너편에 경찰이 있어서 다친다고  소리치자 멈춤. 학생 몇이 차안에 들어나서 건너편을

확인함. 몇몇은 건너편으로 건너갈 생각이었는지 유리창을 깼음.  깨진 유리창 사이로 캡사이신이 날아들고,

그 경찰서장이란 인간이 차안에 누가 있으면 바로 캡사이신 사용하라고 확성기에 소리침. 학생 몇몇이 

스프레이를 가져와 버스에 종이 돛단배 형상을 그림. 그 옆의 학생은 박근혜 퇴진이라 적음.


 시민 몇분들이 건너편에 경찰들이 물러섰다고 이야기함. 사람들 다시 닭장차를 잡고 흔드는데,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풀었는지 아니면 경찰이 실수를 했는지 차가 앞으로 조금 이동해서 차벽 사이로 사람이 지나들수

있는 틈이 생김. 이 길이 지나기가 좀 무서웟음. 저쪽 쪽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데 나가자마자 경찰들한테

둘러쌓여서 다구리 당하면 어쩌지... 하는데 그 좁은 길로 제일 나가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학생들이었음.


대학 점퍼 입은 솜털 보송보송한 아이들과 여학생들, 커플들. 이십대 성인이지만 이제 겨우 서른을 갓 넘긴 내

눈에도 아이들처럼 보이는 얘들들이 나섰고, 그 뒤로 어머니와 아저씨들과 내 또래들이 들어감. 들어가자마자,

경찰이 뚫린 부분을 봉합하려고  6m차단벽을 세움. 이 차단벽이 카드가 세장 겹쳐진것처럼 생겼는데, 전원을

넣으면 양옆으로 나머지 카드가 레일따라 밀리면서 날개를 펴는 형태. 그런데 그 날개가 펼쳐질 곳에 아저씨

분들이 드러 누우심. 누군가 그분들 유가족들이라고 소리침. 그 말에 감히 경찰 문 못닫음.


그렇게 경찰도 그곳을 막지 못하고 1차 차벽 뚫림. 이제 유가족들과는 차벽 하나만 있는 상태임. 

잠시 소강상태가 됨. 그 좁은 차벽 사이 공간을 통해서 들어온 시민들은 경찰이 모두 에워싸고 있어서 수적으로

 경찰들에게 상대가 안됐음. 힘들게 확보한 공간안으로 시민들이 들어와서 참.  이 공간을 지켜려고 경찰들 앞

 시민들이 팔짱을 끼고 섰음. 이때 내옆에 서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삼십대 젊은 사람들이었음.

 대학 점퍼입은 친구들도 많이 보였음. 그 안에서 시민들 최후의 차벽에 열기 위해서 차에 줄을 묶어 당겼는데 

꿈적도 하지 않아 포기.


 그 앞에 서서 그때야 경찰들 얼굴을 마주봄. 앞에 한줄이 방패를 겹겹히 세워 들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고

그 바로 뒤에 줄이 이 첫줄의 친구들을 한손은 어깨위로, 한손은 반대쪽 허리로 감아 단단히 안고 있었음.

 밀리는 것을 막으려고 저리하나 보다.. 하는데 순간 짠하면서 연민이 들었음.

 이때 그 앞에서 눈싸움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엉겨붙는 경찰과 남학생들이 있었음. 그 옆 시민들이 그럴때마다

그 사이를 가로 막고 뜯어 말림. 어쩌다가  내옆 경찰아이가 시민쪽으로 끌려나왔는데 상대 남학생을 누군가 몸으로

막고 그 사이에 내가 이 친구 등을 경찰쪽으로 밀었음. 방패가 열리고 경찰들이 자기 동료를 얼른 안으로 흡수함.    
  
이렇게 우리가 유가족을 만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음. 그 잠시에 경찰과 시민은 방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있었음.  경찰들 4열쯤 뒤로 머리 두어개 간격으로 셀카봉같은거에 매달린 캠코더로 그안에 사람들이 모두

촬영 하고 있었음.  간혹 버스 위에 누군가 넘어가려는 시도를 할때마다 경찰들이 '야 저새끼 채증해' 하면 그 

방향으로 카메라들이 휙휙 돌았음. 그 안의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마스크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냥 계속 맨얼굴로

앞에 서있었음. 시위 내내 불법 채증을 하는 판에 얼굴을 가리는 것이 캥기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무리 

엮으려고 해도 내가 뭐 안집어던지고 아무도 안때리면 되리라고 생각함. 무엇보다  검은 정장에 얌전한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추모오러 온 사람 이미지와 조금 거리가 생길것 같았음. 그래도 계속 생경한 기분이 듦. 나는 추모하러

온 사람인데 벌써 몇번이나 최루액을 맞고 여기 서있는건지.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무섭긴 무서웠음.


 조금씩 해가질때, 무전이 오고 경찰 뒤에서 소근 소근하더니. 조금 있다 그 경찰 서장이란 사람이 경찰들에게 명령.


'한보 전진!'


 이때부터 장면이 충격적이게 됨. 열겹은 될만한 경찰들이 구령에 맞춰서 절도있게 방패로 사람들을 밀고, 시민들

방패에 손을대고 저항함. 그리고 그때 갑자기 내 옆 방패가 휙 열리더니 맨 앞에 있는 학생 하나를 경찰들이 손으로 

잡아 끌어대더니 그 방패 숲으로 삼켜버림.


방패가 닫히기 직전에 쓰러진 그 학생이 발로 밟히는 것을 봄.


좀전에 그나마 평화롭게 대치하던 상황이랑은 완전히 달라짐. 캡사이신이 게속 앞 사람들 눈에 무차별적으로 

뿌려짐. 옆 아저씨 한분이 흥분하셔서 저쪽 한 경찰을 항해서 '웃지는 말아라 개새끼야'라고 소리치심. 물대포는

벌써부터 신나게 뿌려지고 있었음. (나중에 듣기로 거기 웃으며 최루액을 뿌렸다는 경찰들이 몇몇 있었다고 함)


오른편에 보이시하게 생기신 매우 이쁘신 단발머리 여대생분이 경찰 방패를 막는데 또 방패문이 열리고 손들이

나와서 이 여학생을 잡아챔. 달라들어서 여학생 끌어내면서 '이 사람 여학생이에요'라고 소리지름. 내가 느끼기로

이 학생도 잡혀 들어가서 밟힐것 같앴음. 나중에 들었는데 여경이 아니면 여학생 잡아가는것도 불법이라는데,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여학생이라고 계속 소리치며 그 손들 막으니 경찰들도 놓아줌. 그 바람에 넘어진 

 이 학생분을 부축해서 일으켜드렸는데 다시 방패 앞으로 가서 서셨음.


 아마 연행되신 분들 상당수가  이 안에서 이런 식으로 잡혀가셨을거임. 이게..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면 모를만한

굉장히 큰 공포임. 이 '방패 속으로 삼키기'가 이 어린 경찰 아이들이 임의로 선택하는 것 같음. 2열의 경찰중 하나가

손을 내밀어서 앞의 사람의 손을 잡으면, 앞열 방패가 열리고  그 주위 모든 경찰 손이 수십개가 달라들어 그 사람을

안으로 잡아 끌어감. 그때마다 시민들이 달라들어서 구해냄.  이때 연행되신 분들. 폭력행사하신 분 나는 하나도 

보지 못했음. 그냥 그 안에서 경찰아이들이 알아서 타겟팅을 하고 잡아 끌어갔음. 


 경찰 서장은 계속 그 안 시민들을 불법 폭력 시위자라고 함. 나중에는 경찰들에게 깃발든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라

지시. 시민들이 깃발든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 뒤로 보냄.  


뒤에서 계속 생수가 날라져 오고 이번에도 최루액 맞을때마다  뒤에 물러서 물을 들고 계시던 어른신과 여학생들이

주시는 물로 눈을 씻음.  흥분하신 몇몇 사람들이 방패를 걷어차기 시작함. 그때 최루 가루가 터짐.


이런 x x... 내가 군대나와서화생방까지 또 할 줄이야.


 최루액도 아니고, 캡사이신도 아니고. 최루 분말을 터트렸음. 그 와중에 신나게 캡사이신 쏘는 경찰들. 둘다 

직방으로 맞은 안의 학생들 기침하면서 괴로워함. 몸싸움 격렬해지고, 이때 경찰이 내 안경을 벗김. 안경은 땅에 

떨어져서 자세를 낮추고 손을 더듬어 찾는데, 사람들 사이에 밀치고 밀려져 못찾음. 손만 호되게, 신나게 밟힘. 

자칫 잘못하다간 이 사이에서 압사하겠구나 싶어서 포기해버림.


나는 안경이 없으면 1m앞 사람 얼굴도 안보이는 반 장님이어서 이때부터 패닉됨. 사람들 눈은 하나도 안보이고,

어버버하고 있다가 간신히 눈뜨면 앞에 서있다고 경찰이 눈에다가 최루액 또 쏘고. 또 어버버하고 옆으로 밀리면

그 빌어먹을 방패 숲으로 삼키는 덫에 몇번을 걸렸다가 사람들이 도와줘서 풀려남.  그러다가 직사로 물대포 맞음. 


물대포 그냥 맞아도 물이겠거니 했는데 나한테는 그 적의만큼 충격적이고 차가웠음. 얼마 안돼서  덜덜 떨려옴,

눈앞은 하나도 안보이고 옷은 홍건히 다 젖어서 차갑고. 거기서 더 어버버하고 있다가  뒤로 나옴.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경찰이 이 일차 차벽 밖으로 사람들을 완전히 몰아냄.
 

 그 뒤부터는 나는 그 차벽 경계에서 정확히 어떤일들이 벌어지는지 보지 못함. 광화문 쪽 이미지가 모두 뿌옇게

보이고 눈앞에 사람들 왔다갔다하는것들만 보이고... 어느 어르신 한분이 와서 수건을 주시려고 했는데 사양함.

 사람들이 차벽을 흔들고, 줄로 버스 한대가 꽤 많이 끌리기도 한것 같은데, 아마 6m차단벽 때문에 진입에는

실패한것처럼 보였음.


이때 마침 광화문에 와있던 친구와 연락이 되었음. 경찰 서장은 이때쯤 맛탱이가 가버린것 같앴음. 행사와

관련이 없는 제 3자가 들어도 거북할정도록 '불법 폭력 시위대'를 해산하라고 하고,  그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공구와 흉기를 던지지 말라고 방송함. 나중에는 본인에게 '개새끼야'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폭력적인

행위와 욕설을 멈추라고 명령하고 체포하겠다고 함. 나랑 내친구들 주위사람들이 다 웃었고, 몇초 안있어서

천명은 될만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지름. '개새끼야!!'

 물대포는 크레인으로 저 위로 올리더니 아래 차벽을 흔들어서 길을 열려는 시민들에게 조준돼서 발사되고 

있었음. 이게 나중에 실수였는지 빗나가서 저 멀리에 있는.. 퇴근해서 구경나온 직장인 여성분들 서있는 곳

까지 날아가서 여럿이 물벼락맞음.  나중에 이 물이 실은 살수차 물이 동나서 소방전에서 불법적으로 빼와서

사용한것이라 밝혀짐. 이를 지적했던 기자는 경찰이 잡아감. 계속 물을 쏴대서 친구가 물좀 아껴쓰라고 소리침.

 왠 경찰 아이 다섯이 광화문 인도를 거쳐서 시민들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걸음. 저 앞에서는 우리들 보고 

불법적으로 폭력 시위를 하는 폭도들이라고 하는데, 이 아해들은 무슨 깡인지 그 시민들 사이을 걸어감. 아마

문화회관쪽 건물안에서 뭘하라고 지시를 받은것같지 않았나 싶었음. 아저씨 한분이 달라들어서 이 경찰 아해

목덜미를 잡음. 아해는 겁에 질려서 '우린 아무것도 몰라요!' 소리 지름. 나와 주위 아가씨들이 달라들어서 

이 아저씨 막고 경찰 일으켜 세워서 보냄.


 여하튼 그 광화문에 와있던 친구와 연락이 돼서 만남. 거지꼴로 떨고 있다가 친구를 만나자 마자 점퍼를 

빼앗아 입음. 내가 하는 상황 설명을 듣더니 애초에 그럼 경찰이 저지랄 안하고 유족들 만나면 끝나는 건데 

왜 여기서 이리 난리를 피우고 있는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함. 


조금 있다 한쪽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박수치고 환호함. 유족들이 풀려나서 시위대 쪽으로 건너오게됨.

정청래 의원이 들어가서 협상했다고 함.







그리고 거짓말 처럼 모든 것이 끝남. 







저 멀리서 정의원이었는지 대표였는지 하는 분과 유가족이 발언하고, 전 시위대는 해산함.

친구와 나는 택시타고 돌아옴. 긴장도 풀리고 해서 오는길에 골아 떨어졌는데 그 잠깐 눈 붙인 사이에 난

눈물에 눈주위 최루가루가 녹아서 집 근처 다와서 또 눈물 콧물 흘리면서 화장실가서 닦아냄.


 자정이 다된 그 시간에 친구와 함께 근처 해장국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음. 캡사이신 맞고 온 사람한테 

인심 좋으신 어머니가 캡사이신 팍팍 들어간 엄청 맴고 얼큰한 해장국을 눌러 담아주심.

맛나게 먹긴 했는데 머리에서 약간의 땀이 날때마다 최루액이 녹아서 피부가 따끔따끔했음.


들어와서 샤워를 하는데, 몇번을 씻어도 얼굴과 손등, 머리의 따가움은 별로 안가심. 지금이 일요일 

늦은 밤인데도 아직 얼얼함. 군대서 멋모르고 김치를 장갑 안끼고 썬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기분임.


그렇게 자고 일어났는데, 뉴스에 대부분 보도가 되지 않았다는 말도 있고, SNS나 기타 등등에 시위대(?!)

글의 폭력성만 부각되어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늘 밤에 내가 겪은 일을 길더라도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함.

심지어 오유에서는 의경 동정론?같은 thread도 있다고 들었음.


 지금까지 내가 시시콜콜 나의 이야기와 그 순간순간의 감정을 모두 글로 적은 것은, 내가 대충 어떤

타입의 인간이고 어떤 생각을 갖고 거기 갔는지 조금이라도 공감하게 하고 싶었음.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나는 어떤 종류의 시위나 시민 행사에도 참여해본적이 없으며, 중학교때 한두번 말고는 누구와 주먹다집

해본적도 없음. 안분지족하는 인생관이고, 내가 대단히 가진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가정 환경이나 기초적인 수준의 경제력 차원에서 봤을때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좀더

앞에서 출발할 수 있었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기회가 될때 내 공동체에 환원해야 된다는 희미한 부채 

의식 정도가 전부임. 오늘 추모 행사에 나오기전까지 이게 가벼운 감상 주의 / 정신 승리가 아닌지에 대해

계속 물었던 사람임. 내 옆의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경찰을 때리지 않았고, 경찰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올때 일으켜 세워줬고 다시 그 무리로 돌려보내주었음.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성분들이었음.

내가 모두를 보고, 모두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너절하게 사족들을

달아댔지만.  이들과 내가. 지금 그들이 이야기하는 폭력 시위를 저지른 폭도들이라고 매도 당하고, 

이 안에서도 그런 '폭력을 일삼는' 선두의 시민들과 자신을 선긋는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어찌 느낄지

한번 생각해봐줬음 졸겠음.


이하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의경 논란이 있는데,  한마디로 '아무힘도 없는, 까라면 까는 경찰 아해가 뭔 죄냐'라는 것임. 누군가는 또

나치와 의경을 비교하는건 지나치다고도 하고, 의경 지원생들이 다 외박보고 가지 뭔 생각이 있어서

그랬냐고 하는 말들 등등..

 남학생이 그 방패 덫에 빠져서 안에 끌려가 발로 밟히는것을 본 내 생각으로는 의경은 까이는게 맞음.

정도의 차이지 형태적으로 나치 부역자와 의경이 '부도덕적인 명령을 따른다'라는 것은 같지 않음?

물론 그 정도의 차이가 심하긴 하나, 그게 비유법임. 완전히 같지 않은 것을 매우 유사한 어떤 공통점으로

같은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 

논산 입소해서 훈련받을때 키크고 덩치 있는 각 소대 번호 빠른 훈련병들 의경 TO가 많이 남는다고. 아마 

다  그쪽으로 갈거라고 (조교들이) 이야기해줬음.  그래서 당시 지원할 수 있었던.. 전방 부대로 훈련소에

 리쿠르팅 하는 사람들 올때마다 지원했음. 결과적으로 거기에 차출돼서  신나게 처맞고, 허리랑 목이랑

 다쳐서 몸 상한채로 만기 제대했지만,  내가 군대 온걸 후회하지 거기서 (설령 좀더 편하고  안다쳤을지

라도) 전경 대신 내 출신 부대를 택한건 후회 안함.  대략 시위가 있는 줄 알고 있었고, 정권을 대신해서 

내가 절박한 그들과 충돌해서 싸우고 싶지 않았음.

 물론, 그들이 나처럼 의경을 '빼'라는 것은 아님. 그리고 나 역시 재수없게 결국 그곳에 가게 되었다면

농민들 불쌍하다고 명령 불복종하고 방패를 바닥에 버리지는 못했을것임. 나 역시 도덕결벽증 없음.

그러나. 사내놈인 나도 사람 새끼로 당연히 있어야할 죄의식은 가젺을 것이고, 욕먹는 걸 억울하다고 

읍소하진 않았을 것임. 거기 서있던, 그 웃으면서 최루액 뿌린 경찰놈도, 타의로, 정권의 매를 대신 맞으며 

거기 서있었다는 사실이 정상 참작을 될지 언정, 도덕적으로 면죄가 될 수는 없다는게 내 생각임.

하긴 나도 감정적으로야 이틀전까지만 하더라도 의경들만보면 안쓰럽고, 그들이 무슨 죄이니 싶었음.

어제 그 경찰과 대치중이던 시민들 중에서, 내 나이 또래인 이들이 경찰에게, 당신도 이러기 싫지 않느냐.

하기싫은데 고생하는거 다 안다. 이런 말도 하는것도 들음. 근데 그들이 사람들 밟고 쏘아대는 듣도보도

못한 최루액 맞고 나니 인간적으로다가 감정적인 이 연민도 많이 옅어지더라.


둘째, 세월호 이슈를 이용하려는(?!) 노조 집단들의 깃발이 거슬렸던 분들이 많이 계시는것 같음.

나도 노조 이런거 잘 모름. 그런데 그 노조 분들 중에 선생님들도 계셨고, 세월호 사건에 지속적으로 

힘보태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음. 그리고 대부분 깃발을 든 노조분들은 저 경찰과의 충돌때 대부분 단체 

이미지도 있는지라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셨음. 시민들 길잃고 헤맬때 인도하시기도 했고. 

또 오히려 맨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사람들은 내가 목격한 바로는 노조와 관련없는 젊은이들이 훨씬

 많았음. (그리고 따신 방에서 있었던 분들은 적어도 거기 노조 욕할 자격없다 생각함.)

 
셋째, 폭력적 시위에 대한 거부감.인데. 평화적으로 촛불들고 앉아 있으면 되지 꼭 경찰과 그렇게 충돌을

해야했냐고 하는 사람들 (대체로 현장에 나와보지 않았을 사람들)도 인간적으로다가 좀 야속함.

노통 탄핵때 누군가의 제안으로 촛불을 들자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많이 감동 먹었음. 어머니들이 전경들

앞에 나서서 옷에 꽃을 달아주고, 그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온 엄마들과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평화 시위를

치룬 시민들도 대단해 보였고.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굳이 충돌했어야 했는가. 하는 여론도 있는듯 함.

 그런데 이건 경우가 그때와 많이 다름. 어제는 경찰과 정부가 백번 사죄하고 엎드려 빌어도 모자를 대상인

유족들을 감금하고 있었고, 평화 행사를 선제적으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막았음. 집회 신고도 되어있었고.

실제로 유족들이 풀려나자 시민들이 거짓말처럼 해산한 것으로 증명되듯이, 어제의 시작은 평화적인 

추모 행사였음. 그런데 그들의 행진을 명박산성으로 막고, 그 불법 방해물을 넘고자 하는 사람에게 역시

불법적으로 안면에 직격으로 최루액을 쏘는 경찰의 불법이 공론화 되기보다, 유리창 꺠진 버스를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크게 클로즈업한 장면만이 생산되고 있음. (그리고 만일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도손,

솔까말, 이런 개같은 상황에서 부조리를 성공적으로 풀었던  시민들의 시위가 비폭력이었던 적이 역사적으로

 있기나 했었음?) 

 적어도, 세월호의 아픔에 동감하는 사람이라면, 집에서 달려나와 유족들 위로하겠다고 그 앞에서 수도없이

최루액과 분말을 맞고 무자비하게 밟혔던 이들을 비난하지 말기를.


 써놓고 보니 쑥스럽고 나중에 읽어보면 오글댈 내용도 있을 것 같음. 그래도 상기 내용이 그 어제 하루동안

일들이 '그들'의 시각이 아니라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시각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함.


다녀와서 감정 변화를 생각해보면. 슬픔은 별로 줄지 않았음. 오히려 시민을 지켜야될 경찰들이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진압하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고, 거기서 밟히던 어린 학생 이미지가 머리속에서 안떠남.

욕을 먹어야할 놈들이 욕을 하고, 지킬 사람들이 때리는 것을 그렇게 실제 노골적으로 목격한 것도 멘붕임. 

그래도 적어도 내가 행사에 혼자서라도 참여하기까지 계속되던 자기 검증의 의문들과, 방관자로 서있었단

죄의식은 조금 덜 수 있었음. 그리고 그 자리를 바로  끝까지 그 앞에 그 학생들과 같이 있지 않고 혼자 나온

미안함과 그 비겁한 모습에 대한 후회가 대신 채워짐. 지나고 나니 그렇게 까지 무서워 할 필요는 없었나

싶기도 하고. (민주 변호사들이 연행된 분들을 지원하러 유치장으로 달려가셨다고 함.)


 ... 제일 좋았던 것은, 늙다리들 젊은 사람들 욕하는데, 그곳에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또 스스로 움직인

보석같은 젊은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는 거. 유학+이민을 준비하고 있는데 고민을 더 많이 해야겠다 생각.


나는 다음 행사에도 참여할 생각임. 나도 부끄럽지만 일참을 권함.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마지막으로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을 인용하면 글을 마침.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이 시간까지 키보드를 두들겨 댔는데 장황하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함.




추도회가 원래 고인을 기리는 행사지요.

본질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한겁니다.

그런 추도회조차 두렵다면은,

그건  추도회조차 두려워서 폭력 진압한 자들의 불안일 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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