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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청 초기 설동, 귀문 이야기
게시물ID : bns_435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쿰루나
추천 : 2
조회수 : 37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1/18 17:44:36
그때 당시는 제일 좋은 무기가 전설 2차였죠
 
하지만 거의 없었기에 사람들은 무신 갈등2단계 이런 무기가 대다수였구요. 아 미로 10단계 무기가 가장 대중적이었겠네요.
 
거기다가 홍문신공 성도 낮았기 때문에 인던에서 딜이 지금 같지 않았었습니다.
 
1. 설동에서
 
냉기 방출 후에 적당히 딜컷 하지 않고 98만 ? 이하로 피를 빼버리면 초롱이가 바로 가운데로 들어가서 장판을 흡수 했기 때문에
 
딜컷을 외치고 버섯을 잡아서 나온 열기구슬을 버섯에게 던지거나 직접 몸으로 때우는 방법으로 장판을 없애면서 클리어 했었죠.
 
사실 밟기로 못 없애는 장판이라면 지금보다 난이도가 높았을거라고 생각.
 
밟는게 아니라 버섯에서 나오는 구슬로 잡는게 원래의 공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 설동에서
지금은 공략이 대중화 되었기 때문에 쉽게 클리어 하지만 그때 당시엔 열기패턴 때 잘모르는 사람들은 멍때리고 있는게 보통이었습니다.
저같은경우는 잡혀서 전체 열기를 받고 클리어 하는 방법을 했었지만 파티마다 다 다른 방법으로 하더라구여 안잡힐 경우 한번 점프 후
기절, 그로기등으로 끊는다. 다운의 경우 기상기가 있고 그로인한 시간 지연때문에  사망확률 상승 .
 
3. 귀문관
디펜스는 무난무난하게 진행했지만 갈마왕 광역기에서 전멸하는 경우가 많았음
그 이유는 바로 전갈버프의 효과를 몰랐기 때문에 + 저항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6인파티의 경우 백청 열리고 모든 인던에서 그냥 6명이서 닥딜하면 클리어가 됬기 때문에
귀문관도 그렇게 클리어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죠. 뭐 틀린이야기는 아니지만
전갈나오는대로 잡아가면서  6번의 광역기 얼꽃 등등을 잘 써서 생존 하고 남은사람끼리 잡는경우가 많지요
 
지금은 쉽게 쉽게 클리어 하지만 그때 당시 제대로 된 정공방법은
전갈을 맨 처음 광역기 때 3마리 잡고 나머지 한마리를 첫 광역기 끝나고 두번째 광역기 시전 중때 잡아서 버프를 유지해가는 방법이었습니다.
뭐 그대로 하는 파티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요 ㅋㅋㅋ 첫광역기 버프로 때우고 두번째는 저항하는 방법으로.
딱 이게 정공이다 라고 할만한건 얼꽃 등등 파티 저항기를 제외한다면 저 방법이 맞습니다.
 
+ 갈마왕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면 태상문 사람 한명 잡혀있는데
그거 구해주면 결초보은이라는 전투중 재생 200이라는 버프를 줬었는데
그거 모르는사람이 더 많은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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