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한 고을의 촌장이 50이 넘어 첫 아들을 보게되었다. 하지만 촌장의 부인에게도 굉장히 노산이었던 터라 아들은 끝내 미숙아로 태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어린 아들은 잔병치레가 많아졌고 촌장의 근심은 점점 커져만갔다. 촌장은 마을의 귀신들이 아들의 수호령이 되길 바라며 큰 제사를 올리고 몇날 며칠 동안 귀신들을 위한 연회를 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들에게 착한 귀신은 커녕 흉폭한 악귀가 붙어버렸다. 이번엔 그 악귀를 쫓으려고 무당을 불러 굿도 해보고 아들에게 팥죽도 먹여보고 벼라별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그 순간에만 효과가 있을 뿐 시간이 지나 다시 기운을 차린 악귀는 아들을 더욱더 괴롭히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아들은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 있는 절에서 홀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악귀는 당최 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나이가 60이 되었고, 그는 곧 자신의 수명이 다할 것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그의 수명이 다하던 날 악귀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몸과 영혼을 취했다. 하지만 그 또한 그날 만을 기다리고있었어.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몸에 몰래 불경을 적어놓고 입에는 팥죽을 머금고 있었던 거다. 그의 몸을 먹은 악귀는 잠시 힘을 잃고 몸을 휘청였고, 그의 영혼이 그 악귀의 몸을 반대로 지배하게되었다. 그리고 그는 거대한 귀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 소문만 무성할 뿐 그 남자는 그 지역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의 이름은 고현랑, 악귀를 먹고 신이 된 인간이다.
제1화 도깨비
'신령님, 신령님, 이렇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소녀는 남부러울 것 없는 명문가의 여식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너그럽고 현명하였으며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조상신들의 보호를 받아 큰 명망과 덕을 쌓아왔다. 그녀는 인간과 귀신이 어우러진 큰 공동체 안에서 유복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소녀의 어미는 끝내 아들을 낳지 못했다.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첩들을 들였지만 그들 또한 연이어 딸을 낳았다. 결국 가문의 조상신들은 소녀의 부모를 책망하기 이르렀고, 조상신들 중 일부는 대를 잇기 위해 소녀를 가문에서 총각으로 죽었던 소녀의 5촌 당숙에게 시집을 보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산 사람을 귀신과 결혼 시키겠다는 얼토당토 않는 말이었다. 소녀의 부모는 그 뜻을 따르지않았고 진노한 조상신들은 그들 가족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소녀의 부모는 조상신들을 달래기위해 갖은 방법을 다해보지만 조상신들의 분노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집안의 가세는 급속도로 기울어갔고, 소녀의 부모는 원인 모를 병으로 앓아 눕게되었다. 가문의 조상신들을 볼 수 있는 존재는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후계자들 뿐이었기에 다른 사람을 구해 소녀의 5촌 당숙과 결혼시킬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의 병세가 나날이 위독해지는 가운데 소녀는 집안을 벗어나 마을의 개울가를 찾아갔다. 그리고 먼길을 여행 중이었던 한 나그네가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게되었다.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계시오"
소녀는 흠칫 놀라 나그네 쪽을 바라보았다. 나그네의 행색은 비루하였으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맑고 아름다웠다.
"곧 해가 질 것이니. 속히 집으로 돌아가시오. 물가에 사는 도깨비들은 그대같이 순진한 이를 골려주길 좋아하지."
나그네의 말에 소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도깨비들도 소녀의 조상님들을 본다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갈 것입니다."
"저 귀신들이 그대의 조상신들이란 말인가?" 나그네는 들고있던 지팡이로 허공을 가리키며 소녀에게 물었다.
"나그네께선 저희 조상님들이 보이십니까?" 소녀는 놀라 나그네에게 물었다.
"오호라... 그래, 그렇구나." 나그네는 허리춤에 있던 호리병을 꺼내 개울물을 담아 소녀에게 주며 말했다.
"이 물을 조상신들을 모시는 신당에 놓으시게 집안의 분위기가 훨씬 나아질게야."
소녀는 나그네의 신기한 행동에 그를 경계하는듯 보였지만 끝내 그가 건내 준 물을 건내받았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소녀가 집에 돌아가자 누군가가 어둠속에서 나타나 나그네에게 말했다.
"고현랑, 아무리 화가 난다하여 자식을 해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네. 중간에서 누군가 장난을 친게지. 자네도 한때는 인간이었으니 잘 알지 않는가"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은 이미 희미해진지 오래다. 그리고 그 이름 또한 버린지 오래지.'
"하지만 난 자네의 옛날 이름이 마음에 든다네. 그리고 이 개울가에 사는 도깨비들의 심성 또한 참 마음에 드는군" 나그네는 들판위에 누워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잠깐 희미한 불빛이 일렁이는듯 보였으나 그것은 이내 사라져버리고말았다. 소녀는 나그네가 말한대로 신당에 그 물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집에 있던 조상신들의 기운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에구머니나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게지?'
"어머니?" 소녀의 아비, 장이명이 말했다.
'어머나, 내 아들 이명이가 아니더냐. 어찌하여 몸이 이리 상했는고' 소녀의 친할머니가 되는 이 혼령은 아들 이명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안타까운듯 말했다.
한편 신당에 있던 가문의 혼령들은 소녀를 빙 둘러 싼 채 자초지종을 듣기 시작했다. 소녀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고, 혼령들은 곧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잡귀들을 하나씩 잡아들였다. 붙잡힌 잡귀들을 심문해보니 이 마을 개울가에 살던 도깨비들의 우두머리가 몇년전 이 집안 소녀에게 반해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된 잡귀들이 "도깨비의 힘을 빌려주면 소녀와 혼사를 치뤄주겠다"며 우두머리를 꼬아내어 순진한 도깨비들의 힘을 빼앗았고 결국 이 집에 숨어들어 온갖 나쁜 짓들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두머리 도깨비의 강력한 힘을 빌려 조상신들을 모두 몰아내고 자신들이 조상신인 척 이 집안을 좌지우지하며 우두머리 도깨비를 소녀의 5촌 당숙으로 소개하여 소녀와 결혼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인간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던 순진한 도깨비들은 잡귀들의 말에 껌뻑 속아넘어가 그들의 악행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조상신들에 의해 도깨비들은 뒤늦게 소녀의 가족들이 당한 수모를 알게되었고, 사과의 뜻으로 소녀의 집 창고에 한가득 금은보화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붙잡힌 잡귀들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다음날 소녀는 날이 밝자 곧장 개울가로 달려갔고, 어제의 그 나그네를 다시금 볼 수 있었다. 나그네 또한 소녀를 보았으나 가벼운 눈인사를 건낼뿐 소녀를 뒤로한채 계속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소녀는 잠시동안 고민하더니 이내 나그네를 향해 소리쳤다.
"소녀의 이름은 진령이라 하옵니다. 소녀 나그네님의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그네는 소녀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작게 읖조렸으나. 어째서인지 소녀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소신 한땐 고현량이라 불렸으며, 현재는 을위만이라 불리는 떠돌이올시다."
소녀는 사라져가는 나그네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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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블로그 돌아다니다 본 글인데 짧지만 재밌는거 같아서 퍼왔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