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바닥에 쓰든, 가슴에 쓰든, 엉덩이를 까고 쓰든, 다 벗고 쓰든 무슨 상관일까. 그 내용이 50대 남자 정치인을 응원하는 내용이든, 혹등고래에 대한 내용이든, 모피를 반대하는 내용이든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말하고 싶은 방식으로, 이야기할 권리가 있고 또 그것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휴지, 자위, 조~까, 씨발, 성욕감퇴제, 코피 등의 단어가 금기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들 앞에서 조차도 금지되어야 할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이라도 마찬가지다. 공중파가 그런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공정성이 지켜지고 있지는 않는 것처럼.
... 공지영, 무려 당신의 처녀작에서 나온 말이다. "창녀들은 다르지...... 걔네들은 그런 여자의 속성때문에 희생되는 여자들이야. 그러니까 여자도 아니지." -인간에 대한 예의 중에서. 젖절하지 않은 비유인가? 왜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책은 언론이 아니라서? 작가는 언론인이 아니라서? 그때는 70%가 아니라서? 물론 전체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어쩌면 나의 악의가 다분한) 아주 일부분이다. 하지만 공지영 자신의 말에 따라 남성 70%가 성매매를 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시각이 당연히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이 땅에서 이런 표현은 과연 적절한가? 물론 당신이 할 말은 많을 것이다. 그 대답 그대로 돌려주기로 한다.
경향신문 1면에 갖다박은 사회적 책임. 물론 나꼼수의 한계는 명백하다.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꼼수 리스너들이 그것을 걸러듣지 못하고, 비판하지 않으며, 무조건 열광하기만 한다는 논조는 곤란을 넘어서 짜증이 난다. 언제까지 가르치려 들 것인가. 나는 내 마음대로 팟캐스트(혹은 언론)를 소비할 것이며, 거기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좋다. 그 손가락질이 맞다고 해 두자. 나는 여전히 나꼼수를 들을 테지만, 당신들의 손가락질이 맞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손가락질, 아껴두길 바란다. 아직 종편의 옐로우 저널리즘은 시작도 안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