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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의 정치 / 정남구
게시물ID : sisa_364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_Eraser
추천 : 6
조회수 : 41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7/11/13 22:32:55


미국의 현직 대통령은 어지간한 실정을 하지 않는 한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한 정당이 세 번 거푸 집권에 성공하기는 어렵다. 네번 연속 집권하기는 더욱 어렵다.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현 대통령인 조지 부시의 재선을 예측한 예일대학 레이 페어 교수가 내놓은 선거 예측모형의 뼈대다. 유권자들은 어느 정치세력한테도 장기집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경제나 전쟁 같은 변수는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페어의 예측모형은 1916년부터 2004년까지 스물두 번 치러진 미국 대선 가운데 열아홉 번의 결과와 일치한다.
페어의 모형에 담긴 미국 민주주의의 모습은 착잡하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제시하는 비전보다는 집권당의 과거를 평가해 표를 던진다. 오래 집권한 정당은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결국 유권자의 선택은 집권당을 주기적으로 바꾸는 데 그치기 쉽다는 얘기다. 새 집권당이 잘하면 다행이지만, 못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또 바꿀 수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을 뿐이다.

페어 교수의 미국 대선 예측모형으로 한국정치를 설명해도 크게 어긋날 것 같지 않다. 물론 미국은 4년 중임제요, 우리는 5년 단임제라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정당정치가 덜 성숙해 교체 대상이 정치세력이라는 차이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집권 정치세력’이 ‘5년마다’ 바뀌는 것은 한국정치의 기본공식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 선거가 의미를 갖기 시작한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의 권력 교체는 실제 그런 모습을 보여왔다. 참여정부의 등장은 겉보기엔 같은 정당의 재집권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세력의 교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 연말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또 한번 집권 정치세력을 바꿀 것이다.

정치세력을 주기적으로 바꿈으로써 유권자들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을 나는 ‘카타르시스의 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미래의 비전이 선택을 좌우하기보다는 불만족한 현재 상황을 위로해줄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정치다. 물론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한번 집권한 정치세력이 흘리는 피는 정치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경제성장에 견줘 민주정치의 성숙이 더딘 한국정치에서 집권세력의 신속한 교체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퇴행의 위험성이다. 퇴행은 조용히 와서, 순식간에 모든 것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 1980년 선거에서 집권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부터 뿌리내린 미국 민주주의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집었다. 무능한 카터를 물리친 레이건 집권 8년 동안, 미국의 소득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대에서 13%대로 곧추 상승했다. 이후 누구도 그 물줄기를 돌리지 못했다.

맘에 안 드는 집권세력을 선거를 통해 바꿀 수 있는 유권자의 힘은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권자의 선택이 카타르시스를 얻는 데 그치고, 퇴행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어선 안 된다.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도, 그런 것쯤은 눈감아줄 수 있다는 맹목적 태도는 섬뜩하다. 중산층과 서민의 몰락을 더욱 부채질할 시장 만능주의가 ‘성장이 모든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무섭기까지 하다.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집권세력과 한몸이었으면서도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쳐 새 비전을 내놓지 못하는, 하여 대안의 정치세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들의 책임이 무겁다. 알맹이 없는 이합집산의 꼼수로는 카타르시스의 정치를 넘어설 수 없다. 

정남구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출처 : 한겨레 칼럼 - 아침햇발 
http://www.hani.co.kr/arti/SERIES/52/2495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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