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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좌파서 좌파의 대표로
게시물ID : sisa_4364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百年戰爭
추천 : 0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06 19:24:56
출처 :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30906185014389

[장석준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경제위기와 '분노한 자들의 운동' 속에 약진한 스페인 연합좌파
긴축 아닌 다른 대안 제시하며 분리독립 문제 유연한 점도 주효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주의 마리날레다시(市)는 인구 3천 명이 안 되는 작은 지방자치단체다. 그런데 재정위기가 닥치고 나서 갑자기 이곳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마리날레다 시장이 시민들과 함께 대형 상점을 점거하고 생필품을 징발한 일이 도화선이 됐다. 시장의 이름은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언론은 그에게 '로빈 후드 시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연합좌파, 정당 연합으로 유럽 최초


하지만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은 결코 시대착오적인 의적 정도로 기억될 인물이 아니다. 그가 처음 시장이 된 1979년부터 30년 넘게 마리날레다에서는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을 연상시키는 공동체 건설 실험이 계속돼왔다. 대부분 농민인 이 마을 주민들은 생산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으로 노동하고 공동으로 분배한다. 그래서 스페인 전체 실업률이 30%를 향해 치솟는 요즘도 이곳만은 그야말로 '완전고용' 상태다. 처음 '로빈 후드 시장'의 기행에 끌려 마리날레다의 이름을 알게 된 사람들도 이내 이런 성과에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이 속한 정당도 흥미롭다. 그가 이끄는 마리날레다시의 여당은 '노동자 단결을 위한 집단-안달루시아 좌파'(CUT-BAI)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이 당은 안달루시아주에만 있는 지역 정당이다. 중앙정치 차원에서는 '연합좌파'(IU)라는 전국적 정치조직의 일부로 활동한다. 연합좌파에는 CUT-BAI 말고도 공산당(PCE)을 비롯해 여러 좌파 정당과 정치조직이 가입해 있다. 단일 정당으로 전환하기 전의 그리스 '급진좌파연합'(SYRIZA)이나 덴마크의 '적록연합'(RGA) 같은 정당 연합이다.

그런데 요즘 이들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한때 3% 수준까지 떨어진 지지율이 15%대로 뛰어올랐다. 그간 좌파 제1당이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사회주의노동자당(PSOE·이하 사회노동당)을 10%포인트 차이로 맹추격 중이다. 1970년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좌파 정치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럽에서 정당 연합 형태의 정치조직으로는 연합좌파가 최초다. 발단은 1986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국민투표였다. 이 국민투표에서 가입 찬성 쪽이 승리했지만(56.85%), 반대 진영도 만만치 않았다(43.15%). 공산당을 비롯해 반대운동에 앞장선 좌파 세력들은 이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국민투표 실시 한 달 뒤 정당 연합을 했다. 각자의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합좌파'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인 공동 행동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공산당의 신임 서기장으로서 1989년부터 연합좌파를 이끈 훌리오 앙구이타가 이 조직의 초기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앙구이타는 민주화 이후 실시된 첫 지방선거에서 코르도바 시장에 당선돼(산체스 고르디요가 처음 시장이 된 것도 이때였다) 공산당의 대표적인 대중 정치인으로 부상한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노동당과의 협력보다 차별화를 강조했다. 그래야만 연합좌파가 우파 인민당, 중도좌파 사회노동당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제3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활동가 노력으로 불신이 지지로


실제 선거에서 그 결실이 나타났다. 1989년 총선에서 연합좌파는 득표율을 9%로 높이며 제3당의 지위를 확보했다. 이 추세는 1990년대 중반까지 쭉 이어졌고, 1996년 총선에서는 10.5%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2000년 앙구이타가 건강 문제로 정계에서 은퇴하며 침체기가 시작됐다. 그 뒤 10년 가까이 지속된 침체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스페인 사회를 뒤흔든 최근의 두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 첫 번째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된 스페인의 경제위기였다. 다른 남유럽 국가들처럼 스페인도 유럽연합(EU)에서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은행 파산과 국가 부도 위험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위기 관리 책임을 맡은 것은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가 이끄는 사회노동당 정부였다. 사파테로 정부는 유럽의 다른 중도좌파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은행을 살리기 위해 국민에게 긴축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2011년 총선에서 권좌를 인민당에 넘겨줘야 했다.

물론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의 우파 정부도 기본 처방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긴축을 강요했다. 자연히 대중의 불만이 끓어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초 인민당이 기업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불길에 기름까지 부은 격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게 곧 사회노동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겠지만, 이제는 이런 양대 정당 구도가 통하지 않는다. 사회노동당에도 이미 실망할 대로 실망한 대중은 다른 대안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거기에 연합좌파가 있었다.

여기에 두 번째 사건이 겹쳤다. 바로 '분노한 자들의 운동'이다. 2011년 치솟는 실업률과 정치권의 무책임에 넌더리가 난 청년들이 마드리드의 푸에르타델솔 광장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은 모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젊은이로, 대부분 실업 상태이거나 비정규직이었다. 당시 집권당인 사회노동당은 그들에게 전혀 대안이 아니었고, '사회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정부를 거들기만 하는 노동조합도 아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한 자들'이라 불린 점거 시위대는 "지금 당장 민주주의를!"이라는 구호 아래 모든 기성세력에 불만을 토로했다.

처음에는 연합좌파도 이 새 운동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점거운동의 요구 중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합좌파가 주장해온 것이지만, 이들도 어쨌든 '분노한 자들'의 눈에는 기성 정당들 중 하나였던 탓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점점 바뀌었다. 연합좌파의 젊은 활동가들이 '분노한 자들' 운동에 처음부터 함께하면서 끈기 있게 새 운동과 정치조직 사이의 대화를 추진한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연합좌파의 대회에 점거운동 참가자들이 함께하고 역으로 점거시위에 연합좌파가 깃발을 들고 참여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양대 정당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이 운동 초기의 막연한 반정치주의 대신 연합좌파와의 연대 혹은 지지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민주적 자결권 우선적 가치 확인


연합좌파는 이런 역사적 호기를 부여잡기 위해 나름대로 비상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 5월 연합좌파가 발표한 대안 경제 전략이다. 그 골자는 3년 안에 34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저임금을 월 645유로에서 1100유로로 인상하며,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단축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농촌 재생,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성 제고를 위한 주택 개·보수, 공공주택 신축, 공공교통 확충, 보건·교육 등 공공서비스 확대, 중소기업 지원 등을 통해 그 정도 규모의 새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총 600억유로의 예산이 필요하다. 연합좌파는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증세, 그리고 탈세와의 전쟁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핵심은 긴축 고통을 강요하는 것 말고도 다른 길이 분명 있다는 사실이다.

연합좌파의 또 다른 노력은 스페인 특유의 지역 자치·분리 문제와 관련돼 있다. 스페인은 독자적인 민족 문화를 지닌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도 바스크는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경제 중심지인 카탈루냐도 이에 못지않다. 갈리시아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재정위기로 인해 각 지방정부에도 긴축정책이 강요되자 분리독립 여론이 더욱 비등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카탈루냐 (자치)의회 선거는 그 바로미터였다. 중앙의 양대 정당과 연결된 세력은 대패한 반면, 분리독립 진영은 압승을 거뒀다. 분리독립파 중에서도 우파인 '통합과 단결'(CiU)은 오히려 표를 잃었고, 약진한 것은 좌파 정당들이었다. '카탈루냐 공화주의 좌파'(ERC)는 13.7%를 얻어 제2당이 되었고, '카탈루냐 녹색이니셔티브-연합대안좌파'(ICV-EUiA)도 10% 가까이 득표해 사회노동당(14.4%)과의 격차를 좁혔다. 후자는 연합좌파와 비슷한 정당 연합인데, 그 가입 조직 중에서도 '연합대안좌파'는 연합좌파의 카탈루냐 자매 정당이다. 연합좌파는 카탈루냐에 지역조직을 따로 두지 않고 '카탈루냐 녹색이니셔티브-연합대안좌파'와 일상적으로 연대한다.

6개월 뒤 갈리시아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카탈루냐 선거의 양상이 반복됐다. 자치 확대를 주창하는 '갈리시아 좌파 대안'(AGE)이 총 75석의 갈리시아 (자치)의회에서 18석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사회노동당과 1석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결과였다. '갈리시아 좌파 대안' 역시 정당 연합인데, 여기에는 좌파 민족주의 조직 '아노바'(ANOVA·갈리시아어로 '혁신'이란 뜻), 녹색 정당들, 연합좌파의 갈리시아 지역조직이 결합해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올해 연합좌파는 카탈루냐의 연합대안좌파와 함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분리독립 문제에 대해 각 지역의 자결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연합좌파도 중앙정치에 뿌리를 둔 세력이어서 지역분리주의에는 조심스러운 유보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제 각 지역 주민의 민주적 자결권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인 가치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자치·분리 흐름 확산도 연합좌파의 성장으로 수렴되는 모양새다.

언제고 정치적 격변 가능한 화약고


스페인 총선은 아직 2년이나 남았다. 하지만 지금 스페인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언제고 정치적 격변이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가 돼가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급진좌파연합이 기존 중도좌파 정당을 제치고 좌파의 대표주자로 부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로존 내 제4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며 인구 4천만 명인 스페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충격은 그리스와 비교되지 않을 것이다. 연합좌파의 약진이 예삿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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